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제목으로 한 노래들은 그 전이나 이후 부지기수다. 당대 이장희의 '편지'도 있고 1990년대에는 '클래식' 출신 김광진의 '편지'가 전파를 장식했다. 2001년 박효신의 '편지', 2013년 음원차트 1위에 오른 다비치의 '편지'가 있다는 것은 세월과 무관하게 편지가 갖는 낭만적 펀치력을 말해준다. 이밖에도 '가을편지'(최양숙) '눈물로 쓴 편지'(김세화), '백지로 쓴 편지'(김태정) '마음에 쓰는 편지'(임백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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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한해 최고의 히트곡
이 가운데 기성세대들 기억 측면에서 압권은 어니언스의 '편지'다. 촌스러운 것을 떠나 지금 밀레니얼세대가 이 노래에 품는 인상이 있다. “아버지, 큰아버지세대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것 같습니다. 직설적인 우리의 어법과는 달라요. 어니언스의 '편지'는 짧은 시(詩) 같습니다. 투명하고 서정적입니다.” 확실히 '편지'의 노랫말은 상대적으로 문학적인 베이비붐세대의 정서와 관계한다.
이 곡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매머드 히트를 기록했다. 그 시절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이장희, 김정호 등 포크 군웅(群雄)이 할거 하며 매체를 장악했지만 1974년 한해로 치면 어떤 곡도 어니언스 '편지'의 인기를 추월하지는 못했다. 이미 히트 대열에 합류했지만 어니언스는 이 한방의 필살기로 당대의 최고 아이돌스타로 거듭났다. 여기서 '아이돌 스타'의 위치에 올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방송국 TBC(동양방송)의 전설적 프로 <쇼쇼쇼>(사회 곽규석)를 통해 1973년 혼성 3인조로 데뷔한 어니언스는 곧바로 임창제와 이수영의 남성 듀오로 재편되어 히트가도를 달릴 채비를 마쳤다.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진실'을 시작으로 '작은 새', '저 별과 달을', '외기러기' 등이 연 타석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들은 1년도 채 안되어 가뿐히 스타대열에 합류했다. 그 모든 상승의 흐름이 1974년 '편지'에 와서 대폭발한 것이다.
변웅전 사회의 가요순위프로 <무궁화인기가요>에도 당당 1위에 올랐고 연말에는 KBS, MBC, TBC 방송3사의 연말가요대상에서 모조리 중창부문과 대상을 석권했다. 가히 대중가요부문의 '국가대표'로 승격해 이 곡으로 어니언스는 동경가요제 본선에 진출했고 그해 5월에는 포크가수로는 드물게 주연으로 분한 영화 <그대의 찬 손>이 개봉되어 열풍의 확산을 거듭했다. 그 무렵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그들의 리사이틀(당시 가수의 단독 공연을 이렇게 칭했다)은 밀려드는 여성 관객으로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지금의 톱 아이돌 '엑소'나 '방탄소년단'이 부럽지 않은 가공할 인기였다.
특히 영화배우 뺨칠 만큼 잘생긴 이수영은 여대생은 물론 여중고생의 인기를 독차지해 그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의 절규와 아우성이 끊이질 않았다. 박종호 감독의 영화 <그대의 찬 손>도 실은 이수영의 인기에 편승해 만든 작품이었다. '편지'를 작곡한, 사실상 팀의 간판 임창제는 영화 포스터에도 간신히 얼굴을 알아볼 만큼 사진이 작게 배치되었다. 음악적으로는 리더였지만 '동료 비주얼 지배자'에 밀려버렸으니 서러울 만도 했다.
'편지'는 그러나 임창제에게는, 어니언스에게는 아주 중요한 노래였다. 그 이전 '사랑의 진실'을 비롯한 그들의 히트곡은 모두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의 주인공인 김정호 작사, 작곡이었다. 임창제는 당시 교분이 두터웠던 김정호와 “일단 어니언스 곡으로 발표하고 나중 성공하면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자”는 '깜짝쇼'에 합의했다고 한다. 나중 두 친구의 밀약이 지켜진 셈이다. 실제로 김정호는 어니언스에게 히트를 안겨준 인물로 존재감이 급상승했고 곧 이어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로 독자적 스타덤을 획득했다.
따라서 임창제가 오선지를 그려낸 '편지'는 김정호의 굴레를 벗어난 어니언스의 독립선언으로서 '진정한 어니언스 노래'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수영이 선창하고 그 뒤를 임창제가 불러 이어가면서, '2인조 듀오체제'에 충실한 노래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전 곡들은 거의가 임창제 독창 수준이었다. '편지'는 반면 이수영의 중저음과 임창제의 약간 높은 피치가 만나 일품의 하모니를 엮어냈다. 노래방에서는 지금도 어른 두 명이 일어나 '편지'를 번갈아 부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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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주도에서 벗어나 포크 대중화 주도
대중가요 역사에서도 의의와 비중을 지니는 곡이다. 초기의 포크송은 통기타 연주가 지배했지만 '편지'에 와서는 '편곡'의 풍성함이 가해지면서 세대를 포괄하는 대중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도입부의 처연한 바이올린 연주 등 더욱 선율의 아름다움을 강조되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포크송을 듣게 만들었다. 통기타 포크에는 거리가 있었던 10대 그리고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도 반응한 것이다.
'포크가수들의 담임선생님'으로 통한 평론가 이백천선생은 “어니언스의 '편지', 이장희의 '그건 너', 송창식의 '한번쯤'을 비롯한 당시 포크송은 어른들도 좋아했다”고 증언한다. '편지'는 대학생과 지성인의 범주에 머문 포크송을 10대로 그리고 기성세대로 확산시키는, 이른바 '포크의 대중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편지'를 “임창제 작곡과 안건마 편곡의 앙상블이 빚어낸 승리”로 규정한다.
'편지'의 승리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2001년에는 신은경 주연의 영화 <조폭마누라>에 JK 김동욱의 리메이크로 노래가 흘러나와 다시금 매력이 재조명되었다. '70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로 그 이상이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편지'를 듣게 되면 낭만적이고도 쓰라렸던 청춘시절로 시제를 되돌리면서 문득 이메일과 카톡 문자가 아닌 '손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에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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