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해보자. 10월 8일 머라이어 캐리의 내한 공연은 분명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욱 사랑했던 디바의 힘은 결코 예전과 같지 못했고, 쌀쌀한 날씨 속에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을 꽉 채운 1만 여명의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온 세월과 최근의 컨디션을 생각해봤을 때 머라이어 캐리의 이 날 퍼포먼스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며칠 전 일본 도쿄에서 펼쳐진 콘서트에서 상상조차 못했던 충격적인 목소리의 'Always be my baby'의 장면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그녀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녀를 기다리는 수많은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관리를 통해 기본적인 만족이라도 안겨줄 수 있는 프로 의식은 갖췄어야 했다. 변함없었던 실망스러운 보컬 퍼포먼스는 분명 그녀의 실책이며 무리한 투어를 종용한 그 주위 인물들의 분명한 잘못이다.
여기에 쌀쌀한 10월의 밤에서의 야외 공연이라는 악재까지 겹쳤으니 도무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외무대의 특성상 뒷좌석까지 깊은 울림의 소리가 있어야 했는데 첫 곡 'Fantasy'부터 세션들의 소리가 작았다. 그래도 머라이어 캐리는 최선을 다해 무대에 임했다. 성량의 부족함에도 리듬감 있는 가성은 여전했으며, 모든 곡을 소화하지는 못하더라도 확실한 임팩트는 살리려 힘을 쏟았다. 'Emotions'의 끝부분 하이라이트 '돌고래 고음'을 어떻게든 소화하는 부분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차라리 'Honey'부터 립싱크로 무대를 소화하던 모습에서는 실망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오히려 가장 최신 싱글인 '#beautiful'과 같은 트랙 위주로 셋리스트를 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My all' 이후의 'Honey'나 'I'm that chick', 'The roof'와 같은 곡들에서의 실망은 전에 비해 적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Don't explain'도 새로운 느낌을 준 좋은 시도였다.
부족했던 가창력이 뼈저리게 느껴졌지만 공연 자체까지 최악의 수준은 아니었다. 화려한 백댄서들의 퍼포먼스와 세션들의 장기가 이어졌고, 다양한 장치를 통해 볼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다만 수많은 히트곡 퍼레이드가 이어졌음에도 'I'll be there', 'Vision of love', 'Hero', 'Without you'를 만나지 못한 것은 끝까지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무리 충격적인 공연이었다 해도 현재 온라인상에서 나도는 후기들을 살펴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공연에 참석한 이들은 하나같이 강한 어조로 머라이어 캐리의 퇴보를 비판하고, 이를 무차별적으로 퍼 나르는 사람들 또한 공연에 가지 않은 이들이라도 소리 높여 '그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일삼는다.
분명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 한 편에는 머라이어 캐리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사람들이, 자신의 레전드였을 인물을 사정없이 비난하는 모습에서는 일말의 존중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쉬웠던 전설의 모습보다도 더 씁쓸한 것은 과거에 갇혀 현재의 모습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자세다.
2014/10 김도헌(zener1218@gmail.com)
사진 출처 - 예스컴 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