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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20일, 향후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두 편의 문제적 역작이 선보인다. 부연이 필요 없을 거장 리들리 스콧의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와, 21세기 최고 걸작 중 하나인 < 그을린 사랑 >(2010) 이후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 < 컨택트 >(2016), <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등을 거치며 거장의 경지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캐나나의 봉준호' 드니 빌뇌브의 < 듄 >이다. < 듄 >은 미처 보질 못했으니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고, 우선 < 라스트 듀얼 >부터 들여다보자.
영화는 100년 전쟁 중인 14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무대로, 유서 깊은 카루주 가문의 장군‧기사 장 드 카루즈(맷 데이먼)와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 자크 르그리(아담 드라이버), 그리고 남편 장의 참전 와중에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결단을 감행하는 마르그리트(조디 코모), 세 중심인물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역사 대작이다.
영국 출신의 할리우드의 대표적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거장적 면모를 일찌감치 입증해왔다. BBC 방송국, 광고 에이전시 등을 거친 후 40줄에 접어들며 빚어내 1977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최우수데뷔작을 거머쥔 < 결투자들 >을 필두로, 세계 SF 영화사에 결정적 획을 그은 < 에일리언 >(1979)과 < 블레이드 러너 >(1982), '여성 영화'의 새장을 연 < 델마와 루이스 >(1991), 2001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러셀 크로우) 등 5관왕에 등극한 < 글래디에이터 >(2000), 21세기 전쟁영화의 어떤 이정표 < 블랙 호크 다운 >(2001), 80을 바라보는 노익장으로서의 건재를 과시한 < 더 마션 >(2015) 등이 그 몇몇 증거들이다.
그러나 그 어느 수‧걸작도 세계에서 첫 번째로 국내 개봉되는 이 영화 < 라스트 듀얼 >만큼 '압도적'인 적은 없었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영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역사 관련 실화, 라니 더럭 머쓱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영국 태생의 거장이, 미국과 영국의 공동 자본으로 요리한 역사 대작이거늘! 더욱이 에릭 재거의 원작 소설(The Last Duel: A True Story of Crime, Scandal, and Trial by Combat in Medieval France)부터가 영어로 쓰이지 않았는가. 이런 경우들이 심심치 않게 있어 왔던 게 현실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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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계 아닌 한계를 제쳐두기만 한다면, < 라스트 듀얼 >은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뽐낸다. 굳이 부연이 필요 없을 주‧조연 배우들의 기대 이상의 호연은 말할 것 없고, 등장인물들의 성격화부터가 압권이다. 특히 그 동안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덜 알려진 조디 코머는 발견의 연기를 펼치며, 마르그리트는 가히 기념비적 여성 캐릭터라 진단한들 과장이 아니다. 여성이 남자의 재산으로 간주됐던 저 지독한 야만의 시대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물론 남편과 뱃속 아이의 목숨까지 거는 일대 선택은, 칸트가 의도했을 법한 '숭고미'까지 안겨주기 모자람 없다. 그야말로 지존의 여성 캐릭터라 평하지 않을 길 없다. 그 덕분에 전체적 '톤 앤 매너'에서 다분히 마초적으로 비치기도 하는 영화는 역사적 여성 영화로 비상한다.
< 라스트 듀얼 >에서 감탄을 넘어 개인적으로 영화가 경이롭게까지 다가선 까닭은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내러티브 구조, 즉 플롯 때문이다. 영화는 마르그리트가 자크로부터 당한 '모욕'이 '강간'이냐 여부를 둘러싸고 중심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데 그 최종 결정은, 신의 뜻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받게 되는 '결투 재판'에 의해 이뤄진다. 장과 자크의 한판 승부를 그리는, 마지막 20분간의 결투 시퀀스는 말 그대로 영화의 화룡점정적 백미다. 더 놀라운 것은, 동일한 사건을 세 주인공의 시선에 의해 복적으로 제시하는 탈-할리우드적, 달리 말해 비주류적 화법이다. 그런데도 한 시도 긴장감이 증발되거나 지연되기는커녕, 전혀 예상치 못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떻게 이런 모순적 감흥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넘어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씨네필이라면, 자연스레 구로사와 아키라의 < 라쇼몽 >(1950)이나 오슨 웰즈의 < 시민 케인 > 등이 연상될 터. 하나 그 내러티브적 몰입의 강도 등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쿠엔티 타란티노를 한때 미국 영화의 영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 펄프 픽션 >(1994)쯤은 가소로울 지경이다. “< 글래디에이터 > 는 잊어라! 리들리 스콧이 왜 거장인지를 새삼 입증하는 '압도적 역작'. < 시민 케인 >과 < 라쇼몽 > 등의 비통속적 탈-할리우드 내러티브와 친숙한 주류 영화적 스타일로, 세계 영화의 지형도를 새로 그리다.”라는 취지의 단평을 홍보사에 보낸 것은 그래서다.
< 라스트 듀얼 >은 우리 시대의 어떤 분위기에 대한 반감 내지 저항감을 영화의 메시지로 던지는 데까지 나아간다. 쓸데없이 스포일러 운운하지 말라는 충고 내지 조언과,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에도 여전히 진실은 중요한 이슈며, 진실을 밝히고 구현하는데 목숨을 걸 정도의 '피, 땀, 눈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 그 저항을 남성들이 아닌 여성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감동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라면, 혹 내가 지나치게 페미니즘적으로 영화를 수용‧독해하는 것일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