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래퍼들의 < 쇼미더머니6 > 참가율이 극에 이르렀다. “< 쇼미더머니 >에 출연하여 화제가 되면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라는 극도로 매혹적인 '팩트'는 < 쇼미더머니 >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래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무뎌지게 만들었고 이는 대한민국 힙합신 내 거의 모든 래퍼들의 < 쇼미더머니 > 참가로 이어졌다.
스윙스가 < 쇼미더머니 > 열풍에 도화선을 붙인 이후, YG의 바비, 송민호가 아이돌 래퍼의 편견을 깨부수는 데 성공하고 비호감 래퍼인 블랙넛, 슈퍼비가 대중성을 획득하였다. < 쇼미더머니 >를 통한 여럿 래퍼들의 활약은 대한민국 래퍼들을 < 쇼미더머니 >로 불러모으기에 충분했고, 특히 지난해 'Day Day'와 'Forever'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른 비와이의 메가히트가 이러한 현상에 크게 일조하였다.
아마추어 래퍼들은 물론이고 멀쩡히 음악 활동에 전념하던 현역 래퍼들까지 잔인한 랩 서바이벌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 첫 시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더블 케이가 참가자로 등장하였고, 돋보이는 음악적 성취로 순수 종파에 분류되던 키비나 이그니토 또한 경연에 합류하면서 충격을 선사하였다.
거대한 자본력과 강력한 미디어 파급력을 바탕으로 힙합 문화의 근간인 '랩'과 '패션'을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린 < 쇼미더머니 >. 비주류 문화의 필연적 고통인 '고정관념'과 '편견'에 시달리며 홍대 거리를 전전하던 래퍼들은 이제 강남 일대에서 비싼 차와 시계를 자랑하며 힙합 본유의 스웨그를 뽐낸다. 볼캡과 오버핏 티셔츠는 대세가 되었고, 골목 골목마다 스트릿 패션을 전문으로 다루는 편집매장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얼핏 화나가 노래하던 '그 날'이 온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힙합, 아니 음악 산업계의 실상은 참혹하다. 여전히 앨범 판매량은 저조하고 유명세를 얻은 래퍼가 아니면 일부러 힙합 공연을 찾는 관람객은 드물다. 각종 행사와 페스티벌에 불티나게 초청되는 < 쇼미더머니 > 출연 래퍼들과는 달리 그 외의 래퍼들은 작은 공연 하나 열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대중은 < 쇼미더머니 >의 '힙'함을 소비할 뿐, 정작 '힙합'을 소비하진 않는다.
이러한 실태로 인해 이미 성공을 이뤄낸 것처럼 보이는 래퍼들마저 지금껏 지켜온 음악적 스탠스를 내려놓고 < 쇼미더머니 >에 참가하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 쇼미더머니 >라는 특급열차에 탑승한 래퍼들.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경연에 임하는 그들의 용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지만 여전히 독립적인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음악활동 전념하고 있는 인디펜던트 래퍼들의 진정성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미 대체불가 래퍼로 꼽히는 빈지노를 비롯하여 치열한 래핑으로 예술적 감각을 선사한 화지와 저스디스, 여전히 우직한 스탠스로 선망 받는 화나 등이 그러하다.
재밌는 것은, < 쇼미더머니 >에서의 필승법이 '진정성'란 점이다. '경연 프로그램'이란 프레임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래퍼들의 경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위선'으로부터 기원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시즌에서 그러한 진정성을 제대로 발휘해낸 래퍼는 우원재와 행주. 등장부터 살벌한 래핑으로 화제가 된 우원재는 특유의 우울함을 솔직한 가사로 표현해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행주 또한 건강상의 문제를 경연곡 'Red sun'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감동을 전달하였다.
우원재의 결승 경연곡이었던 '시차'가 윤종신의 '좋니'를 꺾고 음원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 쇼미더머니 > 매체의 파급력을 이용해 공감대를 얻어낸 음악들. 콘텐츠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감동적이지만 상업주의에 영합하여 방송 매체에 귀속된 (참고로 < 쇼미더머니 > 내에서 출시된 음원은 음원지분의 일부가 CJ E&M 측으로 귀속된다.) 음악들은 진정성을 담보로 음원, 콘서트 등의 수단을 통해 < 쇼미더머니 >를 위해 소비될 뿐이다.
최근 혼족, 욜로족 등 인류 역사상 개인의 가치와 목소리가 가장 높아진 상황 속에서, 각자의 진심을 내뱉으며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힙합 문화'가 온전히 '힙합'만으로 자생될 수 있도록 더욱 진정 어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