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o away little girl (Steve Lawrence / Donny Os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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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잊혀진 노래입니다. 백인 가수 스티브 로렌스가 1962년에 발표해서 이듬해에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Go away little girl'은 남매 그룹 오스몬즈의 멤버 도니 오스몬드가 1971년에 다시 정상에 올려놓는데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스티브 로렌스가 낮은 톤으로 부른 반면, 14살이었던 도니 오스몬드는 변성기 전의 낭랑하고 맑은 음색으로 소화했습니다. 위대한 싱어 송라이터 캐롤 킹이 만들고 그의 남편이었던 제리 고핀이 작사한 'Go away little girl'은 백인 보컬 그룹 더 해프닝스가 1966년에 취입해서 12위를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한 곡이 세 가수에 의해서 모두 싱글차트에 오른 거죠.
2. Loco motion (Little Eva / Grand Funk Rail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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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way little girl'처럼 다른 가수들의 버전으로 세 번이나 싱글차트 탑 텐에 오른 전설의 명곡이 있습니다. 멜로디만 들으면 다 아시는 'Loco motion'인데요. 이 노래를 만든 사람 역시 캐롤 킹과 제리 고핀입니다. 10대부터 가정부 일을 해온 흑인 여성 리틀 에바는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의 집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다가 시간이 나면 춤추면서 노래를 불러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을 즐겁게 해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젊은 부부는 그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줬는데요. 이게 바로 'Loco motion'이죠. 1962년에 넘버원에 오른 이 노래는 1974년에 미국의 하드록 밴드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정상을 차지했고, 1988년에는 호주 여가수 카일리 미노그의 댄스 버전으로 3위를 차지해 전무후무한 기록을 인쇄했습니다.
3. Please Mr. Postman (Marvelettes / Carpe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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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스의 히트곡들 중에서 반 이상은 리메이크 노래지만 우리는 그 곡들이 카펜터스의 오리지널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카펜터스의 음악 소화력이 완벽하다는 것을 반증하죠. 그 어떤 노래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탄생시키니까요. 모타운이 배출한 걸 그룹 마블렛츠가 1961년에 발표해서 탑을 차지한 'Please Mr. Postman'은 1975년에 카펜터스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세상의 꼭대기에 오르는데요. 전쟁터에 나간 남자친구의 편지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Please Mr. Postman'은 비틀즈도 리메이크할 정도로 유명한 노래입니다.
4. Venus (Shocking Blue / Banana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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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리프가 유명한 'Venus'는 네덜란드 출신의 혼성 4인조 그룹 쇼킹 블루가 1969년에 발표한 대표곡입니다. 1970년에 미국을 비롯해 전 유럽을 석권한 이 곡은 미국의 포크 그룹 빅 쓰리가 부른 'Banjo song'을 토대로 만들었죠. '중구작가 중구작가'하는 기타의 고고 리듬이 바로 'Banjo song'에서 따온 겁니다. 네덜란드 가수로선 최초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Venus'는 1986년에 영국의 여성 보컬 트리오 바나나라마가 댄스곡으로 재해석해 1위에 복귀하죠. 당시 국내에서도 바나나라마의 버전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이후에는 조형기의 버전으로도 알려졌답니다.
5. Lean on me (Bill Withers / Club Nouv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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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앤비 소울 노래지만 마치 포크처럼 처연하고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빌 위더스의 보컬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고 그냥 안아주는 포용력을 발휘하는데요. 1972년에 차트 넘버원에 오른 'Lean on me'는 가난한 집에서 허름한 피아노의 건반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우연히 주요 멜로디가 떠올라서 탄생한 곡입니다. 한마디로 뒷걸음치다가 돈을 주운 경우죠. 하지만 전세가 기운 월남전의 어두운 기운과 그로 인한 개인주의가 팽배하던 1970년대 초반에 'Lean on me'의 가사는 대중의 마음을 도닥여주었습니다. 이 진득한 알앤비 넘버는 1987년에 혼성 5인조 그룹 클럽 누보의 댄스 버전으로 부활해 다시 정상의 고지를 점령했고 그래미에서 최우수 안앨비 노래 부문을 수상했는데요. 그 수상자는 바로 'Lean on me'를 만든 빌 위더스였습니다.
6. You keep me hangin' on (Supremes / Kim W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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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Lean on me' 말고도 또 다른 노래가 원곡과 리메이크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깁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 그룹 슈프림스가 1966년에 발표한 'You keep me hangin' on'인데요. 차가운 아름다움을 가진 영국 여가수 킴 와일드가 댄스팝 스타일로 커버해서 다시 차트 정상에 등극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슈프림스의 오리지널보다 킴 와일드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록 팬들은 1967년에 하트록 밴드 바닐라 퍼지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부활한 버전을 애청했습니다.
7. When a man loves a woman (Percy Sledge / Michael Bo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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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When a man loves a woman'이 팝 차트와 알앤비 차트 모두 정상에 올랐는데요. 부모님 세대에겐 원곡인 흑인 가수 퍼시 슬레지의 노래로, 중년의 세대에겐 마이클 볼튼의 버전으로 더 애청됐죠. 1966년과 1991년에 모두 세상의 꼭대기에 우뚝 섰는데요. 멕 라이언이 알콜 중독자로 열연한 영화 타이틀이 이 노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만 봐도 'When a man loves a woman'이 대중에게 얼마나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음악 전문지 < 롤링 스톤 >이 집계한 '가장 위대한 노래 500'에서 54위라는 높은 순위에 오른 이 위대한 사랑 노래는 파헬벨의 'Canon'과 바하의 'G 선상의 아리아'를 기초로 탄생했습니다.
8. I'll be there (Jackson 5 / Mariah Ca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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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5의 네 번째 넘버원 'I'll be there'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의 작곡 실력을 입증하는 곡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유능한 음반사 CEO만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작곡가이기도 하죠.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베리 고디 주니어는 윌슨 피켓의 'Lonely teardrops'나 에타 제임스의 'All I could do was cry' 같은 노래들을 공동으로 만들기도 했는데요. 그는 잭슨 5가 발라드 노래도 부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I'll be there'를 두 사람과 공동으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1992년 3월 16일에 녹화된 < MTV 언플러그드 >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I'll be there'를 불렀고 이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을 싱글로 발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음반사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반응이 점차 커지자 콜럼비아 음반사는 결국 'I'll be there'를 싱글로 발표해서 1위를 차지했죠. 2009년 7월 7일,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공연에 등장한 머라이어 캐리와 트로이 로렌즈는 우리 곁을 떠난 '팝의 황제'에게 이 노래를 바쳤습니다.
9. Lady marmalade (LaBelle / Christina Aguilera, Mya, Pink, Li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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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패티 라벨이 몸담고 있었던 흑인 여성 트리오 라벨이 1975년에 차트 정상에 올려놓은 'Lady marmalade'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 < 물랑루즈 >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야, 핑크, 릴 킴의 4중창으로 인지도를 확장했죠. 이 곡은 뮤지컬 < 저지 보이스 >로 최근에 다시 회자된 백인 보컬 그룹 포 시즌스의 멤버 밥 크루와 1977년에 'I like dreaming'으로 인기를 얻은 싱어 송라이터 케니 놀란의 합작품입니다. 노래 중간에 들리는 'Voulez-vous coucher avec moi (ce soir)?'라는 불어 가사가 유명한데요. 바로 '너 오늘 밤 나랑 자고 싶어?'라는 망측한 뜻입니다. 라벨이 부른 'Lady marmalade'는 2003년에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입적했고 음악 전문지 < 롤링 스톤 >이 선정한 '위대한 노래 500'에서 479위를 차지한 소울 디스코의 명곡이죠. 2013년, 백악관에서 열린 < Women Of Soul >이란 공연에 등장한 패티 라벨이 이 노래를 부르자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곡을 따라 부를 정도로 유명한 노래랍니다.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모두 인기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건 많은 시간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이 갖고 있는 멜로디나 가사를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세월과 상관없이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그 음악을 사랑한다면 이게 바로 대중음악의 미덕이며 존재의 이유죠. 허세로 치장하기 위한 노래, 우월함을 과시하는 음악, 모자람을 감추려는 태도는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