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전을 벌여 경쟁작들을 밀어내고 히트곡으로 차트의 정상에 서는 싱글이 있는가하면 차트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청취자만의 의미를 부여받고 플레이리스트의 첫 순위를 담당하는 싱글도 있다. 한 해를 대표하는 싱글을 갈무리하는 작업이 그래서 어렵다. 대중의 관심과 순위 싸움에서의 성적은 물론이고 작품으로서 곡만이 갖고 있는 의의와 중요성을 다 같이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각양의 가치를 지닌 수많은 곡들이 올 한 해를 빛냈다. 그중에서 10 곡의 싱글을 간추려 이즘이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박진영 - 어머님이 누구니 (Feat. 제시)
박진영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많았다. 몸매를 찬양하는 이야기에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노랫말로 생동감을 더하고, 이처럼 흥겹게 소화할 줄 아는 이도 그뿐이다. 인성과 바름을 강조하는 사람이라 이런 노골성이 딴따라의 틀 안에서만 지향됨을 잘 알기에, 성적인 뉘앙스보다 신나는 댄스곡으로 더 받아들여졌다. 주인공에 밀리지 않는 개성을 가진 제시와, 소울과 전자음악 이후 브라스 재즈피아노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곡의 구성 역시 흥을 높여준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JYP로서의 엣지를 보여줬고, 사장님의 호기는 올 한해 회사 전체로 확산되어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이미 많은 히트곡을 가진 박진영이지만 앞으로도 그의 대표곡으로 기억될 노래다. (정유나)
딥플로우 - 작두
음산한 굿 판의 외침 후, 세 명의 MC들은 작두 타는 내림 굿의 무당이 된다. 초현실적인 태평소 소리와 어두운 비트 위에서 딥플로우는 무거운 카리스마를, 넉살은 씐듯한 광기를, 허클베리 피는 귀신 그 자체를 자청하며 각양각색 재능의 최대치를 뿜어낸다. 딥플로우의 이 새로운 앤섬(Anthem)은 웰메이드 앨범 < 양화 >의 화룡점정일 뿐만 아니라, 2015년의 킬링 트랙이었다. (김도헌)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SQ
디스코 왕자 술탄이 한 손에는 기존 주 무기이던 토요일 밤 디스코텍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다른 손에 새로이 장착한 금요일 밤 클럽의 시크를 함께 들고 세계를 호령하려는 포부를 밝힌다. 이를 위해 IQ, EQ와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성적 지수 SQ(Sexual Quotient), 기존 한국 대중음악에 금기시되던 소재를 풍성함 가득한 세션에 얹히는 재미난 가사로 접근하고 있다. 진중함의 부재라는 문제의식은 이름부터 고급진 토니 마세라티(Tony Maserati)라는 거장 프로듀서의 동행으로 걷어내는데 성공. 작업과정에서도 프로그레시브의 핑크 플로이드, 펑크(Funk)의 제임스 브라운이라는 얼핏 봐도 이질성이 느껴지는 대부들을 레퍼런스로 삼았지만 결과물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기존 밴드 이미지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천명한다는 지점에서 싱글은 큰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음악이 있다. (이기찬)
빅뱅 - Bae Bae
올해 가장 파격적인 빅뱅의 곡이다. '성행위'를 상징하는 소재들과 뮤직비디오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 더욱 흥미롭다. 사운드 자체가 몽롱하고 비트마저 찰진 노래는 빅뱅에 대한 성인인증을, 그리고 기존 아이돌과 과감하게 선을 긋는 하나의 자신감이다.
5월부터 시작된 빅뱅의 '쪼개내기'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올해 음원 순위에서 자신의 싱글을 줄줄이 상위권에 올려두고 다른 가수는 2,3주면 끝날 활동기간도 자연스럽게 연장시켰다. 무난한 '대중지향적인 곡'과 시도를 더한 '실험작'들을 묶어 내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Bae bae'는 이런 대중성과 실험성이 '완전 착착 감기고', '궁합이 찹쌀떡'인 이례적인 노래다. (김반야)
전인권 - 너와 나 (Feat. 자이언티, t윤미래, 타이거JK, 강승원, 서울전자음악단, 갤럭시 익스프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그레이프 티)
록의 레전드 전인권과 후배 아티스트들의 합(合)이 곡의 속을 관통하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음악적 조건이고, 그 중요한 전제를 갖추면서 말끔한 산출물이 되어 나왔다. 전인권 특유의 표현방식과 포효에 각 아티스트의 개성들이 토핑 되어 세월 호 참사를 향한 추모 합창이 장대하게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친구, 아름다운 그대, 아름다운 우리'의 코러스는 노래가 예술적 주조물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향한 울림임을 다시금 일러준다. 2015년의 메시지 송. (임진모)
혁오 - Hooka
혁오열풍의 시작점은 '위잉위잉'과 '와리가리'였지만, 진짜 그들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낸 것은 바로 이 곡이 아니었나 싶다. 소리의 여백을 떠다니는 허밍, 동양적 색채의 기타 프레이즈가 맞물리며 생겨나는 묘한 화학작용은 밴드의 활동반경이 훨씬 넓고 대담한 성질의 것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여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진득한 보컬은 결정타. 특히 귀찮다는 듯 툭툭 내뱉다가 힘을 줘 한번씩 질러내는 후렴구의 가창은 밴드가 가지고 있는 '시크함'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레퍼런스에 대한 다소간의 논란에도 그 관심이 시들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만만치 않은 오리지널리티가 그들이 파생시킨 힙(Hip)의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터. 이처럼 좋은 곡을 만들 줄 아는 팀의 재능을 보아하니, “나 요즘 혁오 들어”라는 말의 유효기간은 자연스레 내년으로 연장되지 않을까 싶다. (황선업)
레드벨벳 - Ice Cream Cake
미지근했던 데뷔 초반 온도를 단숨에 끓어올린 것은 정교한 짜임새의 완성도 높은 팝이었다. 앙증맞은 뮤직박스, 난폭하게 쏟아지는 전자음의 대비는 리드미컬한 비트와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며 대중을 중독시켰고, 빼어난 멜로디라인과 강력한 훅은 최고의 흡인력을 자랑했다. 신인으로는 적잖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멤버 충원에도, 평범한 아이돌 팝과는 격이 다른 '힙'한 일렉트로니카로 힙스터들까지 매료시키며 팀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아로새겼다. SM의 송라이팅 캠프는 올해도 쉴 틈이 없었지만, 제 1의 수작은 명백히 'Ice cream cake'다. (정민재)
자이언티 - 꺼내먹어요
톡톡 튀는 재기로 싸인 알앤비, 소울 사운드가 2년 전, 메인스트림에서의 훌륭한 출발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면, 오늘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팝 사운드는 대중들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큰 힘을 보탠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꺼내먹어요'의 차분한 사운드, 편히 즐기기 좋은 멜로디, 공감을 이끌어내는 텍스트는 힐링을 위한 최적의 요소로 다가왔다. 음원 차트부터 텔레비전 방송까지, 조그마한 이어폰부터 길거리 매장 스피커까지 곡은 빠르게, 그리고 바쁘게 오가며 많은 이들을 보듬었다. 이전의 여러 곡들에 비해 번뜩이는 재능은 많이 감지되지 않으나, 온갖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다는 점에서 올해의 싱글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수호)
솔루션스 - Stage
최근의 신스 록 유행에 있어 솔루션스는 질적인 면으로 보나 감성적인 면으로 보나 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팀이다. 머뭇거림 없이 매끈한 연주력,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라인은 음악팬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무대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곡 'Stage'는 솔루션스의 청량한 이미지와 꼭 어울린다. 특히 멤버 나루의 감각적인 사운드 디자인이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명도의 소리 톤과 설렘 가득한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재능 있는 청춘들이 음악의 옷을 입고 비상한다. "무대를 멈춰서는 안 돼(We should never give up the stage)!" (홍은솔)
칵스 - Echo
'군대'라는 물리적인 휴지기를 거치면서 그들은 '제자리 걸음'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를 택했다. 2집의 사운드는 거침없이 팽창했으며 압도될 정도로 웅장하다. 복잡하고 화려한 스킬과 리프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명료한 멜로디는 비틀거리지 않는다. 특히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질감을 가진 타이틀 'Echo'는 이런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외형은 심플해보이는데 이는 고압축 방식으로 응집시킨 노력의 결과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듬고 다듬어 정수만을 남긴 것이다. 이런 수고스러운 과정은 이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그리고 더 뜨겁게 산화시킬 것이다. (김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