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기술의 발전은 음악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노래에 '대중성'이라는 특수성을 더하는 데에는 음향 엔지니어 혹은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이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두 번째 특집이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두 번째 특집이다.
두 번째 트랙을 위해 행주산성 자락 볕 잘 드는 한강 변의 '코코사운드'를 찾았다. 이곳에 마스터는 1989년 '서울 스튜디오' 입사 이래 30년 넘게 열심히 달리고 있다. 군대식 문화가 팽배하던 시절부터 음향을 위해 젊음을 바친 그는 여전히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전했다. 음악 하나만 보고 버틴 것이다. 자신이 지금 위치에 오른 이유가 기술 발전에 맞춰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라 답하면서도 뜻밖의 인문학 감성을 강조한 고현정 기사. 그를 움직이게 만든 노래는 무엇일까.
본격적으로 명반에 대한 화두를 던지자 신입 시절을 되뇌며 추억에 잠긴 그는 매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시리즈에서 빠지지 않을 마이클 잭슨 얘기를 꺼냈다. 첫 인터뷰 때 임창덕 기사도 MJ의 앨범들과 엔지니어를 언급했었지만 고현정 기사는 특히 프로듀서의 위대함을 역설했다. < Off The Wall >, < Thiller >, < Bad >로 3연속 만루 홈런을 날리는 데 일조한 퀸시 존스의 작업물 중에서도 < Bad >를 꼽은 그는 다큐멘터리까지 챙겨 보는 열정으로 다시 한번 전설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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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주관적인 취향으로 들어가기 위해 음향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꿈꿔왔을 '내가 반한, 내가 만들고 싶은' 사운드에 관해 물었다. 고민도 잠시, 1980년대 노래가 다시 나왔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에서 드럼과 보컬을 맡았던 필 콜린스의 마지막 넘버원 'Another day in paradise'(1989년 < But.... Seriously > 수록)가 그 주인공. 고현정 엔지니어도 그의 북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드러머의 노래답게 게이트 리버브를 활용한 텅텅거리는 드럼 사운드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게이트 리버브 : 일정 크기 이하의 소리를 조절하는 게이트 이펙트를 사용해 만든 잔향 효과.
음향에도 적용되는 원판 불변의 법칙은 결국 창자(唱者)와 연주자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녹음본이 좋으면 믹싱할 때 크게 건드리지 않아도 사운드가 좋다. 그런 의미로 보컬 중심의 대중음악에서 제일가는 목소리는 누구일까. 마른 체격이지만 큰 키에서 나오는 성량으로 메탈 밴드를 제압하고 로큰롤 공연을 연상케 하는 인물, 고현정 기사는 셀린 디온과 그의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1996년 < Falling Into You > 수록)를 선택했다. 그의 음성에 마이크 종류는 의미가 없다.
음악관은 젊은 나이에 틀이 잡힌다. 그가 한창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던 1980~90년대에서 모든 명반이 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고전적 사운드 명반들이 이 시대에 포진해 있는 이유도 한몫한다. 토토 < Toto IV >,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 Eye In The Sky >, 제니퍼 원스 < The Hunter >,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 Rage Against The Machine > 등, 물론 스틸리 댄과 핑크 플로이드도 빼놓을 수 없다. 기준을 틀어서 귀로 고른 명반이 아닌 몸소 느끼며 직접 참여했던 앨범에 관해 물어봤다.
눈물 젖은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눈앞에서 김건모가 '아름다운 이별'을 부르고 있다면 감동받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고현정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담긴 조용필의 < 12집(후회 속의 재회) >, '재즈 카페'가 담긴 신해철의 2집 < Myself >도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던 그는 가왕 조용필의 후광을 보며 너무 떨어서 긴장한 기억밖에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녹음을 보조하는 신출내기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런 전설과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함이 느껴진다.
1995년 임기훈의 데뷔 앨범 < My Song 1985. >로 첫 메인 자리에 앉으며 호평을 받은 고현정 기사. 그가 자신이 소리 잡은 음반 중에서 넬의 네 번째 작 < Separation Anxiety >의 작업기를 들려줬다. 보통 3일 정도면 끝나던 믹싱이 여기서는 일주일이 걸리자 그는 의구심을 가졌다. 며칠 동안 같은 노래만 들으면 감각이 둔해지기 마련이지만 코러스도 추가하며 결국 좋은 소리를 만든 그는 '음악과의 타협'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고 밝혔다.
프라이머리의 '씨스루'를 본인 사운드 중 걸작으로 고른 고현정 엔지니어는 스튜디오에 올인해 기술과 힘이 어우러지던 젊은 시절의 소리가 확실히 10년, 20년이 지나도 손색이 없다며 이 믹스를 전성기 운동선수와 비교했다. 이런 소리가 나오기까지 그에게도 바닥을 쓸며 커피를 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도제식으로 음향을 시작해 드림팩토리에서 외국 문물까지 익힌 그는 선배들의 뒤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는 과연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엔지니어로서 철칙이나 원칙이 있을까요.
마음의 움직임. 음향이든 음악이든 딱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움직이느냐 안 움직이느냐의 차이다. 결국 음악에 기술을 얹는 직업이라 음악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어떤 마이크를 쓰고, 어떤 이펙트를 입히는지 같은 녹음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작업 전에 음원도 듣고 테스트를 거치면서 이 음원에선 무슨 마이크를 썼고, 또 직접 써보면서 트레이닝도 하는 그런 과정은 필수다. 한마디로 어떤 마이크를 써야 더 감동적이고 어울릴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공간과 장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뮤지션들보다 내가 전문가지 않나. 드라이한 사운드를 원하는지, 라이브한 사운드를 원하는지 소통하고 조율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경험만이 답이다.
훌륭한 엔지니어의 조건이 뭘까.
어릴 때는 원하는 뮤지션이랑 일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다. 연차가 쌓일수록 녹음은 잘했는데 메인을 잡고서는 뮤지션이 원하는 바를 찾지 못해 힘들었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고, 재수정이 들어오고. 10년 정도 됐을 무렵 재일 교포 가수가 한국에서 앨범을 내겠다고 일본 기사를 데려와 내가 작업을 도운 적이 있다. 당시 일본 기술력은 엄청났다. 음악도 멋있었고, 좋은 장비들을 써서 부러웠다. 그러던 중 쉬는 시간에 책을 읽던 일본 기사를 봤다. 그걸 보고 이건가 싶었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라더라. 이때부터 그의 책을 다 읽었다. 그랬더니 정말 도움이 됐다. 그렇게 일본 문학에 빠져 메이지 유신까지 내려갔다.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가른 이 시대를 공부하면서 연구했던 게 좋은 엔지니어가 되는 비결이었다. 사실 기술은 10년만 넘어가면 다 비슷하다. 정신적인 트레이닝, 인문학적 감성,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이런 시기가 1~2년 지나자 뮤지션과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은 쉽게 얘기할 수 없지만 그때 그 역사에서 배운 결정적인 건 뭔가요.
음력 달력을 만드시는 분 얘기에서 눈물이 났다. 메이지 유신으로 넘어가면서 달력도 양력으로 바꿔야 했지만 모든 관행이 여전히 음력이었다. 결국 벼슬과 녹봉을 낮추면서 음력을 계산할 때만 사람을 불러다 썼다. 대대로 이어온 가업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결국 보검까지 팔았다. 자기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그걸 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노벨상을 받은 전설 밥 딜런도 최근 레코딩, 음악, 가사에 대한 저작권을 소니와 유니버설에 모두 팔아넘겼다. 음악 시장도 바뀌고 나이 탓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한 시대를 정리한 것이라고 본다. 음력 달력을 하시는 분이 보검을 팔았듯 1941년생의 짐머만(밥 딜런의 본명)은 이제 죽든 다시 태어나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나도 옛날 장비들을 정리하며 팔 건 팔면서 새 장비도 들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가 없겠더라. 한 10살만 밑으로 내려가도 스스로 쌓았던 것을 잘 버리지 않는다. '난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갇혀 사는 거다. 하지만 그런 걸 다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쉽지 않지만 오래 했으면 좋겠다고 맨날 똑같은 얘기를 한다. 스무 살짜리 애들이 답답해서 어떻게 나랑 같이 일하겠나. 말귀도 못 알아먹고.
짧았지만 그와 깊은 대화를 하며 심적으로 가까워진 시간을 보낸 뒤 음향 전반에 대해 궁금한 질문을 남겼다. 음악을 듣다 보면 음향이 아니더라도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 아티스트가 한 인터뷰는 많아서 정보를 구하기 쉽지만 기술자들이 한 인터뷰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이런 인터뷰는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차다. 그와 얘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만났던 수많은 거장과의 응축된 견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전체적으로 녹음 업계가 어떻습니까. 여전한가요?
개인 스튜디오도 꽤 생기고, 큰 회사들은 직접 사내 스튜디오를 만든다. 그리고 단가가 많이 낮아졌다. 컴퓨터에 마이크, 장비 한두 개만 있으면 녹음할 수 있으니까. 프로 엔지니어의 80%만 따라가도 충분히 자기 음악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빌보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음악만 좋으면 핸드폰에 이어폰으로도 충분한 음질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위켄드 같은 탑 티어의 팝에서도 음향에 대한 감동이 쉽게 다가오지 않던데.
좋은 시스템으로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특히 서브 우퍼를 추가하면 완전히 바뀐다. 우퍼의 유무에 따라 사운드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외국의 유명한 스튜디오들은 전부 우퍼를 갖췄다. 공연의 중요성 때문인 거 같다. 미국의 중산층 정도만 해도 다 우퍼가 있다. 아무래도 홈파티 문화도 있으니까. 반면 국내에서는 방음이 쉽지 않아 쓰기 어렵다.
서브 우퍼 : 저음 전용 스피커
옛날에는 아이돌 음악이 잘나갔어도 알앤비나, 발라드도 많았다. 반면 지금 시장은 아이돌의 K팝이 장르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일명 7대3의 황금 비율이 깨졌다.
지금 어린 친구들은 느린 알앤비 발라드를 잘 안 듣는다. 멜로디, 보컬, 다 좋은데 이해가 안 된다. 개인적으로 교육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문화 자체가 싸 보이거나, 강압적으로 보여서이지 아닐까 싶었는데 결국 말이 안 통해서 그런 것 같다.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아이들이 뭘 알겠나,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일찍 들어가 시간도 보내면서 음악도 같이 듣고 그랬어야 했다.
믹싱이 끝나면 이어폰, 소형 스피커 등 여러. 장비의 테스트를 거친다고 들었다. 요즘에는 블루투스와 노이즈 캔슬링까지 보편화되고, 돌비 애트모스까지 상용화 중이다. 이런 기술까지도 고려해서 작업을 하시나요?
관심은 다 있다. 노이즈 캔슬링은 처음 나왔을 때 좀 놀랐지만 음질이 많이 떨어지더라.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애트모스 경우에는 아직 초기 단계이고 영화나 영상 쪽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스테레오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서라운드는 옛날부터 동경하던, 진짜 90년대부터 나온 얘기지 않나. 그게 음원에는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나?
라이브 앨범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정제된 음원에서는 다채롭게 움직이는 사운드가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영상의 시대이니깐 공간 음향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이클 잭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MTV 시대에 보는 음악의 중요성을 입증하면서도 음악과 사운드에 대한 투자도 놓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음악사에 대전환점을 마련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제작비를 음향이나 영상이나 골고루 분배하지만 우리는 특정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유튜브에서도 똑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도와 관점, 그리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인터뷰 : 임진모, 임동엽, 정수민
정리 : 임동엽, 정수민
사진 및 영상 : 일일공일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