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불볕 더위의 올림픽공원역은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음악 팬들의 열정으로 타올랐다.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힙합 크루 팬시차일드(Fanxy Child)의 첫 단독 콘서트 'Y'의 열기였다. 바로 옆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도 '제29회 롯데면세점 패밀리 콘서트'가 열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있지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을 보기 위한 인파가 북적였지만, 핸드볼경기장을 가득 메운 힙합 팬들의 의지도 이에 못지 않았다.
17시가 되어 불이 꺼지고 지난 9일 공개된 단체곡 'Y'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단체 공연의 콘셉트를 잘 살린 Y자형 무대에서 붉은 조명과 함께 첫 선을 보인 것은 < 쇼미더머니 8 >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여가는 밀릭이었다. 그 후 크루의 수장 지코와 딘, 크러쉬, 페노메코가 각각 전면과 왼쪽, 오른쪽에서 정렬하듯 모여들었다. 'Paradise'를 함께 부르며 등장하는 모습이 마치 각개의 무기를 지닌 전사들을 연상케 했다.
순서를 넘겨받은 페노메코와 크러쉬가 펑키한 'No.5'로 열을 달구고 'Endorphin'에서 잠시 템포를 늦추며 무대를 조리했다. '2411'에서는 간소한 반주 위 크러쉬가 세련된 목소리를 들려주며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콘서트의 첫 순서를 연 멤버는 래퍼 페노메코였다. 몽환적인 조명에 열성적인 랩을 보여준 'Till I die'는 강렬했고 'Pnm'을 밴드 사운드로 연출한 무대에서는 화끈한 기타 위 격정적으로 몸을 던졌다. 성대 결절 사실을 고백하며 객석을 놀라게 했음에도 관객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성실한 활약을 펼쳤다. 이 크루에서 페노메코가 맡고 있는 에너지를 제대로 분출한 무대였다.
나른한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 'What2do'로 딘과 크러쉬가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잠시 숨을 고른 무대 위에 딘이 등장했다.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지코와의 '풀어(Pour up)'로 섹시한 매력을 선보인 후 호흡의 완급조절이 돋보인 'Instargram'과 러프한 드럼 비트의 'I'm not sorry' 등의 대표곡, 신곡 'howlin' 404'로 독특한 본인만의 매력을 선보였다.
크러쉬의 무기는 익숙함이었다. 레이저로 만든 가상의 통로로부터 드라마 < 도깨비 >의 OST 'Beautiful'이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떼창'과 동시에 핸드폰 플래쉬를 켜 공연장에 별을 수놓았다. 잔잔한 노래가 계속되어 살짝 느슨해진 느낌을 지코와의 콜라보레이션 'Cereal'으로 해소하는 흐름도 인상적이었다.
'노는 건 내가 제일 잘 하거든!' 무대 위의 장난꾸러기 지코가 단연 돋보였다. 천연덕스럽게 움직이는 몸짓이며 흥미를 돋우는 개구진 표정 연기, 관객을 장악하는 무대매너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백 댄서들을 대동한 'Artist'가 호응을 끌어냈고, 전광판의 다채로운 팝아트와 형형색색의 조명이 뒤를 받쳤다. < 쇼미더머니 >가 낳은 히트곡 '거북선'과 'Okey Dokey'까지 터트린 지코는 그야말로 이 날의 MVP. 작업 중인 신보의 수록곡 '원맨쇼' 무대에선 어두운 조명 속 마이크와 그의 목소리만으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면모도 보였다.
DJ 부스를 지킨 밀릭과 스테이 튠드(Stay Tuned), 딘, 크러쉬, 지코까지 6명은 개인으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지만 하나가 되었을 때 가장 잘 놀았다. 크루의 포문을 알린 'Bermuda triangle', '말해 yes or no'는 공연을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하였고 그들의 정체성을 담은 'Fanxy child', 대미를 장식한 신곡 'Y'로 남은 열량을 태웠다. 스크린 속 현란한 애니메이션 효과가 덧입혀진 이들의 모습과 한층 더 격렬해진 밴드 사운드는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켰다.
크루의 첫 콘서트인 만큼 곡 중간중간 소통을 하여 팬들에 대한 사랑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멘트를 나눌 때는 말을 더듬기도 하고 쑥스러워 하는 등 허물없는 20대 친구들이었으나, 퍼포먼스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모습에선 성숙한 면모도 발견했다.
음악적으로 크루가 콘서트에서 내세운 것은 '우리는 달라'이다. 재즈, 하우스, 록같은 여러 사운드를 혼합, 편곡하여 공연에서 선보였다. 이것이 허세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젊고 잘난 아티스트의 모습보다 각자의 장점을 모아 이룬 공동체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겁나 핫한 잔나비띠들'의 연대감으로 함께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