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가 한국에 온대!!'
작년 말,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물론이고, 티켓을 구하기 위해 9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매 사이트로 몰려들었다. 음악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선 콜드플레이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고, 공연 기획사는 예정되어있던 하루치의 공연을 이틀로 늘렸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사랑하는 마룬 파이브가 온다고 했을 때.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내한한다고 했을 때. 그때도 이 정도의 반응이었을까. 콜드플레이는 어떻게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매혹시켰을까.
1. 포스트 브릿팝
때는 브릿팝이 고유의 치기와 재기발랄함을 상실하고 우울의 덫으로 빠져들고 있을 90년대 후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가 활기찼던 당국의 선율들을 뭉그러뜨리고 오아시스나 블러, 펄프, 스웨이드 등 시대를 풍미했던 브릿팝 밴드들이 시장에서 멀어져 갔을 그 즈음. 영국산 기타 팝의 뒤를 잇는 신인 밴드들이 윗세대 밴드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거 등장한다. 트래비스나 뮤즈, 스테레오포닉스 그리고 콜드플레이가 바로 그들이다.
브릿팝을 죽인 라디오헤드가 < Kid A >를 내놓으며 마니아적 음악으로 잠식되었음을 알렸던 2000년. 콜드플레이는 라디오헤드의 멜랑콜리를 그대로 수혈 받은 모양새의 < Parachutes >로 데뷔한다. NME나 BBC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해 'Don't panic', 'Shiver', 'Trouble'와 같은 싱글들이 소개되었고, 그중에서도 'Yellow'가 영국싱글차트 4위에 오르며 신인답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또한 2002년 그래미 어워드의 '얼터너티브 음악' 부분을 수상하며 그래미와의 친화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 OK Computer >의 정서와 인디 록적인 요소들을 모방하였다 질타를 받긴 했지만, < Parachutes >는 당시의 라디오헤드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선율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점이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2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운 소구력이었다.
2. 히트다! 히트!
2집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는 데뷔작의 정서와 스타일을 일부 유지한 채 좀 더 듣기 편한 사운드로 선회한 음반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피아노의 중용인데, 기타 리프를 피아노로 대체한 듯한 'Clocks'나 캐치한 선율의 발라드 곡 'The Scientist', 서정시를 읊는 듯한 'Amsterdam' 등 더 많은 대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곡들이 수록되었다. 고로 음반은 불티처럼 팔려나갔다.
정작 더 호들갑을 부린 건 평단인데, < BBC >나 < NME >과 같은 영국 매체들은 물론이고, < 빌보드 >와 < 롤링 스톤 > 등 미국 평단 또한 밴드의 소포모어에 열광했다. 영국산 신예 밴드의 한 음반이 뿜어내던 뜨거운 열기는 수록곡 'Clocks'가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수상하며 점정을 찍는다.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를 통해 콜드플레이는 브릿팝의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루어 낼뿐만 아니라, 오아시스나 블러로 대표되는 윗세대 밴드들의 숙원이었던 미국 진출에도 성공한다.
3. 변화가 필요해!
2집의 대성공 이후 '넥스트 빅 씽', '넥스트 U2' 등 설레는 수식어들을 얻어냈지만, 밴드는 곧 창작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밴드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작품의 제작에 들어간다.
< X&Y >는 이전의 콜드플레이와 상당히 다르고, 상당히 같았다. 음반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전자음악의 터치. 밴드는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로 비롯되는 전자음악의 여러 곁가지들을 기존의 작법에 녹여낸다. 신시사이저를 멋들어지게 활용한 'Talk', 속도감 있는 'Speed of sound', 다채로운 구성의 업템포 발라드 'The hardest part' 등 몇몇 트랙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밴드 특유의 서정성과 한정적인 작법에 질려버린 몇몇 평단은 전작에 비해 낮은 평가를 내린다.
4. Fix You
'당신 노래는 너무 길고 반복적이야! 당신 수법은 항상 같아! 당신들은 같은 사운드를 우려먹고, 가사 또한 완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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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언트의 거장이자 데이비드 보위, U2, 토킹 헤즈의 음반을 제작한 명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ain Eno)가 콜드플레이에게 가한 일침이다.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의 제작을 맡은 그는 무리한 도전을 감내하지 않는 밴드에게 다양한 악기들과 더욱 넓은 스펙트럼을 선사한다. 포스트 브릿팝 또는 팝 록이란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된 밴드는 'Yes'에서 슈게이징을 구사하고 'Lovers in Japan', 'Violet hill'에선 앰비언트가 서려있는 밑바탕 위에서 연주하게 된다. 버브의 'Bittersweet symphony' 이후 가장 강렬한 현악 인트로를 가진 'Viva La Vida'는 이러한 변화 아래 탄생한 곡. 개인적인 정서에 머물렀던 가사 또한 삶과 죽음, 사랑 그리고 전쟁에 대해 말한다.
이어지는 < Mylo Xyloto > 또한 사운드에 대한 달라진 접근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브라이언 이노에게 한 수 배운 밴드는 명도 높은 사운드를 쏟아내고, 변칙적인 리듬을 통해 다양한 재미를 갖춘 트랙들을 내놓게 된다. 음반의 성질에 걸맞게 총천연색의 색깔을 활용한 콘셉트 또한 큰 반응을 얻는다. (이때부터 콜드플레이의 색깔 장사는 시작된다.)
5. 그런데 말입니다.
전형에서 탈피하고 사운드의 밀도를 높인 두 음반으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던 밴드는 굉장히 이질적인 음반으로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한다. < Ghost Stories >. 그야말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차갑고 차분한 전자음으로 도배된 트랙들, 그중에서도 특히 'A Sky full of stars'는 EDM의 표피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곡이었기에 기존의 팬들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변한 건 사운드뿐만이 아니다. 밴드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다이내믹한 선율 또한 담담하고 차분한 멜로디로 대체된다. 듣는 이를 고양시키던 긍정적인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밴드의 초기 음악처럼 암울하고 너절한 정서를 다시 그려낸다.
록 음악이 힙합과 전자음악에 치여 음악시장에서 떨어져 나가던 시대에 그나마 록 음악을 하던 밴드였기에 그 실망감은 더욱 컸다. '이건 변화가 아니라 배신이다.'라는 식의 원성이 록 팬들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그러나 콜드플레이식 감성 폭발 EDM에 매력을 느낀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기도 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6. 슈퍼볼 등판!
그늘에 숨어들었던 밴드는 < A Head Full Of Dreams >를 통해 다시 양지로 나온다. 원숭이들이 떼로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의 'Adventure of a lifetime'는 < Mylo Xyloto >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재현한다. 크리스 마틴의 팔세토는 여전히 감성을 찌를 만큼 아름답고, 풍성한 멜로디가 음반을 감싼다. 'Hymn for the weekend'와 'Army of one' 같은, 시류를 적극 반영한 트랙들을 통해 트렌드에 민감한 팝 밴드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잠정 중단되었던 색깔 장사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2016년.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그리고 U2처럼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들만 오를 수 있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콜드플레이가 오른다. 2000년대 이후 데뷔한 록 밴드가 오른 건 처음. 콜드플레이가 현재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 밴드'임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콜드플레이가 이 정도의 거물 밴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7. 'Coldplay'ing Now
록이 어려운 음악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부분의 기성 밴드들이 자기들만의 리그를 구성해 일부 마니아들만 만족시켜주는 편협한 음악을 하고 있는 반면, 콜드플레이는 항상 쉽고 젊은 음악을 했다. 'Yellow'로 시작하여 'The Scientist', 'Fix you', 'Viva la vida', 'Paradise', 'Adventure of a lifetime'까지. 여기에 듣기 불편하거나 어려운 음악이 있는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사운드, 즉 대중성이 콜드플레이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일부에선 콜드플레이의 음악이 한정적이다 질타한다. 그러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듯, 콜드플레이만큼 변화가 잦았던 밴드가 없다. 이들만큼 다음 작품이 궁금한 밴드 또한 드물다. 콜드플레이는 다수의 밴드들이 외면했던 시류를 적극 수용하는 '현재진행형' 밴드.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후지다고? 글쎄.
'뉴 밀레니엄 시대 최고의 밴드', '괴물', '거물 밴드' 등 온갖 설레발이 가능한 콜드플레이. 이번 주말,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