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5집 < 1989 >가 첫 주에만 128만장이 팔렸다. 이로서 그는 발매 직후 100만장 이상 판매한 음반을 3장이나 갖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기존 컨트리 팬들의 이탈을 감수하면서까지 팝으로 과감하게 이동한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그의 롤모델 샤니아 트웨인과 리앤 라임스에 의한 컨트리와 팝의 크로스오버 선례가 있었고, 팝을 섞어낸 4집 < Red >의 성공으로 뭘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큰 영향을 주었다. 좋은 음악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겠지만 전 음악 매체가 그가 가진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탐구하고 있다. 유망주로 포착된 이상 맥스 마틴 외 유명 프로듀서들이 앞 다투어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곡을 지급하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최근 그의 주변에는 미묘한 행운의 기류가 흐른다. 외모와 실력, 대중적 파급력과 앨범 성적이 이렇게 골고루 조화를 이룬 팝 스타는 실로 오랜만이다. 그것도 아델, 릴리 알렌 등 영국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선전에 몸살을 겪었던 미국, 백인 음악을 대표하는 컨트리에서 판을 바꿀 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유독 빌보드, 더 뉴욕 타임즈 등의 북미 매스컴이 그를 팝의 새 주인으로 칭하는 데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컨트리 음악을 대표하는 도시 내슈빌에서 그에게 보내는 응원 역시 남부 시골 음악의 범주에서 대스타가 배출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보인다. 52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올해의 앨범 상을 받은 것, 일부 팝의 색채를 띄었던 < Red >를 컨트리 후보로 넣은 것도 그래미가 그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팝 앨범 < 1989 >의 흥행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힘이 컨트리 내에만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성인 남성을 겨냥했던 팝의 여제들과 달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에는 10대, 20대 초반의 소녀들의 동경과 교감이 자리한다. 예쁜 얼굴과 바비 인형 몸매를 가진 아티스트를 닮고 싶은 마음, 그가 팝 문화를 선도하길 바라는 애정에 더욱 빠져드는 경우다. 그들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연애 공부와 수다에 집중할 준비가 되어 있고 가사를 분석하며 워너비 모델이 어떤 성향과 경험을 가졌는지 교류한다. 아기자기한 폴라로이드와 팬클럽을 집으로 초청하는 밀착 교류는 이 같은 몰입을 강화한다.
연성화된 팬덤 공략과 그동안 쌓아온 컨트리의 보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추후 테일러 스위프트가 섹시 대열에 합류할 확률은 적어 보인다. 현재 과도한 노출을 비롯한 마약, 클럽 활동, 타투를 금지하는 것도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곱게 자란 여성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도로 살펴볼 수 있다.
정작 앨범 내에서만 얌전한 고양이의 일탈이 계속된다. 목록으로 나열할 수 있는 남자친구 계보와 그들의 잘못을 음악으로 고발하는 일기장식의 음반. 싱어송라이터로서 자기 이야기를 하며 실감을 제공한 점이 그만의 문화를 옹립하며 이점을 주었지만, 가득 채운 치기 어린 노랫말이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엄친딸의 허상을 부각한다.
퍼포먼스가 부족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재능이 음악 내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면 그는 노래에 더 성실하고 치밀해져야 한다. 자신을 워너비하는 또래 소녀와의 재잘거림에 빠져있는 와중 곡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것도, 프로듀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숙명을 가진 것도 그 자신이다.
이제는 방문을 열고 나와 현실을 그린 갈등, 삶의 고민을 풀어내는 한층 성숙해진 곡을 써야한다. 'Love story' 하나로 청소년과 접점을 마련하며 컨트리 틴팝을 주도한 것처럼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넓고 스타성을 가진 만큼 세대의 목소리도 대변할 수 있다. 이 과제를 해결해야 테일러 스위프트는 팝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를 둘러싼 미묘한 행운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