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는 유신체제 하에 청년문화 탄압을 겪었다. 김민기, 한대수 등의 포크 음악인들의 공백과 대마초 파동으로 신중현을 비롯한 록 뮤지션들마저 활동이 금지되었다. 펑크, 디스코, 뉴웨이브, 헤비메탈 같은 새로운 장르로 활력이 넘쳤던 영미와 반대로 한국은 그나마 존재했던 창작적인 기운마저 정체된 것이다. 이 와중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라는 장난기 가득한 가사가 등장했다. 일반 산문을 노랫말에 심은 파격, 중고 기타의 지저분한 소리와 싸구려 국산 녹음기계는 기술적 재앙을 넘어 산울림 데뷔 앨범의 상징이 되었다.
이어지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역시 같은 코드와 구절을 반복해 6분 넘게 최면을 건다. 강렬하게 리듬을 이끄는 기타와 경쾌한 드럼, 이와 함께 툭툭 내뱉는 김창완의 가창은 곡을 이끄는 주제도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나른한 구성이다. '문 좀 열어줘'와 '안타까운 마음'에서 등장하는 전자 오르간 소리와 날카로운 가창 역시 환각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사이키델릭 핵심을 들려준다. 이처럼 쾌락을 오가는 경험은 현실도피를 위해 팝송에만 머물던 젊은이들이 가요로 옮겨오게 했다.
앞서 언급한 김창완의 곡과 달리 '골목길'이나 '그 얼굴 그 모습'은 동생 김창훈의 처연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두 작곡가들은 다소 다른 감수성은 이후 각각 김창완 밴드와 김창훈으로 나누어진다.
5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수확한 산울림 1집의 원천은 무엇일까.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연주, 저항적 메시지 없이 읊조리는 가사는 뛰어난 연주에 집중한 록 밴드와 김민기 같은 포크 계열과도 연결고리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송골매로 대표되는 대학가 밴드와 맞닿아 있다. 이들은 팝과 록을 즐길 수 있던 첫 세대이며, 그 중 대학생은 경제적 어려움이 덜해 음악을 취미로 향유하는 시간이 많은 층이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처럼 여유 섞인 푸념에 불안감이 공존하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절망을 노래할 때는 분노하기보다 체념하고 순응한다. 아름답지만 불안정한 양면의 감성은 모두 캠퍼스라는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 그 낭만적인 환경이 전제되기에 할 수 있는 섬세한 고민들이다.
다만 동아리 규모로 대학에서 활동하는 캠퍼스 밴드와 삼형제가 방에서 흥얼거렸던 놀이를 동일하게 묶을 수 없어 보인다. 동요를 기반으로 한 작곡, 데뷔 이전 100여 곡을 만들어놓을 정도로 목표가 공연과 앨범 작업에서 벗어나 있던 것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산울림의 근원은 한 범주에 속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녔다.
근 몇 년간 장기하와 얼굴들, 10cm 등 익살스러운 내러티브와 복고풍 분위기로 인지도를 획득한 인디밴드의 성공 요인에도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다는 산울림의 장점이 자리 한다. 그들이 보여준 양적 성실도,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성, 새로운 사고로 대중성을 견인한 독창성은 모두 우리 세대가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반복하며 갈구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의 기준과도 같다. 산울림은 이제 음악을 넘어 뮤지션 등용문의 기준으로서 또 다른 브랜드 가치를 형성한다.
-수록곡-
1. 아니 벌써

2.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3. 골목길
4. 안타까운 마음
5. 그 얼굴 그 모습
6. 불꽃놀이
7. 문 좀 열어줘

8. 소녀
9. 청자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