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불가의 사건이 영화처럼 이어지던 작년을 지나 2017년은 안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의 해였다. 대통령도 새로 뽑았고, 군데군데 개혁을 위한 용틀임이 일었다. 그사이 대중 음악신을 돌아본다. 올해는 아이돌의 꾸준한 강세와 인디신의 역주행, 그리고 무엇보다 K팝의 세계적 저변이 확대된 해였다. 그 크고 작은 바람들을 모아본다.
1. '변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양상
2009년 첫 등장을 알린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풍이 여전하다. 다만 그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기준점은 바로 2016년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방송된 < 프로듀스 101 >. 이 프로의 성공은 '일반인 중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서바이벌'로 장소를 이동시켰다.
▶< 프로듀스 101 시즌2 >와 국민 프로듀서. 그리고 워너원
1탄의 여성 아이돌에 이어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시즌2의 방송은 초장부터 '활활' 타올랐다. 첫 회의 시청자 투표수가 기존보다 3배 가까이 상승함은 물론 프로그램이 진행됨에 따라 소위 '마이돌 키우기' 열풍이 불며 지하철역 배너, 버스 전광판, 심지어 카페 진동벨에까지 아이돌의 사진이 걸렸다. 이는 세대 불문이었다. 대중음악의 중심 향유 세대인 10대에서 40, 50대까지 발 벗고 나서 국민 프로듀서를 자처했다. 순위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고, 악마의 편집, 출연진별 분량 논란 등 많은 잡음을 불러낸 방송이지만 끝내 데뷔한 11명의 워너원 멤버들은 아이돌 생명 리부팅에 성공한다.
반대로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 < 쇼미더머니 6 >는 주춤했다. 우승자의 음원이 몇 주간 줄 세우기를 하던 이전과는 달리 3등을 차지한 우원재의 '시차'만이 젊은 세대의 억압된 감정을 대변하며 기를 폈다. 이렇듯 시들어가는 오디션 방송의 빈틈은 육성 시뮬레이션이란 새 판을 일군 아이돌 서바이벌로 진화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마케팅, 이제 아이돌 산업의 핵심 작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눈부신 도약의 K팝
K팝은 친근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지녔다. 외국 문화에도 이질 없이 섞여들 사운드의 익숙함이 그것이고 차별이라 하면 전에 없이 화려한 칼군무다. 이렇다 할 아이돌 강자가 숨죽인 팝 시장에서 작금의 한국 아이들은 충분한 대체재다. 여기에 활기를 띤 SNS 특수는 우리 음악의 세계적 도약에 큰 힘을 보태줬다.
▶'피 땀 눈물'로 일군 방탄소년단의 '봄날'
올해 방탄소년단은 등장하는 자리마다 새 역사였다. 데뷔 이후 꾸준히 제작한 영상 콘텐츠와 SNS 활용이 국경 너머의 팬들을 옭아매며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친근함으로 쌓아 올린 팬층은 반전 매력의 파워풀한 춤사위를 통해 더욱 공고한 전 세계 '군단'을 일궈냈다. 그리고 드디어 5번째 미니앨범 < Love Yourself 承 'Her' >은 대중음악의 심장, 미국 침투에 성공한다.
그들이 거둔 성과는 대단했다. 앨범은 빌보드 차트 7위로 데뷔했으며 세계적인 DJ 스티브 아오키와 함께한 리믹스 버전의 곡 'Mic drop'은 싱글 차트 28위에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심지어는 해외 음악 잡지에서도 그들을 대서특필하니 가히 한국의 '역대급 봄날'이었다.
주류 3대 기획사의 광폭한 두들김에도 꿈쩍없던 세계무대였다. 'Next big thing!' 투의 전형적인 마케팅이나 홍보도 없었고 심지어 정식 데뷔로 직접 발을 들인 것도 아닌, 부름에 의한 다녀감이었다. 이는 음악이 가진 보편성을 이용한 부지런한 노림수였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의 앨범, 땀으로 일군 깍듯한 춤 실력, 진심으로 다가간 팬들과의 교류. 이 진정성 있는 울림은 자본력과 네임벨류 우선주의 사회에 대한 한 마디 외침이다. '누가 내 수저 더럽대, I don't care. 마이크 잡은 금수저 여럿 패!'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K팝 신화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면 방탄소년단의 승리는 그 너머의 현실화였다. 한글로 적힌 가사를 들고 중소회사 출신 그룹이 일군 값진 성공. 굳건한 장르로 굳히기 중인 K팝, 올해 그 선두에는 방탄소년단이 있었다.
3.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역주행 열풍
발매 두 달 만에 5개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역전극에 성공한 윤종신의 '좋니'를 필두로 올 한 해 역주행은 유난히 많았다. 작년 역주행 단어를 확립시킨 EXID의 '위아래'가 소위 말하는 '직캠'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는 아이돌 팬덤과 유튜브, 인터넷 방송 등 비주류 매체가 음악 차트에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인디 음악의 새 창구
한 인터넷 방송 BJ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는 특유의 키치한 매력으로 여러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올 초 역주행 열풍의 시작을 알렸다. 마크툽의 'Marry me' 역시 마찬가지. 유튜브에서 활동 중인 인기 커버 가수의 선택을 받은 곡은 발매 3년 만에 차트를 거꾸로 올라 상위권에 안착한다.
인기가수의 금빛 망치질도 이어졌다. 일반인의 길거리 노래 영상으로 관심을 받던 멜로망스의 '선물'은 워너원 팬미팅 현장에 울려 퍼짐으로써 아이돌 팬덤의 전폭 지지를 받았고, 문문의 '비행운'은 브이앱 라이브를 통해 방탄소년단 멤버의 추천을 받으며 그 세력을 넓혔다.
대중적 등용문이 좁았던 인디계에 SNS를 타고 유행한 일반인의 커버 열풍이나 방송국보다 강력한 아이돌 팬덤의 관심은 시기가 준 기회였다. 다만 이 새 출구가 록, 일렉트로닉, 포크를 아우르는 인디의 다문화 생태계를 마케팅의 영역 아래로 한정 지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판도라의 상자 앞에 서 있다.
4. 음악 페스티벌로 돌아본 대중 취향
왕년의 록 페스티벌은 체력장이었다. 하늘 가득 메운 마니아의 깃발 행렬과 함성. 거친 일렉트릭 기타 리듬에 맞춰 몸을 부딪치는 슬램 파티는 그야말로 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자전하던 록 음악이 공전 주기로 돌아서서일까. 올해 '록페'에는 록이 없었다.
▶누가누가 다녀갔나 1
뛰기보다는 듣고 즐기기 좋은 축제였다. 지산 밸리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에는 일렉트로니카 진영의 로드, 메이저 레이저, 고릴라즈 연성화된 밴드 음악의 루카스 그레이엄, 슬로우다이브, 알앤비의 갈란트 등이 찾아 콩닥거리는 심장박동을 끌어냈다. 강력한 밴드로 무장했던 예전의 활기만은 못하지만, 펜타포트 역시 저스티스, 바스틸, 두아리파, DNCE를 통해 전과 다른 흥겨움을 양산했다.
▶누가누가 다녀갔나 2
드디어 성사된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티켓팅은 90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모으며 서버를 다운시켰고, 역대 최대 인파인 9만 명이 운집한 콘서트장은 형형색색의 빛깔로 양일간 관중의 마음을 물들였다. 그중 세월호 추모를 위한 10초 묵념은 당일 한국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거장의 처방이자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와는 달리 차세대 팝 디바 아리아나 그란데는 짧은 리허설 시간과 콘서트 진행 문제로 아쉬움을 샀다. 손목 부상으로 인해 내한이 취소된 에드시런 또한 마찬가지였다. 투어 일정이 다시 잡힌 후에도 한국은 라인업 포함되지 않아 피켓팅을 뚫었던 팬들이 눈물을 삼켰다는 후문. 이 외에도 제프 벡, 스팅, 리암 갤러거, 푸 파이터스, 등 걸출한 뮤지션이 2017년의 대한민국을 무대로 선택했다.
최근 록 페스티벌을 찾는 관객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주류 팝스타의 내한은 증가했다. 음악적 분출구이던 록페가 소풍 느낌의 작은 축제로 변화하고, 대신 그 열망을 한 명의 아티스트로 응축된 콘서트에서 해결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문화가 변한다. 즐기는 방식은 달라졌어도 언제나 우리의 곁에는 음악이 존재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