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이 달오름극장의 객석을 꽉 채웠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이른바 '여우락 페스티벌 2014'의 일환으로 펼쳐진 공연이었에도 단독 공연을 보는 듯 했다. 이미 네이버 뮤직 이 주의 음악 후보, 네이버 뮤직 온스테이지,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범상치 않음이 증명되었던 것도 큰 요인이었으리라. 어린 소녀부터 노화한 어르신들까지 공연장의 얼굴도 가지각색이었다. 국악 밴드 푸리 활동으로부터 연을 맺은 이들의 조합이 의외의 든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시작된 공연. 다채로이 변하는 배경 속에서 좌측에는 피아노, 우측에는 노래하는 한승석의 실루엣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명징한 피아노 선율과, 한승석의 나지막하면서도 굳은 강단이 가미된 판소리 창은 자못 신비로운 분위기까지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첫 곡 '바리abandoned'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은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끊이질 않았다.
공연은 < 바리abandoned >의 앨범 순서를 그대로 따라갔다. 네팔 이주 노동자로서 한국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마덥 쿠워'를 기리는 '아마 아마 메로 아마'의 절절한 가창은 어두운 조명과 함께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일렉 기타의 몽환적인 선율과 장구가 절정의 사운드를 빚어냈던 '바리아라리'는 공연에서 가장 '영(靈)적인' 순간을 자아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진중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겸비한 '없는 노래', 바리공주 설화의 현대적 적용인 '건너가는 아이들'까지 계속되었다. 정재일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한승석의 시원한 창은 국악이라는 느낌보다는 현대 대중음악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의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이후 '빨래', '모르긴 몰라도'에서 펼쳐진 흥겨운 퍼포먼스와 리듬은 그러한 편견을 더욱 불식시킬법한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피아노 건반에서 내려온 정재일은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또 베이스를 잡으며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주며 '천재 뮤지션'이라는 호칭이 결코 과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13분에 달하는 곡이나 '아니리'를 포함한 극적인 전개로 뮤지컬이나 판소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던 '빨래', 꽹과리, 장구, 베이스, 태평소가 어우러지며 신나는 한가락 장을 펼쳤던 '모르긴 몰라도'에 쏟아진 열광적인 반응은 우리의 소리가 결코 남루한 것이 아닌, 바로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도 같았다.
'영(靈)적인 접근만을 중심으로 기대한 공연이었다.'는 공연 전의 생각은 공연 후 빨래를 한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여타 어렵거나 고차원적인 사고, 전통 음악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없었다. 바리공주의 여정은 곧 우리의 여정이었으며, 이 고난과 역경을 이야기를 훌륭히 음악으로 풀어낸 한승석과 정재일은 곧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국악이라서 우리의 것이라 하는 게 아니다. 한여름 더위를 잊게 만들법한 놀랍도록 아름답고도 현실적인, '우리들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