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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음악신에서 가장 핫한 팝스타로 세카이 노 오와리를 꼽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인디즈 앨범 < EARTH >(2010) 이후로 5년, 그들은 어느덧 사잔 올스타즈(Southern All Stars)나 미스터 칠드런(Mr.Children)이라는 거대한 '역사'에 '2010년대'라는 현재만으로 대항 가능한 거의 유일한 밴드이자 음악집단으로 성장했다. 베이스와 드럼 없이 후카세(Fukase)와 나카진(Nakajin)의 투 기타와 사오리(Saori)의 피아노, 디제이 러브(DJ LOVE)의 디제이 박스라는 '결핍'의 형태가 일궈낸 기적. 자신들의 부족함을 메워 '평범함'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여정은, 어느덧 삶의 이유를 잊은 채 고독으로 연명하는 현 시대의 대중들에게 색다른 .이정표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이야 메이저의 중추에 있는 그들이지만 시작은 철저히 독립적이었다.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 하에 스스로의 힘으로 간판을 단 라이브하우스 클럽 어스(clubEARTH)는 자립의 흔적이자 증표이다. 이 성지의 제작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메인 보컬이자 중심인물인 후카세의 과거로 시선을 옮겨야 하는데, 이는 멤버들의 과거 에피소드에 대한 꼬리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선천적인 ADHD 환자로서 순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던 인물이다. 감정제어가 서툰 탓에 주위의 마찰에 휘말리게 되는 날이 많았고, 결국 고등학교를 퇴학한 후 미국으로 거취를 옮기게 된다. 1년의 체류기간동안 순조롭게 학업을 이어나가던 그는 갑작스레 심해진 정신병으로 인해 귀국길에 올랐고, 정신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곳에 속박된 기간동안 자라난 무력감은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 곳, 그 순간, 그 때의 상황이 그에겐 바로 '세상의 끝'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상태가 호전된 후, 아니 한 번의 세상이 끝난 후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어렸을 적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음악이었다. '이것 말고는 없다'라는 필사의 각오를 다졌던 만큼, 일단은 항시 연습이 가능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빈 지하실을 라이브하우스로 개조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여태까지 곁에 있던 모든 동료들을 모아 빚까지 내가며 태초의 공간을 완성시키게 된다. 그 곳이 바로 앞서 언급한 클럽 어스다.
현재의 멤버들은 모두 후카세와의 인연이 깊은 이들이다. 사오리는 유치원 때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소울메이트이며, 나카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입시 도우미이자 첫 음악 동료였다. 마지막으로 항상 피에로 가면을 쓰고 있는 디제이 러브는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로서, 팀의 마지막 퍼즐조각이 되었다. 이렇게 겹겹이 쌓아온 서사가 필연 같은 우연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연대기의 첫 페이지가 완성되었다. 2006년의 일이었다.
악착같은 연습과 홍보 덕에 점차 클럽 어스는 인디 신에서 주목하는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이 되었고, 이와 함께 음악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확실히 이들은 포지션부터가 통념을 비껴가 있었다. 투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디제이 박스. 드럼과 베이스 없는 흔치 않는 구성으로 내뿜어내는 음악은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영롱함이 감돌았다. 염세적이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후카세의 노랫말은 특히 발군. 기타 록의 구성에 일렉트로니카 비트, 클래시컬한 피아노 터치가 조화를 이룬 데뷔작 < EARTH >(2010)는 소문만큼이나 인상적인 결과물로 완성되며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주목시켰다. 2000년대 후반 인디 신에 꽤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그들이 비로소 본격적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 トイズファクトリー(Toy's Factory) >와의 메이저 계약을 체결하고 곧바로 3개월만에 부도칸 공연 개최, 싱글 'スターライトパレード(Starlight parade)'(2011)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순조로운 발걸음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어 '眠り姫(잠자는 공주)'(2012)와 'RPG'(2013)가 대히트, 단숨에 전국구로 거듭나는 행보를 보였다. 지금껏 이어왔던 록적인 테이스트를 배제하고 그 자리에 마칭밴드의 웅장함을 도입한 두 곡은 새로운 일면을 도모한 그야말로 실험작이었다.
첫 정규작 < ENTERTAINMENT >(2012)은 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메인스트림에도 자신들의 무기가 통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이례적이었던 것은, 장르의 팬들로 수요가 한정되던 다른 록밴드들과 달리, 태생을 극복하고 '일반인'들도 알아보는 전 국민적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기존의 '제프 -> 홀 -> 아레나 -> 돔'으로 이어지는 정석적인 콘서트 투어의 흐름을 거부하고, 원맨 페스티벌 < 炎と森のカー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 in 2013 >과 < Tokyo Fantasy >를 스스로 기획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했다. 공연마다 5~6만명을 동원하며 대성공을 거둔 이 축제는 그야말로 '세카오와 월드'의 절정. 그리고 2015년, 그간 쌓아왔던 이야기를 집대성한 두 번째 앨범 < Tree >(2015)가 하프밀리언에 근접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는 요즘 같은 불황에서 록밴드로서는 꿈꾸기 힘든 수치이기도 하다.
이들의 성공은 현 음악신에서 단순히 노래를 '만들고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테일러 스위프트(Talyor Swift)도 싱글 프로모션에 케이티 페리(Katy Perry)와의 개인적인 감정을 끌어들이는 시대다. 세계의 트렌드가 음악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현 시점에, 삶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감정을 작품으로 고스란히 끌어온 이들의 행보는 단연 돋보인다. 프론트맨 후카세의 가치관을 비롯해 과거의 에피소드, 각 멤버간의 관계성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야말로 이른바 '세카오와 월드'의 반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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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서사를 기반으로 한 노래들은 밴드와의 강한 동기화를 이끌어내고, 대중들은 그것을 보며 팀 자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어 음악을 접한 이들은 그들의 진정성에 큰 위안을 얻고, 그 세계에 편입되어 '결핍이 만들어낸 판타지'를 함께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만이 아닌 삶 전체를 공유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들의 활동방식은, 주요 일본음악 커뮤니티에서 아이돌 다음으로 이들의 지분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행보를 음악을 위시한 '엔터테인먼트'로 규정하려는 이들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결국 '어떤 음악을 하느냐'가 아닌 '노래 속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선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느냐'가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클래식 홀에서 녹음을 한 'スノーマジックファンタジー(Snow magic fantasy)'나, 피에로가 부리는 묘기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후카세의 심장 소리를 비트로 쓴 'ピエロ(피에로)' 등. 특정 장르에서 얻을 수 없는 독특한 사운드와 작법이 이들의 음악에 가득하다. '가사'에 맞는 요소들을 구현하려는 집념과 실험, 그것이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바로 '무레퍼런스'의 음악을 탄생시키는 요인인 것이다.
이 유니크함을 스타성으로 발현시켜 주는 것이 바로 일본의 음악 매체들이다. 음악만으로는 어필하기 힘든 시대에서, 일본의 음악잡지와 방송들은 뮤지션들이 고심해 내놓은 프로모션 방식을 일견 무리해보일지라도 최대한 존중하고 반영해준다. 고민 끝에 찾아낸 아티스트 나름의 해법을 대중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 이것이 일본 대중음악 신에서의 '미디어'와 '평론가들'의 역할 중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늑대 탈을 뒤집어 쓴 맨 위드 어 미션(MAN WITH A MISSION)이 '왜 가면을 썼는지', '왜 외계인 행세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세카이 노 오와리 역시 미디어의 세밀한 협조로 성장이 가능했던 케이스다. 평론가와 기자들은 끊임없이 이들을 인터뷰해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며, TV는 적확한 의도의 무대를 꾸며주고 딱 원하는 정도까지의 사생활을 노출시켜 준다. 덕분에 신인임에도 명확한 정체성의 구축이 가능했고, 그 독자성은 성공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처럼 미디어가 뮤지션마다 소비방법을 다르게 취함으로서, 각 팀 간의 차별화가 구축되는 문법. 이미 일본 음악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밴드와 미디어 간의 공조체제인 것이다. 이는 곧 '뮤지션과 미디어 간의 디테일한 상호협력 없이는 스타탄생 역시 불가능한 시기'로 돌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철저히 인디로 시작했어도 실력이 있고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대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기반으로, 세카이 노 오와리의 히트는 현재 열도의 메인스트림이 어떻게 활로를 찾고 있는지, 전세계적인 뮤직비즈니스의 침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하려 하는지에 대한 뮤지션 및 관계자 각각의 대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기반은 그들의 음악이 가진 범대중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순한 퍼포머에서 벗어나 송라이터와 엔지니어, 앨범 및 공연의 연출과 디렉터를 겸하는 이 네 명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로 향해 있다. 그 생명력을 담보하는 것은 필도 무드도 아닌, 독자적인 화법의 가사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친숙한 멜로디에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양분을 삶 속 깊숙이 침투시키는 경향이 좀 더 강한 일본에서, 그들의 음악이 가진 '이야기'와 '메시지'의 속성은 '음악이 음악 이상의 무엇이 될 가능성'을 재고하게끔 만든다. 음악만으로도 승부가 가능했던 세계의 벼랑 끝에서, 그들은 이렇듯 뮤지션으로서의 접근법 및 시스템과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얼마간의 대답을 동반해 시대의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세계의 끝에서 태어난 또 다른 세계의 시작. 그 새로움이 일으킨 지각변동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