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사람, 정말 많죠. 피아노나 건반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베이스나 드럼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지 않죠. 정확한 비트와 박자를 지탱해주면서 노래를 부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긴데요. 그 와중에도 드럼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거나 드러머 출신의 보컬리스트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두 손과 두 발이 따로 놀면서도 정확한 박자를 놓치지 않는 다중 기능을 보유한 가수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필 콜린스
이번 주제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뮤지션입니다. 영국의 아트록 밴드 제네시스에서 원년 드러머 크리스 스튜어트의 후임으로 가입한 필 콜린스는 1970년대 중반에 리더 피터 가브리엘이 탈퇴하면서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죠. 어렸을 때부터 흑인음악을 좋아하던 필 콜린스는 대중적인 감각을 제네시스의 음악에 이식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아트록 팬들은 필 콜린스가 리더로 있을 때의 제네시스 음악을 인정하지 않지만 필 콜린스는 1980년대의 드럼 사운드를 재정립 했으며 빌보드에서 한 곡의 넘버원과 6곡의 탑 텐 그리고 4장의 음반을 앨범차트 10위권 내에 랭크시키며 제네시스를 흑자 밴드로 만들며 채질개선에 성공했습니다.
돈 헨리
이글스는 비틀즈처럼 모든 멤버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밴드입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곡에서 보컬을 맡은 사람은 드러머 돈 헨리입니다. 'Hotel California', 'Take it to the limit', 'Best of my love', 'Long run'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이글스의 거의 모든 히트곡에서 마이크를 쥔 돈 헨리는 이글스가 해산한 이후에 솔로활동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죠. 테크닉으로 보면 사실 그의 드럼 실력은 뛰어나진 않습니다만 곡의 분위기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과 노래를 잘한다는 장점이 돈 헨리와 이글스를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그소
이소룡이 사망하고 성룡이 등장할 때까지의 무주공산을 지배한 홍콩 배우는 왕우였습니다. 그가 주연한 영화 < 스카이 하이 >의 주제가 'Sky high'를 부른 지그소는 1966년, 영국에서 결성된 팝 그룹인데요. 영화의 성공과 함께 이들이 취입한 'Sky high'도 덩달아 빌보드 3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이 노래에서 보컬을 맡은 사람은 지그소의 2대 드러머 데스 다이어인데요. 밴드의 건반 주자 클라이브 스코트와 데스 다이어가 함께 'Sky high'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데요. 당시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카이다이빙을 타고 하늘을 날 때 'Sky high'가 흐르던 이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더군요.
나이트 레인저
영화 < 부기 나이트 >와 < 록 오브 에이지 >에 삽입되며 영생을 얻은 'Sister Christian'을 부른 미국의 팝메탈 그룹 나이트 레인저의 드러머 켈리 키기 역시 노래도 부릅니다. 물론 이 팀에는 나중에 댐 양키스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는 잭 블레이즈가 베이스와 보컬을 맡고 있지만 켈리 키기와 마이크를 양분하죠. 'Sister Christian'은 켈리 키기가 작곡하고 직접 노래를 부른 곡인데요. 1984년 빌보드 싱글차트 5위를 기록한 이 노래는 켈리 키기가 자신의 누나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작곡했다고 합니다.
카렌 카펜터
이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카렌 카펜터가 드럼 주자였다는 사실이 의외죠.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플루트나 피아노 같은 클래식 악기를 연주했을 법 하지만 카렌 카펜터는 다소곳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차분하고 정적인 오빠 리차드 카펜터에 비해 카렌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해요. 그런 그의 기질과 잘 맞았던 악기가 바로 드럼과 타악기였습니다.
포 시즌스
뉴저지에서 결성된 포 시즌스는 리드 보컬리스트 프랭키 밸리의 가성으로 유명한 그룹이죠. 1976년에 차트 넘버원을 차지한 'December 1963 (Oh what a night)'은 포 시즌스의 건반주자 밥 가우디와 그의 부인이 되는 쥬디 파커가 만든 디스코 스타일의 곡인데요. 이 노래에서는 1975년에 새로 가입한 드러머 제리 폴치가 리드 보컬을 맡았습니다. 그럼 팀의 간판 프랭키 밸리는 뭘 했냐고요? 중간에 고음 부분을 맡고 있답니다.
쉴라 이
쉴라 이를 기억하시는 분은 그리 많을 것 같진 않지만 1984년에 빌보드 7위를 기록한 'Glamorous life'는 정말 멋지고 세련된 댄스곡입니다. 쉴라 에스코베도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라틴 퍼커션 연주자 피트 에스코베도의 딸인데요. 쉴라 이는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노래하며 두들기는 가수로 성장했죠. 오랫동안 프린스와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자신의 히트곡인 'Glamorous life'와 'A love bizarre'를 프린스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쉴라 이는 1985년에 거행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퍼커션을 연주하면서 'Glamorous life'를 불렀는데요. 노래가 끝나고 야광 드럼 스틱을 집어던지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죠.
버디 마일스
12살 때부터 드럼을 두드린 버디 마일스는 지미 헨드릭스, 마이크 불룸필드, 산타나 등과 함께 연주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은 흑인 뮤지션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솔로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는 1970년에 발표한 앨범 < Them Changes >와 타이틀곡으로 널리 알려졌는데요. 펑키(Funky)한 소울 넘버 'Them changes'는 1970년대에 국내 고고장을 빛낸 골든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링고 스타
비틀즈에서 링고 스타의 존재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고래등 싸움에 조지 해리슨은 방관자 입장을 고수했지만 넉살 좋은 링고 스타는 그 살얼음 같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만약 링고 스타가 없었다면 비틀즈는 아마 1968년 즈음에 해산했을지도 모르죠. 비틀즈 시절에도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나 'Yellow submarine', 'Don't pass me by'에서 보컬을 맡앗던 그는 전미 차트에서 두 곡의 넘버원과 6곡의 탑 텐을 배출해 사실 비틀즈 시절보다 더 화려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심수봉
그럼 우리나라엔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늘 소녀 같은 가수 심수봉이 드럼을 연주했습니다. 우리에겐 피아노 앞에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사실 그의 첫사랑은 드럼이었죠. 사실 심수봉의 대표곡인 '백만 송이 장미'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때 그 사람' 같은 노래들은 선율도 유려하지만 비트감이 있는 트로트 곡이죠. 바로 이 리듬감은 심수봉이 드럼을 통해서 체득한 것이죠. 자주는 아니지만 심수봉은 공연장에서 간혹 드럼을 연주한다고 합니다.
활주로
배철수가 드럼을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은 1978년도 MBC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에서 '탈춤'을 부르는 장면 외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항공대 학생들로 구성된 4인조 그룹 활주로는 '탈춤'으로 은상을 차지하며 나중에 또 다른 캠퍼스 밴드 블랙 테트라와 융합한 팀이 바로 송골매죠. 배철수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은 더 후의 키스 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그와 달리 파워 드러밍이 아닙니다. 조심조심 드럼을 쳤지만 그 본선 무대에 있던 드럼 세트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심벌즈가 떨어졌을까요. 하지만 배철수는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와 연주를 마쳤습니다.
김반장 (윈디시티)
젊은 시절의 배철수, 김C와 함께 국내 가요계에서 참으로 안쓰러운 몽타주를 갖고 있는 김반장은 이소토 유니온과 윈디시티의 리더죠. 흑인 음악을 하는 그 그룹들은 리듬과 박자가 중요한 만큼 드럼 연주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김반장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정교함을 놓치지 않는 파워 드러밍을 선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