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의 주인은 바뀐다. 일본군 군수의 핵심이라고 할 조병창 지역(삼릉과 신촌)에는 마찬가지의 성격인 '미 군수지원 사령부(애스컴, ASCOM)'가 들어서게 된다. 부평은 이후 '애스컴 시티'로 불렸고 초등학생 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애스컴을 입에 붙이고 다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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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미군부대 클럽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록의 대부' 신중현은 이렇게 증언한다. “미군들은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미국의 문화를 지키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미국 음악하면 목을 맵니다. 5시 퇴근시간만 되면 칼 같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클럽으로 떼를 지어 몰려옵니다. 저도 놀랄 만큼 미군들은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기타 솔로에 열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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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 대중음악의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트로트 일색이었던 이 땅에 미국 즉 서구음악이었던 재즈 영향이 나타난 '스탠더드 팝'과 '로큰롤'을 소개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을 압축적으로 실증하는 곳이 다름 아닌 부평이다. 일본 조병창 자리에 미 군수지원 사령부가 들어서는 양상이 트로트에서 미국 록과 스탠더드 음악으로의 대중가요 조류 변화와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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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에 무수한 악사들의 모여들었고 뮤지션 수요가 늘어난 타 지역의 미8군도 부평에 와 연주자를 실어 갔다. 프로덕션은 물론, 피아노와 기타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들도 여기에 진을 쳤다. 대중음악의 메카 혹은 산실이라는 표현이나 '인천밴드 연합' 대표 정유천씨의 말대로 '대중음악의 시작점', '한류문화의 원천지'라는 수식은 결코 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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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문화흐름 속에서 갈수록 지역성 즉 로컬의 의미가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중음악에서 부평이 갖는 역사적 배경은 물론, 고통을 겪으며 꿈을 향해 달려간 미8군 음악가들이 남긴 궤적은 소중하다. 미군기지 이전 시점을 맞아 부평의 가치 재평가와 발굴에 관심과 실천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문화에서 특히 대중문화에서 개인과 사회의 위상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