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등장과 함께 100주년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블록버스터급 음악 감독 존 윌리엄스의 예술을 환영하는 박수가 쏟아졌다. 장내가 조용해지고 무대 중앙에 선 그의 손에서 마법 지팡이 같은 지휘봉이 움직이자 관객들은 주문에 걸린 듯 거대한 역사와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대단원의 막을 연 'Olympic fanfare and theme'의 힘찬 트럼펫 연주는 이 순간을 기념하며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오프닝으로는 최적의 선택을 보여줬다. 이후 순서는 'Excerpts'(영화 < 미지와의 조우 >)와 'Out to sea / The shark cage fugue'(영화 < 죠스 >)로 멋진 공연이었지만, 공연 분위기는 어떤 영화의 주제곡이냐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바로 이어진 'Hedwig's theme'(영화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가 그 예다.
'Hedwig's theme'에서 건반악기인 첼레스타가 실로폰과 유리잔을 부딪칠 때처럼 영롱한 소리로 흐르자 주변에서는 이제야 아는 노래가 나왔다는 듯이 수군거렸다. 오케스트라는 중간중간 다른 곡으로 간격을 두면서 < 해리포터 >와 < 인디아나 존스 >, < 스타워즈 > 시리즈에서 각각 3개의 테마곡 메들리를 펼쳤다. 눈앞에서 소리 예술을 들려주면 머릿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과 추억이 되살아나는 청각과 시각을 사로잡는 종합예술이었다.
공연 중 압권은 상상을 시각으로 보여준 스크린에 있었다. 시리즈의 테마를 연달아 선보일 때마다 마지막 타임에는 영화를 짜깁기한 영상을 틀어주며 공연에 힘을 불어넣어 영화음악이 주는 감동을 다시금 강조했다.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 해리포터 >와 흥미진진한 액션의 < 인디아나 존스 >에 이어 상상의 우주를 실체화한 < 스타워즈 >까지 영화를 짧게라도 봤던 사람은 감동이 끓어 올랐을 것이다. 특히 < 스타워즈 > 영상 끝에 그동안 존 윌리엄스가 했던 스타워즈 음악 작업기 사진을 편집해서 보여줘 공연 제목을 따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영상이 아니더라도 'Adventures on earth'(영화 < 이티 >)에서는 자전거를 타며 하늘을 날고, 'Theme'(영화 < 쥬라기 공원 >)에서는 공룡을 떠올리는 등 상상의 나래를 달고 이곳저곳 여행할 수 있었다. 행복에 취해 있다가도 'Theme'(영화 < 쉰들러 리스트 >)의 바이올린과 오보에, 'Sayuri's theme'(영화 < 게이샤의 추억 >)의 첼로가 슬픈 선율을 연주할 때면 관객들은 감정의 문을 여닫으며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경험했다. 소리라는 크고 작은 공기의 진동이 온몸과 마음을 자극했다.
공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끝을 맺었으나 당연한 순서처럼 앙코르가 나왔다. 이번 투어의 콘셉트인 라이브 앨범 < Celebrating John Williams >가 이미 발매됐기에 'Adagio'(영화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와 'Superman march'(영화 < 슈퍼맨 >)가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존 윌리엄스의 수많은 '테마' 중 가장 대표 격인 슈퍼맨의 빨간 망토가 휘날리면서 120분간 황홀했던 클래식과 영화음악 스토리는 마침표를 찍었다.
학창시절 필자에게 클래식을 알려준 존 윌리엄스가 직접 오진 않았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구스타보 두다멜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현대 영화음악 역사의 산증인과 동시대 지휘자 중 가장 혈기 넘치는 스타의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빛났고, 오케스트라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존경하는 한 아티스트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관객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날 체조경기장은 콘서트장이라기보다 구스타보 두다멜 감독과 오케스트라 배우들이 펼친 존 윌리엄스 다큐멘터리였다.
-프로그램-(라이브 앨범 < Celebrating John Williams >와 동일)
1. Olympic fanfare and theme <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 >
2. Excerpts from < 미지와의 조우 >
3. Out to sea/Shark cage fugue from < 죠스 >
4. Hedwig's theme from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
5. Fawkes the phoenix from <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
6. Harry's wondrous world from <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
7. Theme from < 쉰들러 리스트 >
8. Adventures on earth from < 이티 >
9. Flight to neverland from < 후크 >
10. Theme from < 쥬라기 공원 >
11. Scherzo for motorcycle and orchestra from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
12. Marion's theme from < 레이더스 >
13. The raiders march from < 레이더스 >
14. Sayuri's Theme from < 게이샤의 추억 >
15. The imperial march from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
16. Yoda's theme from <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
17. Throne room and finale from <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
앙코르
18. Adagio from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
19. Superman march from < 슈퍼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