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 Day 1
가장 큰 무대의 첫 디제이가 음악을 트는 3시 전부터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이미 공연이 시작된 다른 세 곳의 분위기 역시 순조로웠다. 수는 적었지만 모두 펜스에 몰려 자유롭게 뛰고 춤을 췄다. 같은 음악이어도 뻥 뚫린 하늘, 내리쬐는 태양 아래의 페스티벌은 클럽과 달랐다. 여러 나라의 관람객이 많았고, 맑은 공기, 여름 날씨, 편한 복장을 입고 계속되는 칼로리 소비는 올림픽 혹은 운동회에 가까웠다. 어쩌면 장소가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이었던 것도 영향 주었을 수 있다.
입장하자마자 볼 수 있는 메가 아웃도어 스테이지에선 난리부르스가 디제잉하고 있었다. 부채를 든 이하늘과 마이크 잡고 흥을 돋우는 레드락, 관객들은 한 손에 맥주를 마시며 덩실덩실, 힙합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더운 날 덕에 취기도 잘 올랐다. 빙글빙글 웃는 무대를 뒤로하고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다. 네 개나 되는 무대 덕에 이 행복한 아쉬움, 고민은 이틀 내내,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한국 디제이, 저스틴 오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로 반겼다. 드롭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시사이저 화음은 시원하다. 땀이 흥건해도 양쪽 귀는 캐리비안 베이 해골바가지 아래에 가 있었다. 40여 분의 청각 풀파티 후, 가수 윤하가 등장했다. 저스틴 오와 함께 작업한 UMF Korea 2014의 주제곡 'Stay with me'를 불렀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셈이다.
지치거나 비는 시간에도 즐길 것은 많았다. 스테이지들을 이어주는 통로에 마련된 이벤트 부스와 라이브 스테이지 뒤에 즐비한 푸드 코트의 라인업이 만만치 않다. 디제잉 장비를 시연할 수 있는 삼익 악기 부스, 케밥과 탄두리 치킨 그리고 오징어를 통째로 튀긴 오징어 튀김이 인상적이었다. 외에도 폴댄스와 에어리얼 실크(Aerial Contortion in Silk), 비치 볼과 2층 관람석 등, 소소한 재미들이 페스티벌의 활기를 받쳐 주었다.
오후 5시 반,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일본 밴드, 피어 앤 로팅 인 라스베가스가 사운드 체크를 마치자마자 등장, 인사 없이 공연에 돌입했다. 여러 일본인들과 한국 사람들이 펜스를 붙잡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 장면보다 스테이지 위 무대 매너가 장관이었다. 캐릭터가 분명한 여섯 멤버가 제각기 날뛰고 있었다. 무성한 털 사이로 비쳐지는 잘생긴 얼굴, 레슬링복을 입은 타이키는 중간에 기타를 돌리다가 날려버리기도 했다. 어설픈 한국말로 쩌렁쩌렁 소개를 한 뒤 또 다시 달린다. 귀여운 하드코어 음악을 하는 신기한 밴드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관람객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부분 널보의 무대를 보러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고 그때부터 시너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축제를 '느낄 수 있었다.' 슬슬 우리나라 관객의 자부심인 '떼창'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휴대폰 광고 음악으로 익숙한 아이코나 팝의 'I love it'이 나오자, “I DON'T CARE~ I LOVE IT!!”을 외쳤다. 그들의 싱글 'Like home'이 나왔을 때도 EDM팬들은 율동과 함께 따라 불렀다.
밤이 늦는 여름 하늘, 어둠이 완전히 깔리고 나서야 블러디 비츠루츠의 무대가 시작 되었다. 펑크 록, 때론 메탈 같은 그 음악이 라이브 스테이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EDM 페스티벌에선 보기 힘든 슬램도 나왔다. 문화가 생소한 주변 이들은 불쾌해보였지만 그만큼 폭발적이었다는 반증이다. 후련했다. 동시에 스티브 아오키가 메인 스테이지를 달구는 중이었기에 관객이 갈렸지만 그날 블러디 비츠루츠의 무대는 최고 중 하나로 꼽힌다.
스티브 아오키는 진짜 파티를 한다는 느낌을 줬다. 관객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디제잉 부스에서 계속 뛰어내리고 관객 위에 보트를, 관객 얼굴에 케익을 던지기도 했다. 음악은 그에 맞게 쉬지 않고 터졌다.
메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 어보브 앤 비욘드의 무대 역시 에너지 넘쳤지만 요란하지는 않았다. 특유의 평화로움이 관객들을 치유했다. 문구처럼 그날 하늘엔 보름달이 떴다.
같은 시간, 라이브 스테이지에서는 엠파이어 오브 더 썬이 'Alive'를 라이브로 공연하고 있었다. 이틀 간 디제이들이 자주 틀었던 바로 그 노래다. 크게 빛나는 모형 기타들과 독특한 의상, 분장이 음악에 더 몰입하게 한다. 그들의 음악처럼, 마찬가지로 평화로웠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음악이었다. 관객들의 얼굴엔 아쉬움 보다 내일에 대한 기대로 차있었다. 주변 강남 클럽에서 열리는 애프터 파티로 향하거나, 이성에게 전화번호를 묻는 장면이 보였다. 하늘도 어둡고... 그제서야 운동회 티를 벗고 EDM 음악 페스티벌 같았다.
6월 14일 - Day 2
오후 4시, 비교적 이른 시간부터 라이브 무대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전날보다 관람객이 더 늘어난 이유도 있었겠지만 박재범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상의를 탈의한 채 등장했다. 첫 곡은 산뜻한 '좋아'였지만 반응은 날씨보다 뜨거웠다. 박재범은 더 화끈하게 답례했다. 예정되어있지 않던 로꼬, 사이먼 디와 함께 저녁 시간급 무대를 대낮에 선사했다. AOMG가 휩쓸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디제이 쿠의 디제잉이 한창, 이번 UMF에서 가장 흥미로운 셋을 선보였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클럽을 다닌 디제이가 아니었다면 틀지 않았을 선곡들이 재밌다. 강남 NB에서 아직까지도 트는 'Shut up and let me go', 호응을 얻기 좋았던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우리나라에서 넓게 사랑받은 린킨파크의 'Numb'까지. 모두 리믹스로 틀어서 익숙한 동시에 새로웠다.
공개되지 않은 신곡을 마지막으로 디제이 쿠가 내려가고 일본에서 온 힙합 그룹 엠플로우가 디제이 셋으로 공연을 이어갔다. 반 이상이 디제잉이었지만 중간 중간 버발이 내려와서 힘차고 또렷한 랩을 날려주었다. 관객 수가 많아져서인지 전날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달아올랐다.
바이스톤의 출중한 무대가 끝나고 다시 라이브 스테이지에 사람이 몰렸다.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준비 중인 무대 양옆에는 사괘가 빛나고 있다. 스크린에 태권브이가, 깜짝 게스트로는 윤도현이 나와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기도 했다. 예상과 같이 애국을 내세운 분위기몰이가 있었으나 그들은 한국 그리고 'Like a G6', 이상이었다. 실력이 워낙에 출중하기도 하지만 구성이 탄탄했다. 아이패드로 연주하고, 마이크 두 개로 랩을 하고. 'Still D.R.E'나 'Ni**as in Paris', 'Turn down for what' 같은 다른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틀기도 했다. 상관없다. 라이브 스테이지더라도 디제이가 중심인 페스티벌이니까. 선곡이 그 흐름에 알맞았고 관객과 뮤지션 전체가 날아가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다녀온 이들에게 UMF 최고의 무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엄청난 열기 때문인지 같은 시각, 더블유앤더블유가 음악을 틀던 메인 스테이지에는 화재사고가 있었다. 꼭대기 천에 작은 불이 붙었던 거라 별 탈 없이 해결되었다. 다른 소소한 것들을 뒤돌아보더라도 페스티벌의 진행은 매끄러웠다.
엠아이에이의 음악처럼 관객들은 여유롭게 즐겼다. 인도 음악 같으면서도 레게 같기도 한 그의 독보적인 색은 부담 없다. 엠아이에이는 어두워진 시간에 리듬을 어물쩍어물쩍 타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관객들 사이로 다가왔다. 한두 명씩 데리고 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대에 가득 찼다. 이번 UMF의 명장면 중 하나다. 함께 노래하던 곡이 끝나고 무대가 정리된 뒤에 다시 시작되었다.
마지막 헤드라이너, 스티브 안젤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음악처럼 오묘한 셋이었다. 웅장하고 거대하게 주물렀다. 본인의 'Payback'을 비롯해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때의 음악들을 틀었다. 'Don't you worry child'가 몇 번 나왔었지만 이 때 가장 많은 인원이 떼창했다. 카니예 웨스트의 'Bound 2'도 인상적이었다.
남아있던 폭죽과 종이 꽃가루를 모두 쏟아내면서 UMF Korea 2014는 막을 내렸다. 체력이 바닥 난 상태로 집에 가면서도 다음 날 하는 울트라 풀파티를 검색해 보게 된다. 그 정도로 신이 났던 이틀이다.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실속도 있다. 문외한들의 억측과 달리 건강하고 다양한 페스티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