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과 다르다. 방준석-백현진 콤비는 백현진 솔로 앨범이나 공연에서 꾸준히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연주 규모나 제작, 분위기까지 전과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방백'이라는 새로운 문패를 걸고 앨범을 내놓았다. 채색이나 표현 방식도 변했다. 작사 작곡 같은 음악의 뼈대는 백현진이 만들지만 곡마다 일곱 가지가 넘는 악기들, 소리들이 더해진다. 함께한 이들이 김오키, 서영도, 신석철, 윤석철, 림지훈 같은 재즈 뮤지션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이들은 정해진 악보 없이 합주를 통해 구조를 만들고 진전시켜 나간다. 그야말로 치밀하게 계산된 각본이 아니라 찰나의 조합이다. 이것은 재즈의 즉흥적인 '잼(Jam)'과도 매우 닮아있다.
다양한 편성임에도 음악은 매끈하고 정연하다. 번잡스럽게 호화롭거나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연주는 여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와 텍스트를 좇으며 자유롭게 변주된다. 노래마다 각자의 빛깔과 모양도 분명하다. '방향'은 마칭 드럼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다짐'은 멜로디가 유려하다. '어둠'은 굴고 동양적인 터치가 두드러지고 '한강'은 나름의 화려함도 비친다.
백현진은 출중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내면에 뒤엉켜있는 여러 심정들을 두 자에 축약시켜 12곡을 내놓았다.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 '동네', '귀가'부터 스캣을 쏟아놓듯 “정말 사랑노래를 부르게 되는 밤”을 반복하는 '정말'도 강렬하다. (이 노래는 앨범에만 수록되어 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방향'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위치를 노래하는 '한강', '동네'를 넘어 '어둠', '심정'을 내뱉고, '변신'의 욕망과 '바람', '다짐'을 담는다.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 'lean on me' 같은 노래처럼”
- '바람' 중에서
'바람'에서 드러나는 태도나 마음은 백현진의 독집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나'와 '나의 삶'에 천착하던 그가 '너'를 향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뭔가 전하고 싶은 상대가, 뭔가 이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등장한 것이다. 어쩌면 이미 '방백'이 되면서 그는 '나'가 아니라 '우리'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백현진에게 새겨진 '기인'이나 '도인'의 한계를 한 단계 넘는다. 이런 '변신'은 두 사내가 던지는'음악'을 향한 물음, 그리고 치열한 고민의 결과이다.
어떤 노래는 '기운'이 서려 있다. 특히 백현진의 노래가 그러해왔다. 그의 작업들은 완벽한 짜임이나 촘촘한 패턴 보다는 직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직관이라는 것은 필시 내키는 대로 퍼붓는 '본능'과는 다른 것이다. 원초적으로 그저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자 피나는 수련을 피워내는 것이다. 그래서 직관의 결실들에서는 '초월', '자유' 이런 경이로움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백현진의 직관이 빛을 내는 건 그의 오랜 음악동료인 방준석이 이를 잘 갈고 다듬은 덕분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 너의 손 >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참으로 즐겁고 좋았단다. 행복하게 가꿔진 음악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 수록곡 -
1. 방향
2. 다짐
3. 어둠
4. 심정
5. 변신
6. 한강
7. 귀가
8. 바람
9. 아송
10. 동네
11. 정말 (CD O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