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 머리는 인터뷰를 통해 1980년대 주로 활동한 미국의 개러지 팝 밴드 픽시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고 특히 1980년대 후반 작품 < Doolittle >식 펑크를 참고했다. 'Misread'의 지글거리는 리듬 기타 노이즈와 'Friends'의 단순한 코드 전개, 로파이(Lo-fi) 사운드로 부풀려진 부피감은 'Wave of mutilation'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고, 'Lucky girl'의 클라이맥스는 < Doolittle > 첫 번째 트랙 'Debaser'이 주는 팝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 'Half-figured'는 복고풍 로큰롤 분위기와 1970년대 호주 펑크를 선보인 세인츠(The Saints)의 'Messin' with the kids'처럼 느린 템포가 맞물려 차분하면서 동시에 산만한 음악적 모순을 꾀하며 미국 노 웨이브 운동의 일환이었던 밴드 소닉 유스의 1988년 수작
음반에는 괄괄한 성격의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Misread'의 백 코러스는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의 음울한 고딕 펑크 느낌이 풍기고, 노이즈 운용의 대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보컬 베린다 버처의 나른한 보컬이 생각나는 'Jennifer'는 물방울 소리가 나는 전자음과 스트링 사운드를 모방하는 신시사이저가 오케스트랄 머뉴버스 인 더 다크(통칭 OMD)의 'If you leave'와 티어스 포 피어스의 빌보드 1위 곡이자 뉴질랜드에서도 크게 히트한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를 떠오르게 한다. 신스 팝에서 다양한 효과를 차용한 것이다.
1980년대 영국 펑크 신의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모습은 음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이 디비전의 어둡고 무거운 실험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뉴 오더의 'The village'처럼 밝은 느낌을 주는 핑거스타일의 간단한 기타 연주와 휴먼 리그의 첫 번째 넘버원 'Don't you want me'의 쿵짝 비트 등 뉴 웨이브, 신스 팝 계열에서 많이 보이는 리듬에 'Love is all that matter'의 좋은 멜로디를 써 내려간 것이 'Lucky girl'과 'Take it slow'이다. 포스트 펑크가 갖는 구조적 형식에 뉴 웨이브가 지닌 팝 감수성을 완벽히 재현한 복고, 그 자체다.
록 신의 다양한 갈래를 참고해 방과 화장실을 전전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아멜리아는 산뜻한 아침에 어울리는 사운드에 자기 성찰적이고 조금은 우울한 표현을 담았다. '모든 것은 떨어지고, 솟아오르며 네 어깨 위로 다시 떨어지네' 시적 언어로 그저 덤덤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나열하는 그는 '방구석 펑크(Bedroom Punk)'를 통해 경험해보지 않은 막연한 과거를 그리곤 한다. 상처투성이가 된 현재보다 미화된 과거를 추종하는 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방어기제가 아닐까. 꼭 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수록곡-
1. Last to sleep
2. Lucky girl
3. Misread
4. Little uneasy
5. Jennifer
6. Take it slow
7. Shoulders
8. Friends
9. Half-figured
10. Bedroom tal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