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여러모로 예능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가 되었다. 국정교과서나 위안부 합의 등 정치적 외교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이 마른 장작처럼 쌓이고 에이오에이 지민과 설현의 역사 인식 논란과 같은 사건들이 불을 지피면서 연예인들에게 역사란 '몰라도 백치미로 웃어넘길 수 있는 상식'의 선을 벗어나버렸다. 이에 발 맞춰 < 무한도전 >에서는 일찍이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TV 특강'특집을 진행하기도 했고 비슷한 취지로 래퍼들을 대상으로 하여 '위대한 유산'특집이 근래에 방영되었다.
역사 교육이라는 목적에 한하여 '위대한 유산'특집을 바라본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는 예능이라는 포맷에 역사라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정보를 담아내려다보니 생기는 문제인데, 객관성을 상실하고 자국민 감성주의에 치우친 역사 해석이나 고증 오류 혹은 얕을 수밖에 없는 지식의 깊이 등 피하기 어려운 결점들이 많았다.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한다고 혼이 비정상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일' 이상으로 해석이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그저 애국심 고취의 대상으로 손쉽게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한 역사 교육이 아닌 것이다.
특기할 점은 '위대한 유산'이 음원으로 그것도 힙합 장르를 빌려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해묵은 논쟁이지만 다수의 힙합 팬들을 자극하는 곳 또한 이 지점인데, 최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래퍼들의 면면이나 무한도전 멤버들이 래퍼로서 참여한다는 사실, 더군다나 그들 중 다수가 가사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등 소위 힙합의 애티튜드를 무너뜨리는 사안들이 여러 군데 산재한 탓이다. 굳이 < 무한도전 >뿐만 아니라 < 힙합의 민족 >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위와 같은 문제들은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이렇다 할 논쟁 종결 없이 그저 국내 음악시장의 과도기적 성격 정도로 결론지어진 채 자리 잡은 지금이다.
결국, '위대한 유산'특집은 점차적으로 커져가는 (강사 설민석으로 대표되는) 에듀테이너 시장과 힙합씬이 어떻게 대중매체 속 예능이란 포맷에 활용될 수 있는가를 역사 교육이란 취지 아래에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 무한도전 >에서 발표한 음원들이 줄곧 그랬듯 '당신의 밤'은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사실 취지의 공익성과 < 무한도전 >의 파급력을 고려해본다면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이 차트 1위를 차지한 이유가 곡의 퀄리티는 아닐 것이다.
물론,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이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가장 트렌디한 래퍼들이 참여한 음반답게 각 노래들이 일정 이상의 수준을 보장한다. 역사를 소재로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가사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래퍼가 아닌 무한도전 멤버들이 랩으로 참여하는 상황에서 각 엠씨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었다. 특히 '당신의 밤'은 오혁의 보컬을 위시하여 캐치한 훅과 각 벌스 사이의 조화가 빛을 발한 곡으로 광희의 랩 역시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 누구와 비교해도 위화감이 없어서 앨범 내에서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소재도 애국이나 충절 등 무게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다른 곡들보다 한결 가벼워 인위적인 느낌 또한 가장 덜하다. 수록곡들이 모두 쉽게 들리고 만듦새가 좋아서 현재 힙합씬의 (대중적인) 경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다른 곡들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칠 때면'에서 정준하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웃지마'라는 일갈을 날리는데, '위대한 유산'특집 자체가 정준하의 < 쇼미더머니 > 출연이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의 랩 도전 등 < 무한도전 >에 종종 등장하던 힙합 관련 에피소드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번에 발표된 곡들은 힙합을 예능에 맞게 변형한 결과물의 수준과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곡이 '독도리'인데 다른 게스트들과 다소 체급차를 보여주는 딘딘이 랩에는 소질이 없음을 여러 차례 증명했던 박명수와 만나면서 앨범의 최약체로 전락해버린다. 딘딘은 개코나 도끼 등과 달리 '위대한 유산'특집이 예능으로써 흥행하기 위해 필요했던 전략적 카드 같은 느낌을 주는데, 송민호나 지코도 어느 정도는 이런 연장선에 놓인다. 여섯 곡 중 네 곡이나 피쳐링이 붙어있는 것도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오혁이나 김종완의 피쳐링이 곡들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곡 자체의 빈약함을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감춘다는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
좌우지간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은 음원 상위권에 안착했고 얼마간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이다. 건전한 기획 의도의 TV 프로그램이 능력 있는 아티스트들을 만나 좋은 팝 음원을 만들어낸 지금의 모습을 냉랭하게만 볼 수는 없다. 지금 대중은 일반인 혹은 배우들이 출연해서 다소 어설픈 랩을 해도 이를 용인할 수 있을 만큼 힙합 속 예능에 대해 충분히 너그럽다. 그에 따라 예능에 등장하는 힙합이 래퍼 스스로 쓴 가사가 없거나 힙합 특유의 정신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비판을 가하기도 어려워졌다. 우리는 소위 아티스트라 불리는 음악가들이 예능인으로 변모할 수 있고, < 프로듀스 101 >처럼 자극적이고 초(超)기획사적인 방식으로도 성공적인 아이돌이 탄생하는 등 여러 가지 변칙 사례들을 보아왔다. 이 사례들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었으니만큼 이들에게 구태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날을 세우는 교조적인 비평은 효력을 얻기 힘들어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흥행을 거둘 수 있는 지금의 레드오션 속에서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의 예견된 성공에만 고까운 시선을 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반대해 온 것처럼 역사는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에 드러난 애국심 고취를 위한 대상 이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 쇼미더머니 >가 힙합씬에 가져온 그림자를 이해한다면 '위대한 유산'특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국내 힙합 음악의 존재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유산'특집은 참신한 힙합 음악 제작기나 역사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저 대중적 인식에 초점을 맞추어 필요한 만큼만 힙합과 역사를 활용한 '좋은 방송용'에 머무를 뿐이다. 이 비대한 방송용 콘텐츠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조금이라도 빛을 비추기 위해선 지금 당장은 시큰둥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