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보다 훨씬 더 늦어진 이 원고는 따라서 임선배의 요청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하지만 그 서너 편으로 직행하진 않으련다. 그에 앞서 알모도바르는 과연 어떤 감독인지, 내가 왜 세계역사의 수많은 영화감독들 가운데 그에게 가장 열광하는지 등을 간단히 소개하련다. 내 생애의 첫 영화평론집이자 단독 저서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작가, 2008) 2부 「영화 인물 탐구」에 실렸던 “'영화예술의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단상” 등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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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1949~ )는 아카데미상은 물론 칸, 베를린, 베니스 소위 세계3대(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정상을 밟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오스카 수상 기록이라고 해봤자, 대표작 <그녀에게>로 2003년 각본상을 안은 게 전부다. 칸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던 2019년, <페인 앤 글로리>로 남우주연상(안토니오 반데라스)을, 2006년 <귀향>으로 각본상을, 그리고 1999년 또 다른 생애의 대표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감독상을 받은 게 다다. 수상의 면면에서는 이렇듯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명성에 비해서는 외려 초라한 감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는 “성과 욕망, 섹스,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강렬하고 개성적인 비전을 체득한 감독으로…충격적이고 논쟁적인 이야기를 통해 혁신적인 영화 체험을 제공한 현대 스페인 영화계의 대표 감독”(포털 다음, 근현대 영화인사전 | 동의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 김이석/차민철)일 뿐 아니라, 작가(주의)적 관점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유럽, 아니 세계 최고·최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간주돼왔다.
알모도바르는 '프랑코 정권'(1936~1975. 11. 20)에서 운영했던 신학교에서의 학창시절, 수도사들에게 남색을 강요당하면서 치욕적인 성을 경험한다. 그 어두운 체험을 극화한 영화가 2005년 제58회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나쁜 교육>이다. “이나시오-엔리케-후안-마놀로 신부 네 남자 각각의 욕망을 전시하면서 그 욕망으로 인한 파멸의 궤적을 쫓는 현대판 필름 누아르.” 매우 내밀한 이야기긴 해도, 그 영화가 '자전적'은 아니라고 감독은 강변한다. “나의 관심은 1960년대의 몽매함과 억압에서 벗어나 스페인이 경험하기 시작했던 자유가 폭발한 역사적 순간에 있다. 그래서 1980년대란 시대적 배경은, 내 인물들이 자신들의 육체와 욕망, 운명의 주체가 되면서 성인이 되어가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배경이었다.”
강압적 남색 체험 이후 가톨릭을 향한 강한 거부감을 품게 된 그는 자발적으로 동성애에 빠져든다. 그는 바야흐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세계적 명성의 아티스트다. 그의 영화 세계에서 유독 여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의 후천적 성정체성과 크고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에게 탈억압·탈권위의 출구로써 작용한 구세주였다. 10대 초 일찌감치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리처드 브룩스 감독, 엘리자베스 테일러·폴 뉴먼 주연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8)에 치명적으로 매혹된 그는, 멜로드라마의 거장 더글러스 서크(<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1955>, <슬픔은 그대 가슴에, 1959>), 빌리 와일더(<선셋 대로, 1950>, <뜨거운 것이 좋아, 1959>), 알프레드 히치콕(<현기증, 1958>, <싸이코, 1960>), 루이스 브뉘엘(<안달루시아의 개, 1928, 단편>,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1972>), 블레이크 에드워즈('핑크 팬더 시리즈'(1~8),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등에 크고 작은 영향·영감을 받으며 감독을 향한 꿈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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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관통하며 십 수 편의 단편들을 거친 후, 감독 알모도바르의 가능성을 입증한 첫 장편이 16mm로 찍은 저예산 독립영화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1980)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장편 데뷔작 이후 알모도바르는, <정열의 미로>(1982), <어두움 속에서>(1983), <내가 뭘 한 게 있다고?>(1984), <마타도르>(1986), <욕망의 법칙>(1987) 등 동성애는 물론 양성애, 클럽문화, 약물 등 금기적 소재들을 극화한 초기의 도발적 문제작들을 통해 '스페인 영화의 악동'으로 명성을 공고히 한다. 그리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88)로 마침내 스페인 안팎으로 스타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굳힌다. 그 이후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존재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유에서, 센세이셔널리즘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이 '포스트-루이스 브뉘엘'에 이토록 열광해온 것일까? 우선은 '내셔널 시네마'에 남다른 관심·애정을 품어온 영화비평가이자 씨네필로서, 스페인 영화를 새삼 조망하게끔 자극을 줬고, 그 특유의 개성·정체성 등을 탐구하게 함으로써 스페인 영화는 물론 영화 예술·문화·오락의 매혹(Attraction/s)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게끔 동기부여를 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못잖게, 아니 한층 더 중요한 이유들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알모도바르의 충격·도발 등이 내 영화내(재)적 상상력을, 아울러 영화 외적 일상의 사유·실천의 폭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혀줬고 깊이를 심화시켜줬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난 확신한다. 알모도바르 그가 없었다면, 스페인 영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세계 영화가 그만큼 더 빈곤해졌을 것이라고. 이윤즉슨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에서 영화의 기원, 즉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성찰하게끔 하는 영화의 어떤 원초적 매혹을 감지, 발견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달리 말해 스펙터클 매체로 1890년대 중반 출현한 이래 지난 126년의 영화역사는, 시각성과 청각성, 이야기성 사이의 끊임없은 갈등과 충돌, 조화, 타협 등의 역사였다. 감독들은 으레 그 세 가지 층위 중 어느 한두 쪽에 방점을 찍어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과거요 현실이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구로사와 아키라(<라쇼몽, 1950>, <7인의 사무라이, 1956>), 오손 웰즈(<시민 케인, 1941>), 마틴 스코세이지(<택시 드라이버, 1976>, <분노의 주먹, 1980>) 같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영화의 상기 세 층위를 동시에,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구현한 감독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페드로 알모도바르인 것.
더글러스 서크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974>) 같은 선배 감독들이 그랬듯, 그는 흔히 반동적·퇴행적 장르로 간주되곤 하는 멜로드라마를 비통속적, 나아가 혁신적 장르로 비상시켰다. 뻔할 대로 뻔한 통속극으로써 우리네 인간 사회의 보편적 문제점들을 극명하게 노출시키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영화는 물론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제시해왔다. '알모도바란디아' 등으로 칭해지는 알모도바르 영화 세계의 한계 내지 약점으로 심심치 않게 평해지기도 하는 그 특유의 과잉성과 키치성은 그 목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최적의 수단(Tool)이었다. 단언컨대 알모도바르 영화의 과잉(Excess)들은 악덕이긴커녕 최강 미덕이(었)다. 그는 “독특한 색채 감각과 성적인 유머,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등으로 '알모도바르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는 선배 카를로스 사우라(<사냥, 1966>, <까마귀 기르기, 1976>)와 더불어 '자국 영화'의 튼튼한 대들보로 자리해서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디 아더스, 2001>)나 훌리오 메뎀(<루시아, 2001>) 같은 걸출한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데 일종의 가교역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지극히 선정적 소재와 스타일로, 우리네 관객들에게 몸을 근질근질하게 하는 감각적·육체적 자극을 듬뿍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정서적으로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고, 나아가 우리의 두뇌를 강타하는 지적 자극까지 안겨”준다. 일찍이 알모도바르를 가리켜, '영화예술의 리하르트 바그너'일지도 모른다고 진단한 것은 그래서다. '종합예술작품'(Das Gesamtkunstwerk)이라 불렸던 오페라로써 모든 예술의 종합을 시도했던 서구 음악계의 거목처럼, 알모도바르는 영화의 총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 것은 아닐까?
상기 원고를 썼던 때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 현재도, 나는 감히 주장한다. 어쩌면 세계 영화사는, '고다르 이전'과 '고다르 이후'가 아니라 '알모도바르 이전'과 '알모도바르 이후'로 나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동의 여부에 아랑곳없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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