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matic(1998)
기념비적인 데뷔곡. 앞서 쿠보타 토시노부(久保田 利伸)와 미시아(MISIA) 등이 블랙뮤직의 정착을 위해 힘써왔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이팝'이라는 명확한 테두리 안에서의 시도였다.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온 이 어린 천재의 알앤비 넘버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일본 대중음악신에 받아들여지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귓가를 때리는 둔탁한 비트와 오묘하게 감정을 조여 오는 신스음, 여기에 같은 일본어 가창임에도 여태껏 50음도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루브와 바이브레이션까지. 열다섯 살에 불과한 소녀가 이 모든 것을 완성형에 만들어왔다는 것에 열도는 광분했고, 그 기저엔 우리에게도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는 자부심과 희열이 있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신성의 등장, 밀레니엄을 불과 2년 앞둔 1998년의 일이었다. (황선업)
First love(1999)
이미 자신만의 감성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노래다. 첫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특별함과 안타까움, 이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을 함축해 표현하고 있는 후렴구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마지막 키스는 담배향기가 났어(最後のキスは タバコのflavorがした)'라는 첫 소절의 가사였다. 이 노래를 < Music Station >에서 부르며 TV에 첫 출연했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순간으로 남았다. 리컷 싱글임에도 1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가라오케 차트에서는 15주 연속 1위를 달성하기도. 초반부 피아노와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애드리브가 순간 각자가 가진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의 발라드. 그야말로 그녀의 첫사랑이 모두의 첫사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들리고 불리는 시그니쳐 송. (황선업)
Addicted to you(1999)
첫 정규작 < First Love >(1999)의 기록적인 히트 이후 반년,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던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알앤비 신의 명 프로듀서 콤비인 지미 잼 & 테리 루이스(Jimmy Jam & Terry Lewis)를 기용함으로서 다시 한 번 범국민적인 화제를 낳았다. 장르특화적인 측면이 부각됨은 물론, 캐치한 선율을 쓰는데도 성공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포획한 곡이었다. 발표 당시 미스터 칠드런(Mr. Children)에 이어 역대 오리콘 첫 주 판매량 2위에 올랐으며, 1990년대 마지막 밀리언셀러 싱글이라는 발자취를 함께 남겼다. 지금 들어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의 알앤비/뉴잭스윙 트랙이다.(황선업)
Final distance(2001)
2집 < Distance >를 통해 편곡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음악적 주권을 조금씩 내비치던 시기, 주위 도움을 받아 'Distance'의 리어레인지에 도전해 완성시킨 곡이다. 본래 'Distance'를 리컷싱글로 발매하고 그 수록곡 중 하나로 실으려 했으나, 릴리즈 한 달 전 발생한 이케다 소학교 살인사건을 계기로 계획이 크게 수정되어 결국 'Final distance'를 표제곡으로 해 발표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던 사연이 있는 곡. 당시 피의자에 의해 무차별하게 살해된 아동 중 한명이 자신의 팬이었다는 것을 알고, 추모의 의미를 담고자 했던 뮤지션 본인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부분이었다. 재킷에는 추도의 메시지가 쓰여 있기도. 전 남편이었던 키리야 카즈아키(紀里谷 和明)가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맡았던 우타다 히카루의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싱글. (황선업)
Traveling(2003)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시기에 선보인 일렉트로니카 트랙. 데뷔작의 연장선상이었던 2집과 달리, < Deep River >(2003)부터 음악적 변화를 도모했으며 이 곡에서 그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특히 CG와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영상미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싱어에서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시기의 그녀를 목격하는 것이 가능하며, 코러스의 활용 및 후렴구의 멜로디 전개에 있어서도 평범함을 거부하는 송라이터로서의 진화 또한 엿볼 수 있는 역작이다.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이하는 과정에서의 눈부신 결과물로서 존재하는 명곡. (황선업)
Colors(2003)
이 곡은 < Ultra Blue >(2006)가 발매되기 무려 3년 전에 이미 단독 싱글로 나왔다. “정규 앨범에 들어가지 않은 싱글을 발견하면 짜증낼 거 같아서 넣었다”는 다소 깜찍한 비하인드와는 달리, 수록곡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할을 하며 트랙 리스트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카와노 케이(河野 圭)와 공동 작업한 편곡은 인트로부터 반복되는 몽롱한 리프, 후렴의 유려한 피아노와 몰아붙이는 신시사이저 비트, 스트링 등 온갖 요소가 뒤엉켜 실험적이다. 혼란스럽고 우울한 감성이 가미된 이 곡이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에 작곡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유의 '스물셋'과도 겹쳐 보인다. 유명인의 딸로 태어나 그 자신도 유명인이 된 우타다 히카루에게 외로움이란 필연이었을 것. 직접 쓴 '지금의 나는 그대가 모르는 색깔(今の私はあなたの知らない色)'이라는 가사가 그의 속내를 사실적으로 명시한다.(홍은솔)
Easy breezy(2004)
우타다 히카루가 아닌 'Utada'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곡이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영미권 타깃의 앨범 발매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같은 시기에 미국 본토에서는 카니예 웨스트의 첫 번째 정규 음반 < The College Dropout >(2004)이 호평을 받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보아의 상승세가 계속되었다. 일본에서의 데뷔곡인 'Automatic'부터 팝의 리듬감을 적극 도입했던 우타다 히카루는 'Easy breezy'에서 능란한 강약조절과 여유로운 그루브로 엄청난 음악 소화력을 보여줬다. 비록 일본에서만큼은 아니었지만 빌보드 차트 160위 진입과 밀리언셀러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5년 후 'Utada'는 < This Is The One >(2009)으로 또 한 번 '컴백'하게 된다.(홍은솔)
ぼくはくま(나는 곰)(2006)
우타다 히카루의 '최애곡'이라고 한다. 분신처럼 아끼는 곰인형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쿠루마(차)'가 아닌 '쿠마(곰)'라는 게 내용의 전부. 일본 음악에는 귀여운 말장난으로 가사를 쓴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곡은 동요의 형태를 띠면서도 우아한 피아노 반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사카모토 마야(坂本 真綾)의 '夜明けのオクタ-ブ(새벽의 옥타브)'와도 맥이 닿아 있다. 멜로트론 류의 포근한 음색과 쉬운 리듬은 아이들이 듣고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직전에 발표한 < Ultra Blue >가 이전까지의 우타다 히카루를 뒤집었다면, 이 곡은 그러한 반전을 또 한 번 전복시킨다. 어쩌면 '진짜' 그는 특정한 이미지로의 변천사가 아닌, 어떠한 속성으로 규정하거나 정의내리는 것에 대한 거부 그 자체일지도. 이런 히키도 히키, 저런 히키도 히키~(홍은솔)
Flavor of life(2007)
국민가수라는 조금은 멋쩍을 수 있는 칭호가 유효한 건 누구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가시적 성과 덕분일 테다. 드라마 < 꽃보다 남자 2 >의 OST로 쓰인 이 곡은 작품의 흥행과는 별개로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디지털 음원'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아릿한 호흡으로 그리는 이별의 풍경, 그가 직접 쓴 매력적인 팝음악에 일본을 넘어 한국 팬들도 호응했다. 국내 팬에게 '가장 좋아하는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를 조사했을 때 'Beautiful world'(2007)와 더불어 언제나 1, 2위에 랭크되는 곡이다.(홍은솔)
桜流し(벚꽃 흘려보내기)(2012)
휴식을 선언하고 음악적 뉴스를 일절 끊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발표한 곡이다. < 에반게리온 >과는 이미 'Beautiful world'로 인연을 맺은 바 있었고, 우타다 히카루 본인도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공공연하게 언급해왔기에 의외의 행보는 아니었으나, 미디어의 네타가 전혀 없던 때에 찾아온 깜짝 선물이기에 팬들은 격하게 반겼다. 여기서 그는 섬세한 감정 조절로 보컬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감싸 안아 점점 감정이 고조되며 애절하게 폭발하는 현악기가 압권('Colors'에서 함께했던 카와노 케이의 공이다.) 죽음의 향기가 드리운 가사 때문이었을까. 미리 공개된 < Fantôme >의 트랙 리스트 마지막에는 이 곡의 제목이 나지막이 내려앉아 있다.(홍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