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상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영어 단어 '퍽'(fuck)이다. 대다수 래퍼가 약속이라도 한 듯 줄지어 이 단어를 연호한다. 하도 많이 나와서 정식 추임새 내지는 가사 구성의 필수 어휘로 지정됐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최근 나온 작품들을 훑어보면 아주 과장된 서술이 아님을 알게 된다. 6월 20일 출시된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의 세 번째 정규 앨범 < Secondhand Smoking >에는 연주곡 세 편을 포함해 총 열네 곡이 수록돼 있다. 열 명이 넘는 객원 래퍼들이 부른 열한 편의 노래 중 아홉 편에서 그 영어 욕설이 등장한다.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가사를 기준으로 그 단어는 '머더퍼커'(motherfucker) 같은 활용을 포함해 총 37회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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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레이블 인디고 뮤직(Indigo Music)이 6월 24일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 < IM >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섯 명의 래퍼가 부른 열 곡 중 일곱 편에 '퍽'이 쓰였으며, 총 32회 나온다. 사실상 인디고 뮤직의 모회사인 저스트 뮤직(Just Music)이 같은 달에 낸 < Series >에서는 '퍽'이 열다섯 번 출현한다. 이쪽도 문제의 단어를 정성스럽게 찍어 낸다.
7월 1일부터 7일까지 출시된 158편의 노래들도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인스트러멘틀 힙합과 박정민이 무명 래퍼로 분한 영화 < 변산 > 사운드트랙 앨범을 뺀 134편 중 마흔일곱 편에 '퍽'이 분포돼 있다. 그 수는 총 237회나 된다. 많은 래퍼가 운을 떼기만 하면, 걸핏하면 '퍽퍽'거리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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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에 따라서 우리말로 '*나', '*발', '* 까!' 정도로 해석되는 저 단어는 힙합의 선천적 특징에 부합한다. 힙합은 대결과 경쟁 활동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뛰어남을 과시하는 것이 주요 강령으로 자연스레 굳어지게 된다. 욕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한 척, 더 센 척하는 일차원적 방법으로 통용되다 보니 노래에도 쉽게 스며들 수 있었다. 저 단어를 쓴 우리나라 힙합 노래들도 본인이 최고라면서 불특정 래퍼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편, 영어 욕설의 범람은 국내 래퍼들 사이에 사대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위협하려고 할 때, 못마땅한 일을 겪어서 분통을 터뜨릴 때, 놀랍거나 멋진 광경을 목격했을 때 입에 담는 비속어는 뻔하다. 대부분이 한국어 비속어를 꺼낸다. 저 영어를 뱉는 이는 거의 없다. 외국 래퍼들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고, 영어를 사용하면 좀 있어 보인다는 망상을 품은 나머지 욕설마저도 영어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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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어 욕설을 걸러 낸다고 해서 노래들의 그림이 곧장 평화롭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영어 욕설이 증발해도 곳곳에는 한국어 욕과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 등 여전히 흉한 침전물이 남는다. 힙합의 생득적 특질에 의거해 과도한 허세, 안하무인격 태도가 노래들의 뼈와 살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주변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욕을 하는 것이 나쁜 행동이라고 교육받는다. 악한 언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폭력성을 키울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릇된 행위임을 알면서도 계속한다면 아이만도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래퍼들을 비롯한 힙합 뮤지션들은 성숙한 고민과 적극적인 여과 작업을 거쳐 힙합을 수용했어야 했다.
욕설과 불쾌한 표현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상을 마주하고 있자니 1996년 폐지된 음반사전심의제도가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어처구니없는 잣대로 음악인의 사상과 표현을 옭아매는 폐단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덕분에 상스러운 가사는 덜 볼 수 있었다. 비상식적인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 그에 상응하는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지기 마련이다. 지금 같은 가사는 검열의 망령을 불러내기에 충분하다. 선배 음악가들이 힘들게 쟁취한 표현의 자유를 유의미하게 누리는 자세가 래퍼들에게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