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었을 땐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반주 자체는 굉장히 이국적인데, 보컬과 선율은 제이팝 그 자체였으니까요. 샹송과 스카, 발칸반도의 민속음악이 히라가나 오십음도와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임팩트. 그 갑작스런 습격이 아주 유쾌하게 펼쳐지는 자매듀오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마치 옛 유랑극단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외양이지만, 테일러 스위프트와 자신들을 비교하며 전개하는 'テイラ-になれないよ(테일러는 될 수 없어)'를 들어보면 단순한 과거지향의 팀은 아닌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죠.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아옹다옹하다 결국 하나가 되어 정착하는 그 광경이 앨범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뮤지컬 속 능청맞은 연기처럼, 동시대 여성의 일상이 펼쳐지는 신명나는 46분이랄까요. 그 가능성을 인정받듯 드라마 <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의 주제가를 맡는 등 이름을 빠르게 알리고 있는 중입니다. 조만간 저만 아는 아티스트 목록에서 제외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메타파이브(METAFIVE) < META > (2016.01.13)
입이 떡 벌어지는 구성입니다.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오야마다 케이고, 토와 테이만 해도 각각의 커리어만으로 레전드라는 호칭이 붙을 만한 이들이죠. 사실 이 정도 멤버면 기대가 되다가도 우려가 되는게 사실입니다. 저 개성들이 과연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스튜디오 라이브를 보면 아시겠지만, 재미있게도 자신의 영역을 지킴과 동시에 그것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광경이 연출됩니다. '테크노 팝'의 재현을 모토로, 모두가 YMO에 대한 이해 및 존경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명이 각 2곡의 데모를 만든 후, 그것에 살을 붙여 만들어 나가는 그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킵니다. 요즘 시대에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EDM이 낯선 이들의 일렉트로니카', 그 안에서 꿈틀대는 일체감이 기적과도 같이 느껴지실 겁니다.
카나분(KANA-BOON) < Origin > (2016.02.19)
초심으로 돌아간 한해였습니다. 데뷔곡 'ないものねだり(생떼)'는 그들에게 부와 영광을 가져다주었지만, 그후 몇 년간 '히트 공식'에 매달리게 만든 주범이기도 했죠. 빠른 템포와 후크를 무기로 한 댄스 록 후배들이 넘쳐나는 지금, 그들의 가진 오리지널리티의 유효기간도 끝나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이 작품은 한계돌파의 매개체 그 자체였습니다. 싱글 위주의 페스티벌용 밴드에서, 이젠 순간을 넘어선 여운을 줄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났다고 할까요.
사실 초반의 이들에게 동했던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였습니다. 첫 EP의 수록곡 '眠れぬ森の君のため(잠들지 않는 숲 속의 너를 위해)'엔 음악바보들이 지닌 날것의 매력이 가득했었죠. 제목처럼 자신들의 기원과 재회해 완성한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은 음악에의 순수열정이 성과에 대한 압박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각오 가득한 가사와 더불어, 일정한 스타일에 강박이 있었던 전과 달리 구성에 억지가 없어 앨범 전체가 자연스레 들린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댄스록'이라는 카테고리를 극복케 하는 주역은 바로 개러지, 하드록, 메탈 등의 레퍼런스를 통해 폭넓은 운용을 보여주는 코가 하야토의 기타 사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음악에의 순수함을 되찾으며 이뤄낸 업그레이드, 더욱 강해진 풍뎅이 엔진은 당분간은 그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후지와라 사쿠라(藤原 さくら) < good morning > (2016.02.17.)
올해의 신예를 소개할 차례네요. 재즈 기반의 가창으로 인해 '일본의 노라 존스'라 불리는 이 싱어송 라이터는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메이저 데뷔와 동시에 드라마 주연을 꿰차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죠. 주제가였던 'soup'로 이름을 알렸지만, 올해 초에 발표했던 이 작품에 흥미가 더 크게 느껴지네요. 재즈와 팝의 경계가 무의미한 가창이 다채로운 입체감을 곡에 부여합니다. 장르 특화적으로 가다가도 자국의 티를 내고야마는 경우가 많은 일본음악인데, 함정을 잘 피해 중심을 잘 지켜낸 프로듀싱 또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고요.
기타 든 콘셉트의 여가수, 예를 들면 키타하라 리나나 야마자키 아오이, 오오하라 사쿠라코의 밝고 쾌활한 노선과는 또 다른, 멜랑콜리하면서도 잿빛 감도는 음색은 그녀의 스타일은 분명 유니크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성과 진성의 교차점이 부유감을 자아내는 'maybe, maybe', 일본인이 이렇게까지 본토의 감성을 담아낼 수 있구나 새삼 놀라운 'how do i look', 자신이 태어난 해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읊는 컨트리송 '1995' 등 어설픈 흉내 같아도, 자신의 색채를 듣기 좋게 발현하는 그 재능이 일본의 노라 존스라는 별칭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맙니다. 단순히 이색적이라고, 일본에 없던 흐름이 나타났다고 설명을 끝내기엔 확실히 부족해요. 유이에게 영향을 받은 포스트 유이가 꽤나 많이 보이는 요즘,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신인입니다.
산다이메 제이 소울 브라더즈 프롬 엑자일 트라이브(三代目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 < THE JSB LEGACY > (2016.03.30)
'내 갈길 간다'가 모토인 일본 아이돌 신에서, 트렌드와의 동거를 시도하는 거의 유일한 팀이 아닐까 싶습니다. EDM을 접목해 큰 성공을 거둔 'R.Y.U.S.E.I'는 엑자일 사단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큰 곡이기도 했죠. 유행하는 사운드를 잘못 차용했다가는 가수의 정체성이 그 거센 흐름에 먹혀버리기도 하는데, 이번 작품을 보니 확실히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트랙별 참여 뮤지션이 제각각임에도, 그 역량을 팀의 남성성에 올인해 완성시킨 통일성 있는 한 장입니다.
비트의 밀고 당김으로 기승전결을 창출하는 'Feel so alive'에서의 센스는 소름이 돋을 정도며, 먼 걸음 해주신 슬래시의 기타가 로킹함의 절정을 견인하는 'Storm riders' 역시 전혀 위화감 없이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DJ 아프로잭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날선 EDM 사운드를 들려주는 'Summer madness'와 1절-후렴간의 큰 낙차가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Share the love'는 그 대승적 흐름에 얕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트랙들이기도 하고요. 'Unfair world'나 'Starting over' 등의 발라드가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엑자일 사단 전매특허의 살가운 슬로우 넘버들이라 거부감이 크진 않습니다. 일본 아이돌 그룹의 음악에서 보편성과 세련됨을 동시에 겸비한 작품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그런지 그 스타일리시함이 더욱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역시 대세는 괜히 대세가 아니네요.
에이엘(AL) < 心の中の色紙(마음 속의 색종이) > (2016.04.13)
3년 전 일본에서 보았던 안디모리(andymori)의 라이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저 열심히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도, 다함께 켜켜이 묵혀 있던 감정을 날려보내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 덕분이었을 거에요. 그 중심에는 티끌없는 광기의 모체인 프론트맨 오야마다 소헤이가 있었고요. 이 작품은 그가 안디모리 해체 후 결성한 새 밴드의 데뷔작으로,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어째서 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얻기 위한 또다른 여정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포크와 블루스가 기반이지만, 투 보컬 체제에 기인한 적극적인 화성 활용 및 더욱 날선 디스토션 사운드가 전개되며 메시지성 제고의 두 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 전과 다릅니다. 앨범 전체가 한 곡 처럼 느껴졌던 안디모리 시절과는 달리, 장면장면의 화면전환이 확실해 마치 단편이 연결된 옴니버스 영화같은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물론 핵심은 '오야마다 소헤이'라는 불완전한 자아가 투영하는 삶이라는 풍경에 대한 단상이겠죠. 생에 미련이 없어 보이다가도, 인연의 무상함을 설파하는 것 같다가도, 한 줌의 미련으로 다시금 기타를 잡고 모든 것을 불태우듯 노래를 하는 모습이 마음속에 잔상을 오래도록 남기는 작품입니다.
네버 영 비치(never young beach) < fam fam > (2016.06.08)
이미 인디신에서는 일본 록의 대안으로 떠오른 화제의 5인조 밴드입니다. 저는 처음에 리버브가 걸린 느긋한 보컬을 듣고 월 오브 사운드를 한껏 차용했던 핫피엔도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감성적으로는 일본의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GS와 뉴뮤직/시티뮤직을, 스타일은 스트록스 류의 개러지 록 리바이벌을 각각 받아들여 동서양이 공존하는 독특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빈틈이 없는 치밀함을 무기로 하는 주류 밴드와 달리, 공백을 또 하나의 사운드로 환기시키는 팀 나름의 로망이 맘에 드네요. 앰프 본연의 소리를 강조한 기타와 다소 헐거운 스네어, 단순한 라인의 베이스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느낌을 중시하는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혁오 같은 힙스터 밴드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그들 또한 과거의 것들을 가져와 분류하고 해체해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조립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그런면에서 보면 요즘의 신진 밴드는 뛰어난 큐레이션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되네요. 과연 이러한 흐름이 발전해 메인스트림과 어느 정도까지 맞붙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2017년입니다.
럭키 테잎스(LUCKY TAPES) < Cigarette & Alcohol > (2016.07.06)
데뷔작 < THE SHOW >(2015)로 인디신에서 주목받은 바로 그들입니다. 야마시타 타츠로류의 펑크(Funk) 기반의 모타운 팝이라는 그릇에 일본의 정서를 찬으로 담아낸 그 솜씨가 많은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는데요. 16비트 스트로크 사운드에 집중했던 전과 비교해, 이번엔 훨씬 풍성한 들을거리를 자랑합니다. 첫 곡인 'LOVE LOVE'부터가 그런 변화를 십분 반영하고 있는데요. 인트로의 피아노, 뒤따라붙는 스트링과 디스토션은 전작에서는 볼 수 없던 요소들이었죠. 이처럼 펑크와 소울, 디스코를 조합해 사운드의 기반으로 놓고, 다양한 장식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브로드웨이 튠 스타일의 '贅沢な罠(사치스러운 죄)', 현악편곡에서 고전미가 느껴지는 'パレード(Parade)', 필리소울의 향취가 물씬 풍겨오는 'Tonight' 등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가 팀의 장기입니다. 그것을 견인하는 것은 '공기반 소리반'의 예시로 적합할 듯한 타카하시 카이의 몽환적인 보컬이죠. 2~3년전부터 레트로의 요소를 빌어 일본음악 특유의 느낌을 덜어낸 그룹들이 점차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데, 사치모스(SUCHMOS), 앞서 소개한 네버 영 비치(never young beach) 등과 함께 그 기수를 이끌고 있는 한 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요즘 일본 음악”의 대표주자, 그들의 이르다 싶은 커리어 하이 작품입니다.
04 리미티드 사자비스(04 Limited Sazabys) < eureka > (2016.09.14)
순도 100%의 팝펑크가 선사하는 상쾌함. 앨범 제목처럼 “유레카!”를 외칠 만합니다. 오로지 캐치한 선율과 신나는 리듬, 중독성 있는 후크 제작에만 집중한 덕분에 '음악은 즐겁다'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나고야 출신 4인조 밴드의 두번째 메이저 작품입니다. 쉴 틈을 주지 않는 직선적인 구성미, 단숨에 귀를 휘감는 대중적 임팩트를 겸비해 어느 누구라도 빨아들일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애초에 단순함이 약점이라면 더더더 단순하게 가자!라고 말하는 듯한 패기 넘치는 록 사운드가 재미있게도 장르가 가진 통속성을 뛰어넘는 가장 큰 요소로 분하고 있네요. 하이톤의 보컬이 동반된 스피디한 록 사운드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따가운 여름 한 복판에 펼쳐진 가상의 록 페스티벌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곡을 틀고 딱 5초만 참아보시길. 정신 차리는 순간 이미 앨범은 끝나 있을 테니까요.
마이 헤어 이즈 배드(My Hair ia Bad) < woman's > (2016.10.19)
불안함으로 점철된 시대의 세대, 그들이 겪고 있는 꿈과 사랑, 삶, 그리고 사회. 일상의 풍경에서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포착해 풀어 놓는 보컬 시이키 토모미의 재능은 작년 한해 맞닥뜨린 가장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타이트한 록 사운드 위로 일상의 언어를 나열해 써내려간 미숙한 청춘의 고해성사.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절벽에 어쩔 수 없이 몰려 쳇바퀴를 돌듯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사무칠 정도로 전달됩니다.
희망적이었던 어제와 무기력한 오늘이 교차하는 그 허무함을 나레이션이라는 말덩어리로 세상에 내리치는 '戦争を知らない大人たち(전쟁을 모르는 어른들)'과 예전 연인에게 전하지 못했던 감정을 스트링사운드에 흩날리듯 풀어놓는 '恋人ができたんだ(애인이 생겼어)', 친구도 애인도 아닌 관계를 정리하며 '마냥 어린애로 있어선 안 돼. 그런데 어른이란 건 뭔데?'라며 '어른'이라는 단어의 헛됨을 되새기게 하는 '卒業(졸업)' 등, 무심코 듣다가도 어느덧 가슴이 아려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어'라는 듯, 초반의 무던함과는 대비되는 후반부의 울부짖음, 마지막 한마디로 비수를 꽂는 구성의 미학이 다른 팀들과 명확히 차별되는 지점입니다. 이상론이 무의미한 요즘 적당한 정도의 절망을 예방주사처럼 처방해주는 '마이 헤어 이즈 배드'라는 이름의 백신, 꼭 가사와 함께 들으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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