전도연 심사위원 위촉, 경쟁 부문 진출 압도하는 기념비적 성과
2013년 한국 영화산업, 연 관객 수 세계 5위 총 매출액 세계 7위 기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 올 제67회 칸영화제(5월 14일∼25일, 현지 시각)에서 한국 영화가 거둔 유의미한 성과에 대해 짚으며 2014 칸 통신을 마무리 지으련다. 혹자는 당장 반문할 수 있다. 2년 연속 경쟁작을 내지 못했거늘 성과는 무슨 유의미한 성과냐고? 이른바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ion)에 의한 독과점이나 과도한 상업화, 빈익빈부익부 등 고질적 문제점들로 인해 한국 영화의 위기가 외려 심화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사실'만을 두고 말하면 그 반문, 따짐은 설득력 있다. 지난 2000년 임권택 감독의 < 춘향뎐 >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경쟁 부문에 입성한 이래 평균 2년 꼴로 경쟁작이 나왔으며, 홍상수 감독의 < 다른 나라에서 >와 임상수 감독의 < 돈의 맛 >이 나란히 진출했던 2012년처럼 어느 해는 두 편이 초청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렇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산 같은 비경쟁 영화제와는 달리 칸, 베를린, 베니스 등 경쟁 영화제의 꽃은 다름 아닌 경쟁 섹션 아닌가! 경쟁 아닌 다른 부문에 제 아무리 많은 영화들이 초청 받아 선보인다 한들, 그 위용 면에서 경쟁작 한 편에 못 미치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맞다. 하지만 절반만이다. 칸영화제에는 경쟁 부문만큼은 아닐지언정 그 함의 면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주요 섹션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식 비경쟁 섹션. 경쟁이냐 비경쟁이냐 여부는, 영화의 수준이나 완성도보다는 해당 영화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관례다. 그 점은 스크린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도 분명히 밝혔다. 거장 장이머우의 신작 < 귀래 >를 왜 경쟁이 아닌 비경쟁 부문에 초청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쟁은 절차가 까다로울 수 있기에, 감독이나 주연 공리를 최상의 여건으로 초청해 예를 갖추기 위해 비경쟁이 완벽할 거라고 판단했다는 것. 경쟁 포함 비경쟁, 주목할 만한 시선 등 5∼60편에 달하는 공식 선정작들의 경우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하며, 중요한 것은 선정 영화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또 다른 좋은 예가 프랑스, 아니 세계 영화계의 거목 중 거목인 장 뤽 고다르에 대한 칸의 예우다. 올해는 3D+2D 신작 < 언어여 안녕 >을 경쟁 부문에 배정(한데 그치지 않고 캐나다의 신성 자비에 돌란의 < 마미 >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여)했으나, 2010년에는 그 노거장의 신작 < 필름 소셜리즘 >을 경쟁이나 비경쟁이 아닌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했다. 그리고는 무관으로 돌려보냈다. 바로 그 해 홍상수 감독이 < 하하하 >로 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따라서 창 감독, 류승룡 이진욱 유승준 김성령 주연의 < 표적 >이 비경쟁 부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공식 상영된 성과를 마치 국내 어느 영화제에서 선보이는 것 마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루는 것은, 칸에 대한 오해 또는 무지에서 연유하는 오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현장에 없었던 데다, 영화의 원작이라 할 < 포인트 블랭크 >의 감독 프레드 카베예도 상영장인 뤼미에르 대극장을 찾아 리메이크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니, 그 날의 분위기를 더 상세히 전하진 않으련다. 한국 영화가 그 부문에 선보인 것은, 2005년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과 2008년 나홍진 감독의 < 추격자 >에 이어 세 번째라는 것 정도만 덧붙이자. 개인적 동의 여부를 < 표적 >은 그 '대단한' 칸으로부터 한국 영화사의 두 문제적 수작과 동급의 예우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유의미한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위에서 시사했듯 주목할 만한 시선 또한, 경쟁만큼은 아니어도 그 못잖게 중요한 섹션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아는가? < 노예 12년 >으로 올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등을 거머쥔 명장 스티브 맥퀸이 영화감독으로서 세계적 명성을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장편 데뷔작 < 헝거 >가 2008년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이며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거머쥔 쾌거였다는 것을?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을지언정 신예 정주리 감독이 데뷔작 < 도희야 >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는 것은 따라서, 단연 주목할 만한 올 한국 영화의 유의미한 성과였다. “외딴 바닷가 마을, 친 엄마가 도망간 후 의붓아버지 용하와 할머니로부터 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14살 소녀 도희와, “도희 앞에 또 다른 상처를 안고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돼 나타난 영남, 두 여자를 축으로 펼쳐지는 사회성 휴먼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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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칸 현지 프랑스 영화 저널리스트나 평론가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한 예로 프랑스인들로만 구성되는 르 필름 프랑세 15인 평자들 중 영화를 본 수는 고작 4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4인 중 1인만 3점(4점 만점)을 주었을 따름, 나머지 3인 중 2인은 1점을, 1인은 0점을 부여했다. 대체적으로 악평을 받은 셈이다. 물론 호평도 적잖았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수석 영화 평론가 마크 아담스는 스토리라인 상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심장과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배두나 등 강렬한 출연진과, 목가적이나 실은 그 표면적 아름다움이 기능장애를 보이는 일군의 인물들을 감추고 있는 시골 로케이션 등을 들어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단연코 색다른”(resolutely left-field), “참신하게 삐딱한”(refreshingly off-kilter), “솜씨 좋게 흥미만점의”(deftly intriguing) 등의 극찬성 수식어들을 동원해가면서. 할리우드 리포터 기자 역시, 결과는 만족스럽진 않아도 센세이셔널리즘을 탈피해 여러 개 이야기들을 끌어들인 감독의 노력은 매우 경탄할 만하다, 고 평했다.
< 도희야 >는 이창동, 이준동 형제의 공동 제작, 김새론 주연 등 여로 모로 2009년 칸에서 특별 상영된 우니 르콩트 감독의 < 여행자 >와 연결된다. 이창동 감독을 연상시키는, 느린 호흡의 성숙한 연출력이나 복합적 메시지 등, 특히 수준급 연기 연출에서도 둘은 닮은꼴이다. 일찍이 어느 지면에도 전했듯, 19일 오전 공식 선보이며 < 도희야 >가 불러일으킨 호응도, “영화의 진지함에 걸 맞는 진지한 환대가 쏟아졌다.” 상영 전이나 후, 감독은 말할 것 없고 대동한 세 주연 배우들, 배두나, 김새롬, 송새벽에게 아낌없는 갈채가 터져 나왔다.
'사이드 바'로 칭해지는 병행 섹션들인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도 과소평가돼서는 안 될 칸의 주요 섹션이다. 김성훈 감독,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 끝까지 간다 >가 감독주간에 초청됐으니, 그 섹션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하자.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을 2000년에,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을 2006년에 공식 초청, 두 감독에게 세계적 스타 감독으로의 길을 열어준 바로 그 섹션이다. < 끝까지 간다 >는 실수로 저지른 자동차 사고로 인해 절체절명의 궁지에 빠져드는 현직 형사(이선균 분)를 축으로 전개되는 경찰·범죄 드라마. 지면 성격 상, 영화에 대한 리뷰는 생략하자. 18일 영화 상영 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간 체험한 한국 영화들에 대한 반응들과 비교해, 그 강도가 남달랐다. “몇 분 간 지속된 박수갈채야 의례적 호응이라 해도, 박수와 함께 터져 나온 환호성은 일찍이 들어본 적 거의 없는 대 호응이었다.” 칸 데일리들도 크고 작은 찬사를 보냈다. “올 칸이 이례적으로 한국 영화에 인색했다는 할리우드 리포트 기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귀향 >, 애드리안 라인의 < 위험한 정사 >를 거론하면서 < 끝까지 간다 >가 마스터클래스 급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고 평했다. 장르 스릴러이면서도, '영리한 플롯 뒤틀기, 어두운 유머, 그리고 고광택 비주얼로 가득한 최상의 사례'라는 것.”
이들만이 아니다. 학생 단편 경쟁 섹션인 시네퐁다시옹에 초청된 권현주 감독의 < 숨 > 등 한국 단편 영화들도 수상엔 불발에 그쳤어도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신상옥 감독(1994년)과 이창동 감독(2009년)에 이어 한국인 사상 세 번째로 '칸의 여왕' 전도연이 칸 경쟁 부문 심사위원에 위촉된 것 역시 경쟁작 진출을 압도하는, 기념비적 성과임은 물론이다. 이만하면 올 칸에서 한국 영화가 일궈낸 성과가 유의미하다는 게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단지 칸 경쟁작 부재를 들어, 한국 영화의 위기 운운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참고삼아 말하면, 2013년 한국 영화산업은 (극장 기준) 연 관객 수 2억1300만 명으로 세계 5위, 총 매출액 14억200만 달러로 세계 7위를 기록했다.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