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곡으로 2018년을 기억하게 될까. 올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싱글이 발표됐고 그 중 히트한 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울고 웃고, 분노하면서도 공감하며 즐거움을 선사한 2018년의 싱글 10장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마미손 '소년점프'
“누군가 케이팝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마미손을 보라!” '소년 점프'가 힙합이라고? 무슨 소리. 팝도 힙합으로 대체된 마당에 케이팝의 종합 컨텐츠 적 성격까지 고려하면 '소년 점프'는 단연코 올해의 '가요'다. 공원 운동기구 위에서 좀비처럼 흔들리는 마미손, VHS 방식의 비디오 프레임, 1980년대 청춘 드라마와 스포츠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각종 효과, 노래방 배경화면, 한국 특유의 광적인 기독교 문화 등 뮤직비디오는 대한민국 그 자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장을 하면서 "돌 맞은 개구리처럼" 울부짖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며 김성모 만화의 유명한 대사를 외치는 마미손의 가사는 한국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밈(meme)으로 가득 차 있다. 쇼맨십, 엔터테인먼트, 여기에 < 쇼미더머니 > 탈락 서사까지, 마미손이 준 아이돌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배기성의 유쾌한 마초이즘과 강렬한 록 사운드가 만난 '소년 점프'는 한국의 런 디엠씨 타이틀을 노리는 마미손의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정연경)
문정후 '이방인'
인생이 힘들고 슬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삶의 진리다. '이방인'은 이 사실을 진실로 일깨워주는 빛나는 싱글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좌절을 용기로, 어둠을 광명으로 인도하는 '이방인'은 오늘도 힘든 우리를 다시 분기탱천하게 만든다. 슬프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발현되는 긍정과 용기는 록 밴드 뷰렛과 다른 음악을 하고자 했던 문정후의 결단과 맞닿아 있다. 힘들고 슬플 때 들어야 하는 '이방인'은 씻김굿 같은 노래다.(소승근)
박지민 'April Fools(0401)'
'히트하는 음악보다 나만의 음악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박지민의 다짐이 담겼다. 긴 공백기에 조급하지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강박으로 과하지도 않았다. 차분한 감정선으로 출발해 특유의 탄력적인 보컬 역량을 선보인 'April fools(0401)'는 '좋은 음악'을 고민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절제가 인상적이다. 폭발적 고음과 가창력을 쏟아내던 어린 소녀가 '참아내는' 매력을 깨친 것이다.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제목의 '만우절 농담'과 배치 되는 깊은 잔향으로 빛난다. 퓨처 알앤비의 유행을 수용하면서도 마니아적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고정 관념을 자연스럽게 허문다. 무엇보다 '박지민의 음악'이란 점이 고무적이다. 성장과 가능성을 본다. (김도헌)
선미 '사이렌'
'사이렌'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산한 선미는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여성 솔로 가수로 남았다. '가시나'로 경고 3부작의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던 그는 '주인공'에서 표절 논란을 겪자 작곡가가 만든 곡을 받는 대신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대중의 마음을 잡는 데 성공한다. 선미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파워풀한 색깔이 묻어난 이 곡으로 퍼포머로서, 가수로서,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됐다.
복고 콘셉트가 중심이던 원더걸스 활동 당시 써둔 이 곡은 1980년대 유행 장르였던 디스코, 신스팝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혹의 요정과 경고를 알리는 '사이렌'을 뜻하는 제목답게 경고음의 배치, 극적 전개가 돋보이는 비트, 레트로 스타일의 신시사이저와 같은 세밀한 사운드 설계가 뮤직비디오 속 퍼포먼스와 만나자 더욱 빛을 발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 많은 이가 '사이렌'에 빠져든 2018년이었다. (정효범)
사이먼 도미닉 '데몰리션 맨 (Feat. 김종서)'
7년 만의 정규앨범 < Darkroom >이 음악 커뮤니티의 댓글 창을 수놓았던 '일해라 정기석'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수록곡 '데몰리션 맨'은 기대감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랙이다. 긴장감이 흐르는 비트에 올라선 그는 신랄한 테크닉을 갖춘 래퍼 혹은 유쾌한 연예인이 아닌 인간 정기석의 내면을 가감 없이 꺼내 보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서사를 토하듯 쏟아내는 곡은 한 아티스트에 감정에 대해 몰입하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가 겪었던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충격적인 묘사와 연기에 가까운 래핑이 훌륭한데, 그중에서도 시퍼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김종서의 피처링은 2018년의 신의 한수라 할 정도로 압권이다. (이택용)
박원 '나'
발라드는 두 가지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 하나는 다수의 공감을 창출하는 가사 그리고 그것을 듣는 이에게 전달하는 앰프의 성능, 스피커의 질이다. 먼저 스피커로서 박원은 이력을 축적해 획득한 표현력, 이를테면 음색과 음량의 조절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앰프의 충실한 기능에 기저한 발현이라는 점에서 여느 R&B 발라드부류보다는 진실하고 우월하다.
그래서 두 번째인 여전한 불평등과 소외라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몇 번을 깨져도 같은' 젊은 세대의 자기불신과 회한을 담은 서러운 노랫말이 즉각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며 '내가 왜 이렇지?' 해본 사람이라면 가사가 마치 아교처럼 가슴에 달라붙는다. 넋두리와 고백이 수놓은 절실 언어의 개가, 실감나는 가창력의 승리라할 2018 발라드의 정점. (임진모)
잔나비 'Good boy twist'
오늘날 청춘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옛 거장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 독특한 밴드는 'Good boy twist'로 시대적 고민을 그려낸다. 1992년생 원숭이(잔나비)띠 멤버들로 구성된 이들은 비틀스와 브릿팝, 트위스트 열풍을 간직한 1960년대 당시 경쾌함을 밴드 고유의 작법으로 여기에 풀어냈다. 부담 없이 다가오는 서정적인 선율, 유행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좋아하는 장르를 밀고 나가는 끈기도 갖췄다.
2018년에는 '대충 살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외침이 유독 많았다. 굶주림, 치열함,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는 자를 따라갈 것인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이전 삶의 양식을 유지할 것인가. 옳다고 여긴 가치관이 과거의 유산임을 깨달았을 때 그 허무함. 밴드는 그들의 정체성과 현세대가 마주한 번민을 이 곡으로 응축해낸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올해의 싱글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효범)
김사월 '로맨스'
선율에 굶주리고 언어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김사월은 오아시스다. 그래서였을까. 2018년은 그야말로 '사월의 해'였다. 그 중심에 '로맨스'가 있었다. 시간을 한참 뛰어넘은 고전적인 블루스 사운드 위로 나른하게 읊조리는 보컬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달콤한 몽롱함 속에서 한층 따뜻해진 언어가 반짝인다. '너무 많은 연애' 너머의 로맨스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돕자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로 나아간다. 여기에 탁월한 선율과 고혹적인 음색을 더하니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옷을 걸쳐도 자신만의 향기를 잃지 않는 감각에 놀라고, 그 독창성이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데서 또 놀란다. 뚜렷한 개성과 넓은 확장성이 만나는 그 지점에 김사월 음악의 힘이 있다. 음악에서도 언어에서도, 치열할 정도로 김사월은 아무도 내쫓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모두를 품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도 않는다. 진솔함에서 우러나온 가장 안온한 위로. 그렇게 그는 올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고요히 열었다. (조해람)
엄정화 'Ending credit'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엄정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장기간 활동을 접고 목소리 사용을 일절 금하던 그가 들고나온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솔직했으며 그래서 더 멋있었다. 레트로 신스팝 장르에 '너와 나의 영화는 끝났고', '관객은 하나둘 퇴장하고', 엔딩 크레딧만이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이별로, 그리고 인생으로 자리한다.
정규 10집 기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타이틀 'She' 대신 이 곡을 올해의 싱글로 선택한 것은 'Ending credit'이 퍼트리는 반짝임 덕택이다. 소소한 반응을 일으킨 뮤직비디오 속 여전히 화려한 춤사위와 당당한 스탠스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성 뮤지션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언제나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엄정화의 이 곡은 복고 성향이지만 절대 퇴행이 아니다. 잘 짜인 구성과 완벽히 맞아 들어가는 무대 매너가 빛을 발한 올해의 대표 싱글. (박수진)
김하온(HAON) '붕붕' (Feat. Sik-K)
꿀벌 옷을 입고 무대 위로 등장한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짓다 이내 입을 열었다. '안녕, 나를 소개하지. 이름 김하온, 직업은 traveler' < 고등래퍼 2 >를 통틀어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이다. 가사에서 증오를 뺀다는 독특한 캐릭터의 등장, 타이트한 랩과 뛰어난 전달력까지 겸비한 18살 소년 김하온은 '매운 맛'으로 점철되던 힙합 씬에서 보기 드문 '순한 맛'으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래퍼 빈첸과 함께한 '바코드'도 큰 주목을 받았지만, 김하온의 지향점을 잘 표현한 곡은 '붕붕'이다. 작년에 이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프로듀싱팀 그루비룸의 트렌디한 비트와 긍정적인 바이브를 내뿜는 김하온의 래핑, 식케이의 훅 등 '붕붕'의 매력은 다채롭다. 신예의 탄생을 강력하게 어필한 2018년의 히트 넘버! (이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