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필자는 이날 꽤 늦은 시각에 입장했다. 최근 해외 신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잠비나이의 드림 스테이지 무대가 막바지에 이를 때 들어갔으니 시계가 대략 오후 여섯시를 가리킬 무렵이었을 테다. 부끄럽게도 이번 펜타포트 페스티벌 1일차의 반나절 정도는 못 챙긴 셈이다. 놓쳐버린 그 시간 속에선 스틸하트(Steelheart)와 몽니, 옐로우몬스터즈 등이 일찍이 스테이지에 등장해 멋진 공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연장으로 막 들어와 주변을 파악하고 있을 때쯤, 드림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던 인파가 메인 무대인 펜타포트 스테이지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국 출신의 4인조 하드코어, 팝 펑크 밴드 디 유즈드(The Used)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10년을 훌쩍 넘은 경력을 자랑하듯 밴드는 능란한 라이브 실력을 선보였다. 'The taste of ink'와 'Take it away' 등의 초기 곡들과 'The best of me', 'Pretty handsome awkward' 와 같은 중후반기 곡을 연주하며 넘치는 에너지를 선사한 디 유즈드에게 팬들은 아낌없이 애정을 보냈다. 특히 이날 헤드라이너로 예정돼있던 스콜피온스를 언급하며 “우리 역시 일흔이 지나서도 한국에 와서 공연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Killing in the name/Bulls on parade/Know your enemy'와 'A box full of sharp objects'로 무대를 마무리 할 때에는 열띤 환호가 따랐다.
펜타포트 스테이지를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미국의 팀이 뜨겁게 했다면 이어지는 드림 스테이지에서는 이웃한 나라 일본에서 방문한 밴드가 열기를 올렸다. 지난해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코리아 2014를 통해 첫 내한을 했던 트랜스코어 밴드 피어 앤 로딩 인 라스베가스(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가 그 주인공. 일찍부터 이들의 팬을 자처해온 사람들의 증언에 걸맞게 밴드는 실로 폭발적인 공연을 만들어냈다. 일렉트로닉과 메탈코어의 사운드를 연이어 충돌시키는 사운드 장관과 오토튠 보컬, 그로울링, 스크리밍을 동시에 던져대는 재미있는 기획과 같은 이들의 시그너처 요소들이 실로 잘 구현됐다. 시종일관 무대를 쏘다니던 키보디스트 미나미의 퍼포먼스는 단연 백미. 'Let me hear'와 'Love at first sight', 'Flutter of cherry blossom' 등의 곡을 멋지게 연주하며 팬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하던 오후 7시 30분, 우리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베이스 라인과 까랑까랑한 톤의 기타 솔로가 펜타포트 스테이지를 수놓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김창완밴드를 맞을 차례. 리빙 레전드의 등장에 여유롭기만 하던 무대 앞이 다시 한 번 관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공연도 실로 멋있었으나 더욱 인상적이었던 점은 여타 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세대가 어우러진 관객 수요 형성에 있었다. 나이를 잊은 김창완의 퍼포먼스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들었고, 모든 이들이 즐길 줄 아는 산울림의 클래식 '너의 의미', '회상', '개구쟁이',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에 맞춰 하나가 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물론 'Fax 잘 받았습니다'와 같은 김창완밴드의 곡들에도 많은 호응을 보냈다.
세대를 아우르는 공연은 하나 더 있었다. 지난 해 가을 작고한 고(故) 신해철을 기리는 넥스트의 트리뷰트 무대가 김창완밴드의 뒤를 이어 드림 스테이지에서 막을 올렸다. 고인의 공연 영상이 전광판에 등장함과 함께 'Lazenca save us'의 웅장한 전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경배와 추모가 섞인 함성으로 팀을 맞이했다. 공백으로 남은 신해철의 보컬은 여러 동료 뮤지션들이 번갈아가며 채워 다채로움과 의미를 더했다. 밴드의 또 다른 보컬이었던 이현섭은 물론이고 홍경민과 노브레인의 이성우, 크래쉬의 안흥찬, 김바다가 차례로 등장해 '도시인', '이중인격자', '안녕',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날아라 병아리', '그대에게' 등 신해철 음악인생 속의 숱한 명곡들을 다시 불렀다. 환호와 떼창은 기본. 관객들은 공연이 다 끝난 때에도 채 발걸음을 떼지 못 했다. 신해철을 함장처럼 따랐고 따르는 이들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 스콜피온스의 무대가 커다란 펜타포트 스테이지를 채울 순서였다. 올해 발표한 음반 < Return To Forever >의 첫 곡 'Going out with a bang'으로 멋지게 무대를 시작한 밴드는 'Make it real'과 'Coast to coast' 등을 연달아 내세우며 오랜 팝 팬들, 록 팬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무려 반세기라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동일한 나이를 지닌 밴드건만 에너지는 젊은 밴드들을 넘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강렬한 하드 록, 헤비메탈 사운드 위에서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의 목소리는 스콜피온스의 여전함을 과시했다. 'Blackout'과 'Big city night'으로 장식한 엔딩에 'Still loving you', 'Rock you like a hurricane'을 앙코르로 덧붙인 공연은 헤드라이너의 무대를 기다려온 팬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올해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10살이 됐다. 무대에서 한창 흥을 돋우다가 쉬어가면서 김창완밴드의 김창완은 “리허설 때 무대에 올라오면서 기둥을 만져봤는데, 괜찮았다. 10년 전의 그 태풍 다시 오라고 해보자”는 농을 던지며 이번 록 페스티벌의 10주년을 기념했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이 개막식에는 운영상에서의 실수도, 멋진 공연의 부재도, 예의 그 아쉬움을 연상시킬 법한 천재지변도 없었다. 김창완의 축하 인사처럼 그 어떤 불운이 온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펜타포트는 훌륭한 수준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고생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이렇다 할 부족함 없이 근사한 무대들로 가득했던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첫째 날이었다.
사진 : 예스컴이엔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