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객들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수인 폴 매카트니의 이름만으로도 충성을 예약한 상태였지만 대중을 신봉하는 위대한 아티스트가 보여준 겸손과 '성심성의'에 홀렸다. 한국 팬의 성향에 대한 배려도 없이, 딴 나라 공연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이, 멘트도 없이 건조하게 하는 여느 팝스타 공연과는 달랐다. 딴 팝가수처럼 '감사합니다!' 같은 말 한마디 정도 챙기는 수준을 넘어서 '대박!', '고마워요!', '같이해요!', '다시 만나요!' 같은 여러 우리말을 미리 준비했다.
방문국가의 공연 관련 정보를 나름 섬세하게 챙겼다는 사실 자체에 우리 관객들은 행복해 했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Hey Jude'의 나나나 합창 대목에서는, 이제는 서구 아티스트들에게 제법 알려진 그 유명한 '떼창'을 전해 들었는지 마룬 파이브가 내한공연에서 했듯 우리말로 '남자만', '여자만' 그리고 '다같이'라고 유도하며 객석의 흥을 절정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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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는 곡 후반부에 그라운드 관객 전부가 '러브'와 '나나'가 새겨진 네모종이를 들며 합창하는 그 일체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실벌이 떠나갈 듯 떼창이 이어지자 '너무 소리가 커 귀가 먹었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 떼창 때문에 'Hey Jude'는 앙코르를 받아 두 차례 무대와 객석에 울려 퍼졌다. 아시아의 마지막 순서(leg)인 한국공연에서 “팬들이 최고로 환영을 해주었다(The Best Welcome Ever)”고 그가 SNS에 올린 글은 분명 예의 수준이 아니었다.
70대 고령(1942년생)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귀여운 제스처를 선보여 공연에 온 손님들을 미소 짓게 한 것도 특기할 사항.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들은 “노인 치고 귀여운 사람 처음 본다!”, “정말 사람 좋아 보인다!”며 “아저씨 최고!!”를 연발했다. 비틀스 시절부터 별명이 왜 매력남(The Charmer)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만했다. (비틀스 때 존 레논은 냉소남 The Cynic, 조지 해리슨은 생각남 The Thinker, 링고 스타는 코믹남 The Comic 으로 통했다)
단연 돋보였던 관객서비스 가운데 압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음악서비스였다. 참으로 레퍼토리가 풍부했다. 비틀스 명곡들인 'Eight days a week', 'Can't buy me love', 'I've just seen a face', 'Eleanor Rigby', 'Back in the USSR', 'Obladi oblada', 'Let it be' 그리고 포스트 비틀즈 작품 'Live and let die', 'Hi hi hi', 'Jet', 'Band on the run' 등 우리 팬들이 듣고 싶어 했던 곡들이 모조리 다 나왔다. 앙코르 포함해서 무려 39곡이나 되었다. 관객들은 “정말 노래 많이 한다!”며 기뻐했다. 지난해 건강문제로 공연이 취소되어 꼬박 1년을 참은 그들은 기다린 보람을 만끽했다.
음악서비스는 감동이 넘쳐났다. “폴 매카트니만 온 게 아니라 비틀스도 왔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충분히 폴 매카트니의 솔로 시절 명곡을 들었고 동시에 '못 볼 것 같았던' 비틀스의 무대를 기적처럼 눈앞에서 목격했다. 존 레논과 함께 비틀스의 리더격 존재인 폴 매카트니가 불러주는 비틀스 넘버들을 라이브로 '내 생애에' 듣는다는 것에 관객들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기성세대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폴 매카트니 공연에서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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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객들이 비틀스 시절의 곡을 더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노래하지 않고 동료 존 레논이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부른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2013년 공연에 추가된 레퍼토리)와 우크렐레를 연주하며 조지 해리슨의 명작 'Something'도 불렀다. 이 곡을 부르고나서는 “이렇게 훌륭한 곡을 만들어준 조지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비틀스 때 존 레논과 절반을 나눠 불렀던 곡 'We can work it out'를 폴의 목소리로 다 듣는 것 또한 각별했다.
비틀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려는, 관객을 위한 엔터테이너로서의, 인간으로서의 봉사가 아닐 수 없다. 전처인 린다 매카트니를 위한 노래 'Maybe I'm amazed'를 부르고, 존 레논에게 바치는 'Here today'를 노래하고 그리고 조지 해리슨을 위해 'Something'을 부른 것도 자신과 함께 음악 생(生)을 같이 했던 고인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그의 인간미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놀라운 곡 소화력을 보여준 것이 이날 공연의 음악적 하이라이트. 과연 역사의 거장, 음악의 타이탄이었다. 공연은 폴 매카트니가 송라이터로서뿐 아니라 싱어로서도 사상 최고임을 증명했다. 나이를 감안해 조금 '낮춰' 불러도 이해할 관객들이었지만 그는 오리지널의 높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경이적인 에너지와 관록의 가창을 과시했다.
밴드와 록의 DNA 그리고 타고난 목청이 아니면 실로 어려운 경지였다. “마치 음반을 듣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른 관객이 있는가 하면 “신(神)의 공연을 본 느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1973년 윙스 곡 'Nineteen hundred and eighty five'를 노래할 때의 그루브와 파워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폴 매카트니의 솔로 명곡으로 평가받는 'Maybe I'm amazed'는 젊디젊었던 1970년 첫 솔로앨범에서 부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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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은 딸려도 힘은 더 나는 듯했다. 관객들은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시기에 저렇게 노래할 수 있을까?”하며 그의 뮤지션쉽과 프로정신에 연신 감탄을 표했다. 이미 'Live and let die'(무대 불꽃효과가 폭발적이었다)와 'Hey Jude'에서 정신을 잃은 그들은 앙코르 'Day tripper', 'Hi hi hi', 'I saw her standing there', 'Yesterday', 그리고 다시 앙코르 요청에 또 무대 올라 열창한 'Helter skelter'와 앨범 'Abbey Road' 메들리 순서에선 거의 발광했다.
'애비 로드' 메들리를 마지막으로 한 것은 이 앨범이 비틀스의 마지막 기획 작품인데다 'Golden slumbers', 'Carry that weight' 그리고 당시 해산을 암시하듯 'The end'라는 제목의 곡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틀스 팬클럽이 공연장에 내건 팻말도 바로 이 곡 'The end'의 유명한 노랫말 '결국에 당신이 받은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같습니다!(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였다.
비틀스와 폴 매카트니는 실로 베이비붐 세대와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를 함께 묶는, 대중음악의 거의 유일한 신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또 그가 얼마나 많은 히트곡을 남겨 얼마나 대중들과 친숙한 존재인가를 웅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수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39곡을 노래했지만 낯설지 않았고 신곡이라고 할 수 있는 'New'와 'Queenie eye'마저도 친숙하게 들렸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절감했을 것이다. 우리가 운 좋게 폴 매카트니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비틀스와 함께 시절을 풍미했다는 것을. 신의 공연, 신화를 실제 목격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