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삽질 외에 허무한 일을 의미하는 삽질도 다반사다.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활동을 보여 주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는 정책, 행정 또한 자주 행해진다. 정신적 내실이 약한 사업은 그럴듯한 명목을 붙이고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허술함을 드러내고 만다. 때문에 다수의 공감을 사지 못한다.
지난 10월 말 공익광고협의회가 선보인 '한글 등 올바른 언어 사용' 홍보 영상도 졸속 사업, 삽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상은 사물을 존칭하는 잘못된 표현과 비속어 사용 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제대로 된 언어 습관을 기르자는 취지로 제작됐다. 괴상한 표현이 난무하고 틀린 표기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등 언어 파괴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으니 꼭 필요한 계몽운동이긴 하다.
이 광고에서는 산이(San E)가 주인공으로 나서서 랩으로 일상에서의 그릇된 표현을 지적하고 한글을 바르게 사용하자고 제언한다. 이 내용만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공익광고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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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산이의 출연이 잘못 끼운 첫 단추다. 공익광고 제작의 기본은 신뢰감을 주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다. 또한 해당 주제를 전하는 데 책잡힐 결점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산이는 랩 실력이 뛰어난 가수이며 인지도도 높다. 하지만 기량과 인기가 신뢰감과 항상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산이는 그동안 노래에서 비속어('인터뷰 (Interview)' 중 "알지 힙합은 간지", '모두가 내 발아래' 중 "나는 치프 너는 따까리"), 은어('Do it for fun' 중 "힙찔이", '산이 소개하기' 중 "초딩 중딩 고딩 대딩")를 많이 사용해 왔다. 욕설은 셀 수 없을 만큼 내뱉었다. 산이가 점잖지 못한 언어 습관을 회개하고 품격 있고 바른 언어를 구사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그를 섭외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비속어와 욕을 노래에 담고 있다. 예상하건대 이 광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담배를 끊지 않은 골초를 금연 홍보대사로 세운 꼴이다.
산이는 영어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우리말보다 영어의 분량이 더 많은 노래도 꽤 된다. 그동안 납득할 만한 국어 사랑의 자세를 보여 주지 못한 이가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자고 말하니 주장이 가슴에 박힐 리 만무하다. 정말 헛헛하기 그지없는 광고다.
인터넷,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다음으로 비속어, 은어가 자주 사용되는 분야가 대중음악이다. 특히 힙합에서 욕설이 대대적으로 범람하며 언어 파괴가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이번 광고는 힙합이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는 사실과 산이가 유명하다는 점에 휘둘려 만든 완벽한 실패작이다. 잘못된 언어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겠다는 의도는 애초에 증발했다. 대신 공익광고협의회의 조사와 이해의 부족, 근시안적인 사고는 명쾌하게 선전했다.
이번 광고를 통해 래퍼들이 자신의 작품 활동을 돌아봤으면 한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쉽게 욕을 남발하며 언어사대와 이상한 겉멋에 취해 영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행동에 대해 숙고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무렇지 않게 쓴 가사가 우리말 천대 풍조에 일조하고 잘못된 언어 습관을 키우는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