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필요도 없이 첫 인트로 '27'부터 밴드 넬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그 이후 치고 나오는 '너여야만 해'는 김종완 특유의 멜로디 감각과 김성규가 가진 음색을 가장 잘 배합해 낸 곡이다. 록 밴드의 편성을 걷어내고 피아노 사운드에 아르페지오가 추가되고 후반부 현악 세션까지 가미하며 층을 쌓아가는 공간감을 창출했다. 'Kontrol'의 경우 이전의 기조와 반전되는 일렉 사운드가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흐리지만 김성규의 보컬이 등장하면서 짧은 방황을 설득함과 동시에 다른 수록곡들과의 일관성을 얻는다.
인피니트의 노래들은 후렴구나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에서 김성규의 목소리가 그 진가를 발휘하곤 했다. 멤버들 중 가장 보컬톤 및 가창력에서 이목을 끄는 부분이 많다보니 솔로로서의 성공 가능성도 가장 먼저 점쳐 지곤 했다. < Another Me >는 그런 면에서 일종의 실험이었다. 스윗튠과 넬의 멤버들이 각각 힘을 보태 꾸렸던 전작에서 김성규의 보컬과 김종완만의 스타일이 조응하는 순간에 주목하여 이번 신보를 빚어낸 것이다.
몇몇 주안점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그리 독창적이지는 않다. 독창성이라는 기준보다도 앨범 내부 김성규라는 가수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너여야만 해'에서 후렴구를 마무리하고 간주로 넘어가는 부분의 편곡은 편성의 차이만 있을 뿐 온전히 넬의 특기이고 김성규는 그것에 그저 발맞추어 따라갔을 뿐이다. 'Daydream (Feat. Borderline)'의 보컬 이펙터 사용이나 '답가 (Feat. 박윤하)'에서도 넬의 이름으로 발표된 곡들과 공통점을 찾기 어렵지 않다.
물론 스윗튠보다는 김종완의 프로듀싱이 김성규의 진가를 더 발휘하기 좋은 토양일지도 모른다. 결국 상기한 문제점은 일정한 틀과 패턴에 익숙해져버린 넬의 작법에서 기인한다. 근본적인 체계가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만 바뀌었을 뿐이라 산출된 결과물은 그저 익숙한 향기를 풍긴다. 공고히 세워진 공리계(公理系)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김성규의 앨범임에도 김종완에게 눈길을 돌려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모두 이 기본적인 시스템 내부에 있다.
-수록곡-
1. 27
2. 너여야만 해

3. Alive
4. Kontrol

5. Daydream (Feat. Borderline)
6. 답가 (Feat. 박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