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요?"
"가서 후기 써 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초대권이 쥐어져 있었다. 웹진 공식 '락덕후' 에디터에게 이런 시련이 오다니... 음악 웹진을 하는 만큼 아이돌 음악도 많이 듣지만, '현장'까지 일부러 찾아간 적은 없었다. 가요 시상식 영상을 봐도 늘 '다른 세상'이라 생각했다. 그런 델 내가 간다고? 그것도 제28회 서울가요대상(서가대) 같은 큰 행사를? 상상만 해도 낯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는 게 또 사람 마음 아닌가. 그래서 다녀왔다. 의식의 흐름으로 써보는 '락덕후'의 서가대 탐방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동료 에디터를 만나 고척 스카이돔 지하층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널린 돗자리와 담요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 서가대는 예매 순서와 관계없이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티켓을 배부한다. 그렇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린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건 마치 좋아하는 밴드를 앞에서 보기 위해 아침부터 펜스 잡고 버티는, 록 페스티벌 관객의 마음 아니던가? 역시 '최애'를 아끼는 마음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10~20대 여성 팬들이 많은 광경이 신선했다. 해외 록밴드 내한공연과 너무 다른 풍경에 잠시 인지부조화가 올 뻔했지만 곧 회복했다.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그룹 이야기를 꽃피우는 건 거기나 여기나 똑같으니 말이다. 가는 길 곳곳에 차려진 '비공식 굿즈' 노점도 처음 보는 재밌는 풍경이었다. 하긴 누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플랜카드나 슬립낫(Slipknot) 달력 같은 걸 팔겠는가. "이건 모두 자본주의의 상술이야!"라 외치며 지나쳤지만, 동료 에디터의 눈이 없었다면 아이즈원 브로마이드를 샀을 것이다. 지금도 조금 후회된다. 내게 조금의 용기가 있었더라면.
뜻밖의 록·힙합, 그리고 트리뷰트
기다림 끝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왕 온 거 아이돌 문화 마음껏 즐겨주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드럼, 기타, 베이스의 밴드 사운드... 크라잉넛이다! 퀸의 'We will rock you'와 '말달리자' 등 몇 곡을 불렀다. 뛰고 싶었지만 좌석 관람이라 간신히 참았다. 잘했어.
다음 순서는 무려 드렁큰 타이거! 홍대 펑크밴드와 힙합 1세대가 포문을 열다니. 장르 균형을 배려하는 서가대의 철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발라드에선 임창정과 양다일이 수상했고, 어느덧 '원로돌'인 샤이니도 인기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인디 신스팝 밴드 아도이가 거머쥐었다. 아도이는 아레나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세상 힙한' 연주를 멋지게 선보였다.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들을 추모하는 무대에서도 서가대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양다일은 작년 작고한 최희준을 추모하며 그의 명곡 '하숙생'을 불렀다. 2018년 심사위원상을 받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 전태관 추모 영상도 이어졌다.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들에 형형색색 응원봉도 화답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났다.
스케일, 열정, 성공적
초대형 무대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화면으로만 보던 번쩍번쩍하는 조명과 풀 스크린을 실제로 대하니 그야말로 '비주얼 쇼크'! 특히 인상 깊었던 무대는 흑백과 키치의 대비를 보여준 모모랜드와 팬들의 손글씨를 띄운 워너원. 국민 노래 '사랑을 했다' 가사를 내보낸 아이콘의 무대도 탄탄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퍼포먼스도 화려했다. 레드벨벳의 마술 쇼는 눈을 빼앗았고, 뉴이스트W의 '거울 댄스'도 화려했다. NCT127은 준비해온 지폐를 뿌리는 '머니 스웩'을 보여줬다. 백밴드와 함께 무대를 꾸민 마마무의 리믹스도 인상적이었다. 장미를 형상화한 아이즈원, 트와이스의 청량함, '군무 장인' 여자친구와 세븐틴까지.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는 그룹들을 보며 눈도 귀도 즐거웠다. '몸으로 듣는' 헤비메탈 콘서트와 달리 '눈으로 듣는' 이런 공연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함성 실화? 방탄이 고척 '뿌셨다'
사실 처음부터 오늘의 '끝판왕'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들'이 스크린에 스칠 때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으니. 그렇다. 방탄소년단이다. 빌보드 1위 가수의 위세는 엄청났다. 무대가 시작될 때의 우레 같은 함성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간 많은 록·메탈 공연에서 아저씨들의 '우워어어'를 들으며 충분히 단련됐다고 생각했는데, 소녀팬들의 '꺄아아아'가 최고였다. 장담한다. TV에 나오는 것보다 10배는 크다!
'Fake love'가 터져 나오자 공연장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열광했다. 목이 터져라 "Fake love! Fake love!"를 외치고 나니 방탄의 디스코그래피를 되짚는 영상이 이어졌다(팬들은 이것도 모두 따라 불렀다!). 곧바로 펼쳐진 'Idol'은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방탄소년단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격정적으로 춤을 췄고, 관객들도 불타오르는 '떼창'으로 화답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진주인공은 대상을 받은 방탄소년단, 그리고 그들의 팬 '아미'였다. 마치 1960년대 '비틀마니아(비틀즈의 열성 팬들)'의 전성기를 간접체험한 느낌이었다. 모두의 마음에 쉬이 식지 않을 열기를 남기고 서가대는 막을 내렸다.
한국 음악, 오늘 '열일'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고척의 고질병인 음향이 가장 걸렸다. 밴드 사운드는 거의 뭉개지다시피 했고, 아이돌 그룹의 노래도 깨끗하게 들리지 않았다. 너무 많은 상을 '뿌리다' 보니 진행도 속전속결이라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들의 멋진 무대와 팬들의 뜨거운 열정은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공연의 본령이 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서가대는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았다. 그럼 된 거 아닐까.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던 구일역에서 겨우 전철을 잡아탔다. 가방 틈으로 삐져나온 응원봉, 굿즈가 담긴 봉투, 상기된 표정으로 저마다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풍경, 수다...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씩 들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안방 1열'에 있던 팬들에게도 진한 추억이 남았을 테다. 장르나 시대와 관계없이, 결국 음악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국 음악은 그야말로 '열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