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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상황에서 자유를 찾아 도피하듯 제작되었기에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커버를 살펴볼까. 윙스를 비롯해 매카트니가 초빙한 유명인사로 구성된 죄수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담겼다.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 마이클 파킨슨, 당시 드물던 흑인 싱어송라이터 케니 린치, 훤칠한 영화배우 제임스 코번, 그 유명한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자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던 클레멘트 프로이트, 우리에겐 반지의 제왕 사루만으로 더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 마지막으로 복싱 챔피언 존 콘테까지 흔쾌히 자리를 빛내주어 명반의 탄생을 도왔다.
커버와 자연스레 연관되며 포문을 여는 곡 'Band on the run'(빌보드 싱글차트 1위)은 현학과 철학 중간지점에 놓인 '자유'라는 소재를 일상적인 가사로 풀어낸다. 수감자의 절망을 그린 도입부, 바깥 일상을 꿈꾸는 중반부, 탈옥에 성공하는 후반부를 구분 짓는 멜로디들은 들쑥날쑥한 파편 같아 보이나, 한데 그려진 '걸작'은 마치 < Abbey Road > 뒷면 메들리를 하나로 압축시켜놓은 듯해 경탄을 유발한다.
자유를 쟁취해낸 밴드는 급비상하는 록 넘버 'Jet'(빌보드 싱글차트 2위) 기류에 몸을 맡긴 후 잔잔하게 거니는 자유의 상징 'Bluebird'와 함께 창공 속을 유영한다. 활강을 마친 후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 울창한 밀림 숲 그 한가운데. 심장을 들끓게 주무르는 리듬과 중독적인 코러스를 맛볼 수 있는 'Mrs. Vandebilt', 둔탁한 베이스에 찢어지는 기타를 얹어 외치는 'Let me roll it'과 전통적인 핑거스타일 연주와 하모니로 표현해낸 폭풍우 속 안식처 'Mamunia'까지 앨범에는 결코 뒷좌석에 승선할만한 곡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을 마쳤다면 일상에 물들어볼까. 데니 레인을 작곡에 참여시킨 'No words'는 힘든 여정을 함께한 사랑에 바치는 진실한 봉헌 그 자체며 이어지는 'Picasso's last words'는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 피카소를 초청해 들고 있는 여유로운 축배다. 웅장미 넘치는 오케스트라마저 뚫고나오는 기타, 트럼펫, 보컬로서 임계점을 단숨에 돌파해버린 'Nineteen hundred and eighty five'는 첫 곡 'Band on the run'의 리프라이즈로서 앨범의 막을 내린다. 컨셉 앨범 제작을 유념하진 않고 제작했지만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가 떠오르는 시점일 것이다.
존 레논 < Imagine >, 조지 해리슨 < All Things Must Pass >, 링고 스타 < Ringo >가 있다면 폴 매카트니 디스코그래피 정점에는 < Band On The Run >이 놓인다. '구속에서 탈출한 밴드'는 영미차트 봉우리 꼭대기에 도착함으로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중과 서슬 퍼렇던 비평가를 동시에 만족시켜냈다. 살아있는 전설 폴 매카트니 경과 반세기 넘게 동행한 '최고'라는 수식어는 바로 이 앨범에 선사해야 한다.
-수록곡-
1. Band on the run

2. Jet

3. Bluebird

4. Mrs. Vandebilt
5. Let me roll it

6. Mamunia
7. No words
8. Picasso's last word(Drink to me)

9. Nineteen hundred and eighty f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