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그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던 1980년 가을에 열린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한국 가요 역사를 빛낸 노래들이 탄생했다. 대상을 수상한 이범용과 한명훈의 '꿈의 대화'를 비롯해서 금상을 탄 뚜라미의 '해안선', 은상을 수상한 마그마의 '해야'와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대학가요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밀리지 않는 위치를 점하는 명곡들이다.
연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건국대, 경기대생으로 구성된 혼성 7인조 그룹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노래들 중에서 가장 멋진 곡이다. 참신함, 실험성, 가사, 멜로디, 화성, 가창력까지 이 노래는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완성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대중음악의 미학을 완벽에 가깝게 소유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가요에선 자주 등장하지 않은 퍼커션 악기 봉고와 트윈 기타 시스템으로 퓨전 재즈와 월드뮤직까지도 포섭한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없는 연극 무대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쓸쓸함과 외로움을 자극한다.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 최명섭은 최호섭의 형으로 동생 최호섭의 대표곡 '세월이 가면'을 비롯해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과 김종서의 '주머니 속의 행복'의 노랫말은 그의 온화한 감성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언어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폐부를 서정적으로 묘사한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시어는 알토와 메조소프라노의 중간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 조선희에 의해 파스텔 톤으로 담백하고 옅게 그려진다. 조선희는 가창력을 과시하기 위해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호흡하며 노래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노래하는 디바가 있었다.
김현철, 서영은을 비롯해서 < 위대한 탄생 >의 참가자 데이비드 오와 < 슈퍼스타 K > 출신의 딕펑스 등이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르고 영화 < 친구 >에도 등장한 이유는 분명하다. 34년 전에 발표된 노래지만 영화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명력이 노쇠하지 않고 더욱 젊어지는 명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