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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런 석용이 영 못마땅하기만 하다. 당신의 지인들에게는 아들이 방송국에 다닌다며 거짓으로 소개한다. 연일 계속되는 어머니의 걱정과 돌려 표현하는 포기 권유에 석용은 지치고 한편으로는 자괴한다. 일은 잘 풀리지 않으니 답답함은 더 심해진다. 이쯤 되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자문을 던지는 것이 당면하는 수순이다. 석용이라는 캐릭터는 가난한 무명 예술인이 겪는 고충과 번뇌를 대변한다.
석용의 처지를 안타깝게 그리던 영화는 궁극에는 긍정의 뜻을 건넨다. 석용은 힙합 특유의 간지를 위해, 더불어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고자 후드티의 모자를 꼭 쓰고 다닌다. 평소 어머니는 이 패션을 불만스럽게 여기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모자를 쓰지 않고 외출하는 석용을 다시 불러 손수 모자를 씌워 준다. 어머니의 걱정이 이해로 바뀌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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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잔소리를 불편해하던 석용 역시 자신이 버리는 티셔츠를 주워 입는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래퍼의 꿈을 접기로 한다. 택배 트럭을 몰기 전, 대시보드 위에 두던 나스(Nas) 사진을 뒤로 밀어내고 가족사진을 꽂는 석용은 마치 생애 마지막 랩을 하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자신의 어려운 처지, 꿈에 대한 래핑을 토해낸다. 얼마 후 차가 정차했을 때 뒤에 뒀던 나스 사진을 다시 앞에 꽂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직은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에 대한 은유다.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생계와 이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둘을 만족스럽게 병행하는 이도 있지만 아티스트의 길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대체로 많다. 개인 역량에 한계를 느끼거나 시스템과 시장 문제 때문에 좌절하고, 때로는 운이 없다고 판단해서 마음을 접기도 한다. 이외에 고생하는 가족이 마음에 걸려서 평범한 회사인의 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도 다수다. < 33리 >는 그래도 가족은 당신을 응원한다는 위안을 고요히 퍼뜨리면서 꿈을 지켜 보라고 이야기한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기초적인 격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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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에미넴(Eminem)이 주연한 < 8마일 >이 모티프가 됐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삶과 이상을 오가는 석용은 < 8마일 >의 주인공 비래빗(B-Rabbit)과 닮았다. 게다가 8마일을 리(里)로 환산했을 때 반올림해서 33리가 된다는 것이 결정적 공통점. 석용 역을 맡은 힙합 그룹 TBNY 출신 톱밥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고민하는 뮤지션의 생활에 거부감 없이 몰입되도록 한다.
영화 중 석용이 공원에서 가사를 쓰다가 집으로 갈 때 흐르는 'Run Away'와 석용이 마지막에 트럭에서 부르는 '울어도 돼'는 2014년 출시된 톱밥의 솔로 데뷔 EP < Komplex >에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