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경기 소사(부천)에 살면서 기차로 바로 옆 역이었던 부평에 대한 대체적 인상은 공장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 '큰' 공장을 보기 위해 기찻길을 따라 친구들과 1시간 정도를 걸어 부평으로 갔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부평이 공업지대가 된 것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만주침략기 군수물자를 대기위해 인천과 부평 일대에 공업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의 주인은 바뀐다. 일본군 군수의 핵심이라고 할 조병창 지역(삼릉과 신촌)에는 마찬가지의 성격인 '미 군수지원 사령부(애스컴, ASCOM)'가 들어서게 된다. 부평은 이후 '애스컴 시티'로 불렸고 초등학생 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애스컴을 입에 붙이고 다니곤 했다.
지리의 이동은 역사적으로 문화의 이동을 동반한다. 미군이 여기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기에 미국의 문화 즉 서구의 대중문화가 유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스컴에 군사물자를 보급하는 보급창 외에 의무, 통신, 공병, 항공, 헌병대가 주둔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각종 부대산업이 꽃을 피우게 됐고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군을 위한 우리 음악가들의 공연활동이었다.
부평 미군부대 클럽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록의 대부' 신중현은 이렇게 증언한다. “미군들은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미국의 문화를 지키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미국 음악하면 목을 맵니다. 5시 퇴근시간만 되면 칼 같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클럽으로 떼를 지어 몰려옵니다. 저도 놀랄 만큼 미군들은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기타 솔로에 열광했어요.”
연주자들과 가수들이 미8군 영내와 영외의 클럽에 몰려드는 것은 당연했다. 에스컴시티에는 '엔시오', '로터리', '레오', '세븐' 등 스무 개가 넘는 클럽들이 성업했다. 당대 그 규모는 전국의 어떤 미8군보다도 컸다. 1970년대 초 부평에서 악단을 이끌고 클럽도 운영한 바 있는 차영수씨는 한 인터뷰에서 “악단이 연주하는 다운타운 클럽이 용산보다 애스컴 시티에 많았고, 그 중 컨트리 음악을 연주한 세븐 클럽은 미군들이 유난히 좋아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평 출신 음악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평 미8군 음악은 영내에서는 노래가 없는 재즈와 팝 연주곡들이 대세를 이뤘으며 영외에서는 컨트리와 1960년대의 사운드트랙이었던 로큰롤이 성행해 영내외가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배호 한명숙과 같은 가수들, 기타리스트 신중현 김홍탁 김청산 등이 부평의 미8군 클럽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나중 모두 국내 무대에 진출했다.
흔히 한국 대중음악의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트로트 일색이었던 이 땅에 미국 즉 서구음악이었던 재즈 영향이 나타난 '스탠더드 팝'과 '로큰롤'을 소개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을 압축적으로 실증하는 곳이 다름 아닌 부평이다. 일본 조병창 자리에 미 군수지원 사령부가 들어서는 양상이 트로트에서 미국 록과 스탠더드 음악으로의 대중가요 조류 변화와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곧 서구음악을 우리 정서로 새롭게 가공한 국산화의 역사다. 부평의 미군 클럽을 뛴 우리 밴드와 가수들, 악단들이 미군들을 위한 음악을 하면서 미래를 향한 내공을 축적했다. 그들이 우리 대중가요의 다양화와 질적 상승을 주도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부평이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성장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평에 무수한 악사들의 모여들었고 뮤지션 수요가 늘어난 타 지역의 미8군도 부평에 와 연주자를 실어 갔다. 프로덕션은 물론, 피아노와 기타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들도 여기에 진을 쳤다. 대중음악의 메카 혹은 산실이라는 표현이나 '인천밴드 연합' 대표 정유천씨의 말대로 '대중음악의 시작점', '한류문화의 원천지'라는 수식은 결코 과장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 무대에 오른 창작 음악극 <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은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은 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음악 도시' 부평을 소환해낸 작품이다. 1950~70년대에 걸쳐 부평 미8군 영내와 영외에서 성공의 꿈을 키우고 고통을 겪으면서 미래를 뻗어간 민초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뮤지컬은 올해 연말 부평아트센터 대극장으로 옮겨 전국적 콘텐츠로의 부상 가능성을 실험한다.
글로벌 문화흐름 속에서 갈수록 지역성 즉 로컬의 의미가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중음악에서 부평이 갖는 역사적 배경은 물론, 고통을 겪으며 꿈을 향해 달려간 미8군 음악가들이 남긴 궤적은 소중하다. 미군기지 이전 시점을 맞아 부평의 가치 재평가와 발굴에 관심과 실천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문화에서 특히 대중문화에서 개인과 사회의 위상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