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쿤스트 - < Muggles' Mansion >
계속해서 다른 모양을 나타내는 곡들이 귀를 뗄 수 없게 한다. 어두운 톤과 성긴 리듬의 비트로 어느 정도 요즘 스타일을 따르긴 하지만 뻔한 틀을 반복하지 않는다. 코드쿤스트는 곡들에 블루스와 록, 재즈의 기운을 주입하거나 때로는 R&B를 중심 양식으로 택함으로써 열다섯 가지 메뉴의 호화로운 코스요리를 완성했다. 몇몇 트랙의 말미에 가해진 이완이나 변주는 흥미로움을 키운다. 음색, 플로, 창법이 저마다 다른 객원 뮤지션들은 실한 재료일 뿐만 아니라 노래들의 풍미를 증폭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듣기 좋은 앨범이다. (한동윤)
데이식스 - < Sunrise >
아이돌을 넘어 그냥 '좋은 밴드'를 발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앨범 속 14개의 트랙은 이를 여실히 그리고 충실히 증명한다. 매달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며 쌓아온 경험은 창작에 대한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나아갈 곳을 명확하게 인지하게끔 만들었다. 전면에 내세운 연주 파트의 존재감, 여러 보이스 컬러가 겹쳐지며 발하는 스펙트럼은 좋은 멜로디를 타고 '보편적인 록 음악'의 기준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깊이 없이 콘셉트로만 활용하는 아이돌 밴드들의 오류와 대중성 부족이라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맹점, 이를 모두 메워내며 제시한 결과물은 다양한 갈래의 편곡과 탄탄한 송라이팅으로 같은 장르 내에서 확연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더불어 러닝타임 내내 딴청 피울 새가 없는, 좋은 곡들이 연달아 들려오는 풀렝스(Full-length)로서의 완성도도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 타이틀처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 이 작품을 통해 본다. (황선업)
김태균 - < 녹색이념 >
음반은 화려하지 않다. 힙합 신에 유행처럼 번진 스웩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으며 멜로디컬한 훅으로 대중의 입맛을 맞추지도 않는다. 오로지 알맹이. 목소리와 빽빽한 가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즉 앨범은 보기 좋은, 혹은 듣기 좋은 허세가 아닌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자 빈틈없는 자기 연마의 기록물인 것이다.
전반에 서려 있는 서정성이 우선의 시선을 잡아끈다. 무거운 분위기에 가스펠 풍 코러스가 잦은 양념이 되고 그 위에 자신의 신념, 시선, 고민을 날카롭게 올려놨다. 여기에 한 글자도 흘리지 않고 꼭꼭 씹어 삼키는 래핑이 호소력을 전달하고 영어 없이 한글로만 구성된 가사는 그의 서사에 이해도를 높인다. 누구의 귓전이라도 파고들 따가운 래핑과 래퍼 테이크원이 아닌 인간 김태균의 고뇌가 담긴 음반. 힙스러운 것들로 가득한 본질이 흐려진 힙합을 되돌아보게 한다. (박수진)
화나 - < FANACONDA >
4년 이상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예의 '라임폭격'은 여전히 무차별로 단행된다. 그 폭격의 투하 지점은 일차적으로 대중화라는 뚱딴지 미명으로 산업재해를 야기하는 '쇼미더머니'. 하지만 화나는 거짓, 위선, 차별, 개떼근성의 전체 세상으로 범주를 확대한다. 빠른 'Do ya thang'이든 비장한 '순교자찬가'든 '펜의 과다출혈'의 산물인 언어 배열, 어휘 나열을 쫓는 것만으로도 앨범은 가치를 지닌다.
부패한 주류에서 스스로를 '유배'시키면서 '오지 않는 그날, 오지 않을 그날'임을 알지만 그래도 다시 방패와 칼을 잡는 불굴의 태도. 역시 청춘과 랩은 개탄과 분노를 화약으로 쏘아 올리는 화살임을 증명한다. 그만의 음색과 긴 호흡으로 재를 뿌리는 풍자극의 변사 같지만 지혜와 진실로 충만한 메시지는 거의 설법 수준! 가슴 뻥 뚫리듯 통쾌해 하지만 우리는 절로 동시에 처절히 자신을 반성한다. (임진모)
이승열 - < 요새드림요새 >
창작자가 아닌 소비자의 이기적인 입장에서 '내 음악을 콘텐츠가 포화상태인 주류 음원 사이트에 던져 놓는 것이 싫었다'는 그의 아집에 그리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이는 귀에 잘 붙는 < Why We Fail > 이후 쉽게 소화되지 않는 음악으로 대중과 멀어져 가는 행보와 겹쳐져 더욱 서운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이승열의 여섯 번째 음반 < 요새드림요새 >는 해외 음원사이트에 결제를 감행한 소수들만 들었고,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다. 그럼에도 2017년의 가요 음악계를 정리하는 결산에 폐쇄적인 음반을 올려놓는 이유는 여타하고 올 한해 주류 음악들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던 음악을 대하는 뮤지션의 작가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늘 시도와 실험을 반복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녹여내는 작법은 < 요새드림요새 >에 이르러 여유를 찾는다. 난해하게 다가오는 트랙들마저 이전의 것들에 비해 쉽고 친절하다. 굳이 해체하고 해석하지 않아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지만, 정확한 의미를 도출하기 힘든 음반의 타이틀과 장난기 넘치는 가사로 비롯된 애매함 속에서 각자 의미를 부여하는 즐거움이 < 요새드림요새 >의 숨어있는 가치다. 이승열의 얄미운 블루스가 또 한 번 마음을 움직인다. (이택용)
김오키 - < Fuckingmadness >
이 아티스트를 정의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새 밴드 '뻐킹매드니스'와 함께 돌아온 김오키는 '친일 청산'을 모토로 내건 여유로운 애시드 소울 - 힙합 - 펑크 - 재즈를 풀어낸다.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부터 '격동의 현대사'까지 역사와 현실을 담아내는 형형한 눈빛에 한 번 놀라고, 장르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설의 메시지에 또 한 번 놀란다. 도발적인 제목과 강렬한 메시지와 달리 커리어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운드로 접근성까지 넓혔다.
유유자적 리듬처럼 들리지만 오케스트라적 밴드 지휘로부터 일궈낸 '의도된 개판'이다. 프로듀서 포커페이스(4kapas)가 주조한 비트와 김오키의 무아지경 색소폰, 밴드의 유려하면서도 치밀한 연주는 그 자체로 치열한 예술가들의 '지독한 광기'다. 15분에 달하는 'Fuc ma dreams'부터 반어적 제목의 'Banjai Kankoku'까지 한 곡, 한 멜로디, 음 하나하나가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 거듭 지평을 넓혀가는 김오키의 < Fuckingmadness >는 보다 더 뜨겁게 다뤄져야 할 문제작이다. (김도헌)
에픽하이 - <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
2014년 < 신발장 >과 이들의 성공적 복귀를 기억한다. 9집에서도 편안하고 서정적인 작법으로 수록곡 꼬리마다 놓인 여러 이름을 에픽하이 안으로 흡수한다. 'Born hater' 속편 '노땡큐'와 공허함을 담은 '빈차', 다른 힙합의 질감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앨범은 이들이 14년째 대중 곁에 존재할 수 있던 이유를 말해준다. 더 화려한 갈채를 그릴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예전만큼 잘 써지지 않는 가사와 고민도 솔직히 담아낸다. 앨범을 들을수록 저릿하게 파고드는 건 빛나던 그룹의 총명함보다 우리가 나이를 먹은 만큼 이들도 시간을 품어왔다는 사실이다.
공로를 과거로 가두기엔 에픽하이는 여전히 소중하고 특별한 팀이다. 의미 없이 채운 랩이 늘수록 이들의 언어가 갖는 무게, 그만큼 써내려갔을 펜촉에는 책임감이 배어있다. 불완전한 청춘이 음악 속에 활발히 표현되는 지금도 열병과 유약함을 타블로만큼 비유해낼 이가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가사가 좋아 랩을 외우던 하이스쿨은 이제 '어른 즈음에'와 '문배동 단골집'의 내용을 가슴으로 느낄 만큼 자라 공감한다. 소리 아닌 상처 내서 만든 노래로 에픽하이는 공고히 서있다. (정유나)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 < 김창완 >
거대한 콜라주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선 단단한 하드록의 호흡을, '묵묵부답'에선 헤비메탈의 묵직함을, '숨'에선 진중한 서정을, 바버렛츠와 함께한 '러브신드롬'에선 가볍게 통통 튀는 로큰롤을 각각 담았다. 이 서로 다른 개성의 음악들이 김창훈이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통과하면서 하나의 스타일로 우러난다. 신기할 정도다. 형 김창완과 함께 산울림 전설의 일원으로서 음악을 체화(體化)한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와 관록 아닐까. 이 독특한 어우러짐은 계산적으로 만들어낸 '일관성'이라기보다는, 이것저것 의식하지 않고 그저 온몸으로 뚫어버리는 거장의 굵직한 '관통력'에 가깝다.
2017년에 산울림을 불러낸다는 것을 단순한 '재현'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테다. 여기서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유병열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록 장르 전반을 넘나드는 탄탄한 연주력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에 견고한 다리를 놓은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헌정하는 비장한 대곡 '첫사랑 광주야'에선 국악과의 크로스오버 위로 수려한 록 기타 솔로를 보여주고, '김창완'에서는 산울림 특유의 장난기 있는 사이키델릭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록 큰형님의 듬직한 풍채! 산울림은, 록은 아직 여전하다.(조해람)
리짓군즈 - < Junk Drunk Love >
느릿하고 나른하며 가끔은 게으르기도 하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 혈안이 된 세상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가를 내보이기 바쁘다. 호화롭고 부티로 가득한 유흥과는 또 거리가 멀다. 햄버거를 한가득 베어 물고 콜라로 입안을 적당히 적시고서는 취해 늘어질 곳을 찾아 떠나고 또 노래한다.
흥미롭게도 리짓군즈의 이 너절한 이야기 너머에는 치밀한 구성이 뒷받침하고 있다. 나릿한 그루브 위에는 펑키하고 약간은 재지하며 은근히 로킹한 비트가 올라서있고, 단단한 래핑은 다채롭게 레퍼토리를 풀어내는 데다, 훅은 더 없이 캐치하다. 너저분한 테마 뒤로 높은 완성도를 숨긴 재미있는 작품. 정크푸드와 알코올, 담배 연기, 그리고 여름과 해변, 사랑을 향한 유쾌하고도 불콰한 찬미는 크루와 < Junk Drunk Love >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수호)
언니네 이발관 - < 홀로 있는 사람들 >
할 만큼 다했다.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도 다했다. '마지막'이라는 기약을 두고 만들어진 앨범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아낌없이 모두 소진했다.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과 멜랑꼴리한 신스 팝으로 변한 것도 그 과정 중 하나다. 이런 변신은 타 앨범과는 확실히 다른 질감으로 느껴지는데, 사실 스타일이 조금 달라졌을 뿐 주제나 가사의 내용은 여전하다. 냉소적이고 까칠해 보이지만, 이들은 어느 무엇보다 '사람'과 '마음'에 충실하다.
이석원은 "5집처럼 힘들게 앨범을 만들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우리가, 그보다도 길고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새 앨범의 소회를 밝혔다. 본인들의 성에 차지 않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갈고 다듬은' 음악들이다. 너무나 매끈한 사운드라 오히려 그의 강박과 곤두선 신경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앨범을 내놨다 하면 누구보다 믿고 들을 수 있는 언니네 이발관이 아니었나. (김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