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런 광고가 의미하는 건 그렇게 물리적으로 보이는 외모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젊은 마음으로 생활하고 생각하라는 걸 저도 알지만 왜 꼭 그렇게 멋을 부리고 트렌드를 따라하고 깔끔한 어르신들만 젊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건지 저는 그걸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그 나이에 맞는 행동과 말을 해야 하고 또 필요하죠. 그래서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나이값 못하는 제가 나이에 관련된 팝송들을 소개해드리겠는데요. 동방예의지국의 한 사람으로서 장유유서(長幼有序/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말)에 따라 나이가 높은 순서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When I'm sixty four –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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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에 수록된 이 노래는 폴 매카트니가 16살에 만든 노래인데요. 나이가 들어서 인생을 반추하는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은 64살이 되어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연가(戀歌)입니다. 클라리넷 연주 덕분에 1920, 30년대의 축음기 시절처럼 대단히 고전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는 이 노래는 폴 매카트니가 64세가 됐을 때 그의 자식들이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해서 선물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비틀즈 멤버 중에서 64번째 생일을 맞이한 멤버는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밖에 없네요.
Hey nineteen - Steely 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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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록 밴드 스틸리 댄이 1980년에 발표한 'Hey nineteen'은 중년의 남성이 19살의 꽃다운 여성에게 연정을 느껴서 유혹한다는 발칙한 곡인데요. 노래에 등장하는 19살 여인은 심지어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모를 정도로 이 남자 주인공과 나이 차가 납니다. 그런데 어쩌죠? 중년이 아니라 노년이 되어도 남자는 젊은 여성에게 관심이 가는 걸요. 어쨌든 'Hey nineteen'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원조교제 곡입니다.
19 - Paul Hard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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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기억하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5위까지 오른 '19'은 영국의 프로듀서 겸 일렉트로닉 뮤지션 폴 하드캐슬이 발표한 곡인데요.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비트를 선보이는 이 음악은 여기서 소개해 드리는 노래들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하고 비장한 내용을 담고 있죠. 여기서 말하는 열아홉은 성인사이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19금'이 아니고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미국 군인들의 평균 나이입니다. 폴 하드캐슬이 베트남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만든 이 곡에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의 나이는 26세였지만 베트남 참전군의 평균 나이는 19살이라는 점을 강조하죠.
18 & life - Skid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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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죄는 18살이라는 나이고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야'
장전되지 않은 총인 줄 알고 장난치다가 친한 친구를 실수로 숨지게 한 18살 소년의 기사를 읽은 스키드 로우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스네이크' 사보는 레이첼 볼란과 함께 곡을 만들죠. 1989년 빌보드 싱글차트 4위와 그해 MTV에서 가장 많이 방송된 뮤직비디오로 선정되며 스키드 로우를 전 세계에 알린 '18 and life'입니다. 비장미로 채워진 이 노래는 인생을 망친 두 소년의 비극을 극대화시키며 미국 사회에 총기 규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지금까지도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I'm eighteen - Alice Co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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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국민윤리 과목에서 배운 '질풍노도의 시기'에 딱 맞는 노래가 바로 앨리스 쿠퍼가 1970년에 발표한 'I'm eighteen'입니다.
'난 어린 아이의 생각과 어른의 마음을 가졌어 /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18년을 살았어
내가 뭘 말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 / 의심의 가운데에 살고 있다고 느껴져
난 18살이야 / 난 매일 혼란에 휩싸여
난 18살이야 /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어'
묵직하고 호전적인 기타 리프, 앨리스 쿠퍼의 카랑카랑한 보컬은 메탈과 펑크의 꼭짓점에서 그 모든 영광을 수령하죠. 함께 곡을 만든 그룹의 드러머 닐 스미스는 훗날 이렇게 분노했습니다. “18살이면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갈 수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 사회가 쑥대밭이 됐을 때 미국 젊은이들은 정부를 불신했고 기성세대를 거부했죠. 'I'm eighteen'은 그 시대를 버텨야했던 영 제너레이션들을 위한 국가였고, 앨리스 쿠퍼는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Seventeen - Sex Pist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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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쿠퍼의 'I'm eighteen'에서 영향을 받은 노래입니다. 10대의 자조 섞인 패배주의적 분노가 폭발하는 'Seventeen'에서 섹스 피스톨스는 나는 일 안하는 게으른 문제아이고 베이시스 연주자 시드 비셔스도 양아치라고 외치죠. 모든 기성세대와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이 노래는 정치적이지 않은 젊은이들의 펑크 송가입니다.
17 - Rick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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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세상을 떠난 릭 제임스는 엠씨 해머가 'U can't touch this'에서 샘플링한 'Super freak'으로 유명한 펑크(Funk) 뮤지션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철저하게 외면 받은 릭 제임스였지만 미국에서는 '펑크(Punk)적인 펑크(Funk)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존 관념을 거부한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죠. 1980년대 중반에 인기를 얻은 'In my house'의 주인공 매리 제인 걸스와 'Lover girl'을 부른 티나 마리는 바로 릭 제임스가 발굴한 가수들입니다. 릭 제임스가 1984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36위를 기록한 '17'은 꽃다운 열일곱 살을 찬미하는 곡입니다.
(She's) Sexy + 17 - Stray 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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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뉴욕에서 결성된 트리오 스트레이 캐츠는 돌연변이 같은 밴드였습니다. 남들이 당시 절정을 맞이하던 디스코를 하거나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미래지향적인 뉴웨이브 음악을 할 때 스트레이 캐츠는 케케묵은 1950년대의 로커빌리 사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죠. 에디 코크란, 진 빈센트, 칼 퍼킨스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은 1983년에 발표한 3번째 앨범에 수록된 '(She's) Sexy + 17'을 싱글로 발표해서 싱글차트 5위까지 올랐는데요. 이 팀의 리더가 바로 스윙 재즈 밴드인 브라이언 셋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브라이언 셋처입니다.
Seventeen - W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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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쿠퍼의 베이시스트였던 킵 윙어가 결성한 팝메탈 그룹 윙어가 1988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26위를 기록한 'Seventeen'은 우리나라 아동청소년보호법에 걸릴만한 내용의 노래입니다.
'나는 17살이지만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을 보여드릴게요.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어리다고 하지만 나에겐 충분히 나이가 많아요'
보컬리스트 킵 윙어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루피를 소재로 한 'Seventeen'은 이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곡인데요. 이 노래가 화제성을 뛰어넘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은 기타리스트 렙 비치의 화려하고 멋진 기타 연주죠. 범상치 않은 기타 리프와 현란한 태핑, 아밍 주법은 외설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노래를 팝메탈의 명곡으로 승격시켰습니다.
Edge of seventeen - Stevie N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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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우드 맥의 보컬리스트 스티비 닉스는 1980년에 자신의 첫 솔로 앨범 제작에 착수합니다. 여기 수록될 'Stop draggin' my heart around'를 함께 부른 탐 페티, 그의 부인 매리 페티와 대화를 나누었죠.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라는 시티비 닉스의 질문에 매리 페티는 “우리는 17살 때(at the age of seventeen) 처음 만났어요”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매리 페티의 강한 남부 억양 때문에 스티비 닉스는 'Edge of seventeen'이라고 들었고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그는 수록될 노래의 제목을 그대로 정했습니다. 존 레논과 삼촌의 사망에 대한 슬픔을 담은 이 노래는 'Just like the white winged dove'라는 유명한 가사가 부제로 달려있습니다.
At seventeen - Janis 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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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때, 사랑은 미인대회 출신이나
깨끗한 피부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소녀들에게 의미 있다는 걸 알았어.
우아하지 못하고 못생긴 우리들은 집에 남아서
전화로 “나와 춤추러 갈래”라는 말을 속삭이는 애인들을 발명했지'
모든 사람들이 10대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이 외롭고 처절한 가사처럼 예쁘지 못한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힘든 현실을 직면해야 하죠. 10대 시절에 사교모임에 나가 예쁜 여성들만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한 여성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At seventeen'은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상을 꼬집으며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올랐고 1976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선 그다지 외모가 출중하지 못한 재니스 이안이 올리비아 뉴튼존, 린다 론스태드, 헬렌 레디, 쥬디 콜린스 같은 미녀 가수들을 제치고 최우수 여가수 부문을 수상했죠. 'At seventeen'은 상쾌한 봄바람처럼 산들산들거리는 보사노바 리듬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는 불편한 진실이 담긴 명곡입니다.
Sweet little sixteen - Chuck 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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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어! 이거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랑 비슷하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리액션이죠. 'Surfin' U.S.A.'가 'Sweet little sixteen'의 멜로디를 차용해서 만든 곡이기 때문입니다. 1926년에 태어난 척 베리가 31살이던 1957년에 발표한 'Sweet little sixteen'은 반짝반짝 빛나고 발랄한 10대 소녀들의 생활을 그린 노래인데요. 31살의 아저씨가, 그것도 흑인이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Sixteen candles - Cr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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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195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한 'Sixteen candles'는 흑인과 히스패닉 계 멤버로 구성된 두왑 보컬 그룹 크레스츠의 가장 큰 히트곡인데요. 16번째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당신의 눈동자는 그 16개의 촛불보다 더 아름답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 어메리칸 그래피티 > 사운드트랙에 삽입되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Sweet sixteen - Billy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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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던 에드워드 리즈칼닌이란 남자는 아그네스 스카프스라는 여인과 미래를 약속했지만 결혼 직전에 파혼당하고 말았습니다. 낙심한 그는 플로리다에 가서 산호초로 작은 성을 만들었죠. 아그네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는 아그네스와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1920년대에 실제 있었던 이 이야기를 알게 된 빌리 아이돌이 여기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가 1987년에 빌보드 20위와 영국차트 17위를 기록한 'Sweet sixteen'입니다. 빌리 아이돌이 1970년대에 펑크 밴드 제너레이션 X의 멤버였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을 정도로 처연하고 투명하고 뽕끼 가득한 'Sweet sixteen'은 전혀 그답지 않은 곡이죠.
Sweet sixteen - Hilary D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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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릴 라빈 풍의 팝펑크 스타일의 이 노래는 아이돌 여가수 힐러리 더프가 16살이던 2003년에 발표한 곡입니다. 16살 때 집을 떠나 꽃다운 시기에 인생을 즐기고 엄마가 되면 어떤 느낌이지 알고도 싶다는 내용인데요. 쉽게 말하면 집을 나가서 어느 놈팽이랑 만나서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걸 멋지고 낭만적이게 보이려는 노래죠. 그저 당당한 16살 소녀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싶은 힐러리 더프의 허세가 드리워진 곡입니다.
Fifteen - Taylor Sw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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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를 팝계의 공주로 등극시킨 2008년도 앨범 < Fearless > 수록곡으로 200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3위를 기록한 'Fifteen'은 그가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노래인데요. 아비가일이란 이름의 단짝친구가 15살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자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10대 시절은 미국 청소년들에게도 그렇게 불완전하고 흔들리나 봅니다.
7 years - Lukas Gr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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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7살은 어땠나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이가 7살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먹고, 자면 됐으니까요. 인생의 어려움도 몰랐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니 공부할 필요도 없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여움 받던 그 시절이야말로 모든 시간을 통틀어 전성기이자, 황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덴마크의 4인조 밴드 루카스 그레이험이 2015년에 발표해서 전 유럽은 물론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도 2위까지 상승한 '7 years'는 중년의 나이가 된 주인공이 어렸을 때를 추억하고 자신의 아버지처럼 60대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는 내용의 노래인데요. 지금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깊은 생각과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먹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나이가 들어 고운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윤기 있고 차랑차랑하던 검은색 머릿결이 하얗게 변색되는 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죠. 그래서 보톡스를 맞고, 여러 가지 주사를 이용해서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며 자신의 몸에 과부하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 걸까요? 자기만족?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도 과연 그럴까요?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잘난체이며 허세입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2016년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이고, 잊어서도 안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365일을 맞이하게 되죠. 시간의 흐름은 대체로 과학적 발전과 비례하지만 반드시 정신적, 사회적 성장과 비례하는 것 같진 않네요. 여러분들 모두 올 한해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