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햇볕이 한풀 꺾인 저녁 무렵이면 괜찮을 줄 알았다. 관객이 내뿜는 에너지는 정오의 열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고 리듬에 맞춰 흔드는 몸은 흡사 '무한동력'을 방불케 했다. 6월 8일 금요일부터 6월 10일 일요일까지, 국내 최대 규모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간, 관객 수, 라인업까지 부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울트라 코리아 2018. 3일간 열린 'EDM 제전'에서 잊을 수 없는 아티스트와 그 순간을 되짚어 본다.
6월 8일 1일 차 - 갈란티스(Galantis) & 제드(Zedd)
하루 일과를 마치고 유독 발걸음을 서두른 결과, 축제의 시작을 스웨덴 일렉트로닉 뮤직 듀오 갈란티스(Galantis)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을 세계에 알린 싱글 'Runaway(U&I)'를 필두로 'Gold dust', 'Fire bird'를 듣고 있으니 이제야 메인 스테이지의 볼륨에 귀가 적응을 했다. 두 사람 뒤로 놓인 드럼 세트는 무대를 꾸미기 위한 장식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가져온 스틱으로 북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니 리듬 액션 게임 '태고의 달인'을 떠오르게 하였다.
갈란티스의 무대가 무르익어갈 무렵, 메인 스테이지는 인파로 발디딜 틈 하나 없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후속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제드(Zedd)! 'Beautiful now'의 중독성 강한 드랍은 제드가 등장하기 전부터 스포츠 응원가처럼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인터미션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제드의 히트곡을 미리 들으니 새삼스레 다시 한 번 그가 절대적 히트메이커임을 깨달았다.
본 무대에서는 그러한 파괴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미리 들은 'Beautiful now'를 시작으로 국내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던 'I want you to know'까지 제드가 준비한 트랙 하나하나를 귀를 기울여 들었다. 흥미로웠던 건 중반부에 방탄소년단의 'Fake love'를 틀었다는 점! 그간 피처링 형태로 케이팝 가수가 참여한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유명 페스티벌에서 케이팝을 트는 DJ를 만나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엄청난 떼창을 보여줬던 제드의 무대는 'Clarity'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9일 2일 차 -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 모드스텝(Modestep)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2주 연속 정상을 지킨 곡. 번화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곡, 'Closer'는 이번 울트라 코리아 2018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소나기 예보가 있던 2일차는 아침부터 잔뜩 구름 낀 날씨로 페스티벌 방문객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경기장을 적시는 약간의 비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쾌적한 환경에서 축제를 즐기게 돕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거센 비가 내렸다.
알엘 그라임(Rl grime) 무대('Core'는 굉장했다!) 중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스티브 안젤로(Steve Angello) 공연 때 더욱 줄기차게 내렸다(나방 포함). 일부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들은 마니아 층의 두터운 사랑을 받는 레지스탕스 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EDM 장르를 물질에 비유한다면 빅룸은 모두를 취하게 하는 알코올, 트랜스와 테크노는 더욱 정신을 또렷하게 돕는 카페인쯤 되지 않을까.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온 레지스탕스 무대에는 '폽오프(Popof)'가 단순하면서 몽환적인 비트로 사람들의 지친 몸을 말끔히 치유했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의 재결합 여운을 남기는 멘트와 함께 스티브 안젤로가 무대를 떠나고 얼른 체인스모커스가 나오길 바라는 함성이 종합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하늘도 체인스모커스를 원활하게 즐기고 싶었던 걸까. 거짓말같이 그친 비는 주변 공기를 쾌적하게 바꿨다.
인트로로 'Sick boy'와 준비해온 다양한 메시업을 선보이며 그들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보여주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그 곡'에 앞서 'Something just like this'의 전주가 나오자 모두가 환호했다. 하지만 익히 들어 아는 그들의 곡이 나오기까지, 다소 모험적인(?) 선곡과 집중하기 어려웠던 드류 태거트의 보컬 등등 체인스모커스가 가진 메인 헤드라이너 타이틀을 놓고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예측불허인 리스트를 뒤로하고 등장한 'Closer'! 한마음이 되어 드랍 파트를 외치는 것을 들으니 아쉬움도 저만치 사라졌다.
울트라 코리아의 진면목은 라이브 스테이지에 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메인 스테이지에 비해 전체 인원이 적어 쾌적한 환경에서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고 무대 위 아티스트와 교감할 수 있는 포인트 또한 상당히 많다. 유투브를 통해 본 모드스텝(Modestep)의 무대 영상은 체인스모커스를 등지고 갈 만큼 매력적이었다. 드러머 '팻(Pat lundy)'의 연주와 '조시(Josh friend)'의 목소리는 덥스텝 사운드와 어우러져 지켜보는 모든 이를 광란에 빠뜨렸다. 무대에 집중하면 사진을 남기지 않는 편인데 모드스텝 클로징 때는 묘한 여운이 남아 한 컷 남겼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남긴 사진에 조시와 팻이 찾아와 댓글을 남겨주었다 :)
6월 10일 3일차 -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 & 씨엘(CL) & 아이스 큐브(Ice Cube)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는 명곡 퍼레이드를 펼치며 3일차 저녁을 뒤흔들어 놓았다. 'Like I do', 'Titanium', 아비치의 'Wake me up'을 연달아 틀더니, 그다음에는 2014년에 대한민국 클럽 씬을 뒤흔들어 놓은 'Bad'로 공연 초반부 화룡점정을 찍었다. 여기까지가 무려 시작 10분 후였다.
어쩌면 데이비드 게타야 말로 올해 페스티벌에 참여한 DJ 중 가장 관객 중심적인 트랙리스트를 준비한 '소통형 아티스트'가 아닐까. 울트라 코리아를 찾은 대다수는 그날 게타가 튼 음악의 7할 이상은 사전에 들어봤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와 마니아지지 성향이 강한 아티스트의 균형을 맞추려 애를 썼을 주최 측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다.
한편, 그 시각 라이브 스테이지는 시간 여행 중이었다. 투애니원 해체 이후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선 씨엘은 그룹 활동 시절 곡들과 미국 데뷔 싱글인 'Lifted' 등의 솔로곡을 선보이며 여전한 무대 활보 능력을 과시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의 리더와 함께 지난 명곡을 따라 부르며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약 30분 남짓 진행된 씨엘의 공연이 끝나고, 시간은 한 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전설적인 갱스터 랩 그룹 N.W.A의 일원이자 탈퇴 후 솔로 활동 및 잠시나마 영화배우와 제작자로 활동했던 아이스 큐브(Ice Cube)가 등장했다. 세월이 무색하게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 보여주는 에너지라면 'Fuck the police'나 'Black korea'를 기대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쉽게도(?) 라이브를 만날 수 없었다.
< Ultra korea >는 특정 장르의 한계를 넘어 페스티벌 자체에 담긴 재미를 일반 관객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브랜드 파워를 갖췄다. 평소에는 입기 어려운 페스티벌 의상을 차려입고 쩌렁쩌렁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리듬에 맞춰 주변 눈치 볼 일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즐기는 것도 축제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올해로 7회를 맞은 울트라 코리아. 8회를 맞는 2019년에는 어떤 라인업과 무대로 팬들을 설레게 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 제공 = UC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