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무스름한 안개가 드리웠던 6월 25일, 자양동의 블라인드아트홀에는 어느덧 13주기를 맞이한 마이클 잭슨의 추모 행사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더위 속 진행되었던 지난 행사들과 달리 소나기를 동반한 어둡고 습한 날씨는 마치 그의 떠나간 빈자리를 하늘도 슬퍼하는 듯한 눈치였다.
단순히 라이브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지난 9주기와는 달리, 이틀간 진행되었던 10주기 추모 형식은 첫째 날에 그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 둘째 날에는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베스트 앨범과 신곡을 더블 앨범으로 함께 발표했던 < History >의 콘셉트를 차용한 것이다. 누군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쌍방으로 기획하여 그날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보고, 팬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추모 행사를 더 오래 지속시키고 그에 따른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다.
추모존의 한편에는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직전에 기획사 팬 이벤트에 당첨되어 분장 대기실에 찾아가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코스프레 댄스를 하는 팬 분이 직접 해외에서 공수해 만든 이미테이션 무대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 해보는 시도였지만 현장 반응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비록 사후에 치러진 간접적 체험이더라도 좀 더 뜻깊은 추모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행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참석한 팬들이 모여 < 불후의 명곡 2 > 마이클 잭슨 편 및 BTS를 비롯한 후세대 아티스트들의 오마주 영상을 감상했고, 2부에서는 지난 3년간 코로나가 빼앗아간 마이클 잭슨 팬의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발표회, 그리고 음악 평론가 임진모가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3부에서는 한반도에 평화를 바라며 한국을 찾아준 마이클의 영상과 그에 화답하는 팬들의 추도사 리마스터링 부쿠레슈티 공연의 영상회가 이어졌다.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팬이 그의 이름 아래 살아 숨 쉬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오늘날까지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팬카페인 '문워키즈'에서 직접 보내온 마이클 잭슨의 베스트 10곡 선정과 각 소개의 글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1. Smile
마이클 잭슨이 살아생전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곡이다. 그래서 전 세계로 생중계된 영결식에서 친형 저메인 잭슨이 라이브로 불러주기도 했고, 이 곡이 수록된 찰리 채플린 영화 < 키드 > 오마주 커버의 싱글 음반은 마이클 잭슨 음반 중 역사상 가장 레어하고 비싼 것으로도 책정되고 있다. 이번에 전설로만 들었던 'Smile' 싱글의 실제 실물을 일반인들에게 최초로 공개해 많은 팬과 음반 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더러운 사건들로 화가 나고 분노가 가득 찼던 < Histroy >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이 곡 'Smile'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2. Thriller
머라이어 캐리에게 크리스마스 연금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있다면 마이클 잭슨에게는 할로원 시즌 송인 'Thriller'가 있다. 어릴 때 처음 본 'Thriller'의 뮤직비디오는 아주 오싹한 한편의 공포영화에 가까웠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이 앨범과 역사상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시대를 열었던 이 곡은 전세계 'MJ 플래시몹'의 단골 대표곡이자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함께 영원히 듣는 클래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3. Billie jean
마이클 잭슨 하면 바로 누구나 자동으로 이 곡을 떠올릴 것이다. 어릴 때 가사를 몰라 흥얼흥얼거리다가 중학생 때 가사를 처음 번역해보고 충격적인 내용에 '멘붕'을 느끼기도 했다. 이 곡은 어릴 때부터 쇼 비즈니스 세계에 몸담다 보니 거기서 벌어진 어덜트의 세계에 대한 경계심으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그루피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Dirty Diana', 'Who is it' 등이 그 계보를 이어 갔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이클의 음반의 특징 중의 하나가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전작의 스타일이나 자신만의 메시지를 유지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양면성을 거부감 없이 발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적인 기획력과 프로듀싱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4. Beat it
미 레이건 정부의 음주 운전 금지 캠페인 송으로 백악관 초대되기도 했고, 작년에 타계한 에드워드 벤 헤일런의 유명한 기타 리프는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기타 리프가 되었다. 어릴 때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명동 뒷골목에서 'Beat it'의 기타 리프 악보가 실린 해외 기타 록 음악 잡지를 손바닥만 마이클 사진 한 장 때문에 구매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뮤직비디오는 'Thriller'만큼의 사실적인 갱스터 무비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분쟁 중인 두 갱단을 직접 출연시켜 극적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손을 묶고 칼을 들었지만 결국 브레이킹 댄스로 화합과 평화를 노래하는 그의 시그니처 퍼포먼스는 그의 공연에서는 물론 후세대 아티스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흑인 뮤지션으로서 백인들의 전용 음악인 하드록과의 크로스오버를 과감하게 도전한 마이클은 후에 'Dirty Diana'와 가수 김종서가 가장 좋아한다는 'Give in to me'로도 그 스타일을 이어갔다.
#5. Man in the mirror
'Thriller' 이후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아마 그때부터 사회적 관심과 그에 대한 본인의 메시지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 출발선이 바로 'Man in the mirror'가 아닐까 싶다. 뮤직비디오는 자신의 모습보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역사적인 사건 사고들의 몽타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의 테마가 아닌 이런 곡으로도 팝 음악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80년대 후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다고 여겨진다. 이런 메시지는 다음 작인 < Dangerous > 앨범에서는 'Heal the world', < History > 앨범에서 'Earth song'으로 그 메시지를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투어 때도 늘 엔딩곡 0순위였고 로켓맨이 되어 날아가는 퍼포먼스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이 곡의 백미는 영화 < 문워커 > 오프닝 영상의 배드 투어 라이브 장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제자리에서 재빨리 회전해서 딱 멈춰 쓰러지는 회전춤은 문워커, 린댄스와 함께 3대 시그니처 안무라 할 수 있다.
#6. You rock my world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정규 앨범 < Invincible >의 첫 번째 싱글이자 2000년 당시 젊은 피의 신세대 뮤지션 로드니 저킨스와 첫 공동 작업물이기도 했다. 인빈시블은 바로 로드니 저킨스와의 음악적 교류로 시작된 앨범으로 뮤지션으로서의 본인만의 스타일, 색깔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 아티스트와의 세대 공감이나 후세대와의 음악적인 작업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용필 19집 < Bounce >도 그런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다. 마이클은 끊임없이 음악적 감각 유지와 내외적으로 발전을 하기 위해 신세대 뮤지션과의 협업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지 윌 아이엠처럼 마이클의 동의 없이 협업한 결과물을 사후에 일체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팬으로서 공감은 하지만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Thriller', 'Bad, 'Black or white'처럼 앨범마다 등장했던 13분이나 되는 대작 쇼트 필름 뮤비 또한 크리스 터커와 함께 출연하여 영상 제작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7. Will you be there
91년에 발표된 곡이 무려 3년 뒤에 소년과 범고래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 < 프리윌리 >에 메인 OST로 삽입되면서 빌보드 싱글차트 7위까지 올랐다. 명곡의 재탄생 역주행의 신화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뭣보다 말도 안 되는 불미스러운 억울한 사건에 휘말린 시기 속 싱글컷된 상황에서도 그 건재함을 다시 보여준 케이스라 할 수도 있다. 뮤직비디오나 투어 공연 퍼포먼스에서 내레이션 독백 후 천사가 내려와 마이클을 안아주면서 엔딩을 마치는데, 정작 인류의 천사로서 특히 전 세계 불우한 아이들을 사랑한 슈퍼스타는 마이클 잭슨이 전무후무 유일하지 않나 싶다.
#8. Black or white
91년 당시엔 모핑 기법이 신기해 단순히 뮤직비디오만 계속 돌려봤던 기억이 나는 노래이지만 최근 BLM 운동을 보면서 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만연한 가운데 90년에 이런 음악으로 빌보드 1위 7주간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뮤지션으로서의 멈추지 않은 신념과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적 역량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아생전 본인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열정은 멈춘 적이 없다고 했다. 80년대 주름잡던 팝스타들이 원히트 원더나 90년대로 다 넘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80년대의 인기를 90년대에도 계속 유지 발전시킬 수 있던 그런 곡이라고 생각한다.
#9. Smooth criminal
반복적인 가사로 한국에선 수능 금지곡 중독성의 팝송으로도 유명하다. 'Billie jean'의 문워크가 80년대 전반을 강타했다면 뮤직비디오 속 린댄스는 실로 80년대 후반을 주름 잡았던 또 하나의 시그니처 안무로도 자리 잡았다. 그 특허 기술이 저작권으로 등록까지 되어 있는데, 뮤직비디오 속 CG가 아닌 투어 무대 위에서 실제로 연출이 가능했던 퍼포먼스는 마술 트릭이라기엔 그 아이디어가 놀라운 기술이었다. 이 곡은 또한 도입부 인트로에 튼튼하고 우렁찬 심장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마이클 잭슨의 심장소리를 실제로 녹음한 것이고, 수십번 반복적으로 외치는 그 애니는 바로 심폐소생술 실습용 인형의 리얼 네임이기도 하다. 그 큰 건강한 심장 소리가 이젠 뛰지 않으니 참으로 슬플 뿐이다.
#10. Heal the world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지쳐가고 있을 때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아닐까 싶다. 재단 측에서 힐더월드 2020 뮤직비디오를 새롭게 발표함으로써 사후에도 인류애를 실천하는 모습에서 진짜 음악은 영원한 거 같고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난 마이클이지만 그래도 그의 음악 속에서 영원히 살아 가는 거 같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음악 평론가 임진모 님의 말씀처럼 전 세계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합창곡으로 이 곡을 따라오는 노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물론 살아생전 자신이 만든 곡 중 만들기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글 : 문워키즈(Moonwalkids)
각색 : 장준환
촬영 협조 : 마이클 잭슨 한국 팬카페 문워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