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다섯 번째는 팝의 거장 엘튼 존의 삶을 그린 뮤지컬 영화 < Rocketman >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가 뿌리내리고 비틀스가 꽃피운 로큰롤의 명맥은 1970년대의 개막과 함께 엘튼 존으로 계승된다. 초신성처럼 팝 음악계에 등장한 그는 손끝에서 뻗어 나온 수려한 멜로디와 화려한 의상, 파격 무대 퍼포먼스로 청각적 시각적 충격을 동시에 선사하며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끝없는 우주 속을 홀로 유영했던 로켓맨에게 최고의 음악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는 늘 지독한 외로움을 동반했다. 뮤지컬 형식의 판타지 전기 영화 < 로켓맨 >은 지난 반세기 대중음악을 대표했던 록스타의 삶의 어두운 이면을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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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널드 드와이트
레지널드 드와이트(엘튼 존 본명)는 무뚝뚝한 어머니와 감정이 메마른 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도와 무관심으로 얼룩진 가정은 수줍음 많던 어린 소년을 품어주지 못했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애정 결핍의 유년 시절을 채워준 건 피아노와 음악이었다. 부모의 충분한 격려와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는 일찍부터 영국 왕립 음악 학교에 다닐 만큼 출중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대 초반 많은 영국인은 미국 리듬 앤 블루스에 열광했다. 클래식을 공부하던 십 대 시절의 레지널드 드와이트 역시 가족의 빈자리를 로큰롤 음악들로 메울 정도로 심취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바 무대를 거쳐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를 결성한 그는 아이슬리 브라더스와 패티 라벨 등 전설적인 소울 그룹의 백업 세션으로 합류해 튼튼한 기초체력을 길렀다. 로널드 아이슬리의 권유로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레지널드 드와이트는 밴드 동료의 이름을 빌려 '엘튼'으로 활동명을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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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작사 작곡 콤비의 시작
커리어의 새 국면은 음반사 리버티 레코드가 음악 잡지 <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에 게재한 송라이터 구인 광고로부터 출발했다. 첫 미팅 자리에서 엘튼 존의 탁월한 멜로디 감각에 단번에 매료된 레코드사 직원은 그에게 또 다른 지원자 작사가 버니 토핀을 소개한다. 통성명을 마친 두 사람은 카우보이 민속요 'Streets of Laredo'를 부르며 음악에 대한 공통된 열망을 확인한 뒤 합숙도 마다하지 않으며 공동 작업에 착수했다. 훗날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사 작곡 콤비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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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미국 진출, 그러나
버니의 가사를 받아 단숨에 완성한 'Your song'은 미국 진출의 교두보가 된다. 곡의 진가를 알아채고 젊은 록스타의 가능성을 내다본 음반사 대표는 곧바로 미 대륙 공략을 계획해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클럽 트루바두르에 엘튼 존을 세웠다. 엉겁결에 펼친 데뷔 무대에 극심한 부담감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내 화끈한 'Crocodile Rock'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뇌리에 명장면을 선사하며 팝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엘튼 존의 전성시대는 새로운 매니저 존 리드와 손을 잡고 본격화됐다. 외로웠던 삶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연인이자 동업자는 그를 슈퍼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대중의 열렬한 애정을 득하는 동안에도 정작 부모만큼은 혈육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복형제를 낳고 단란한 새 가정을 꾸린 친부와의 재회, 아들의 커밍아웃을 냉혹하게 거부한 어머니의 홀대는 씻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기어코 들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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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Go Breaking My Heart
빽빽한 투어에 지쳐 갈 때쯤 거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엘튼 존은 사랑했던 존 리드와의 관계까지 어긋나며 동력을 완벽히 상실했다. 곡명처럼 광활한 우주를 누비던 '로켓맨'에서 한 순간에 지표면으로 추락한 그는 우울과 불안으로 황폐해진 마음을 알코올과 코카인으로 겨우 달랬고, 슬픔을 감추기 위해 관객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기 시작했다. 중첩된 고난을 술과 마약에 의존해 가까스로 버티며 분노 조절 장애까지 얻게 된 엘튼은 절친 버니의 손길마저 뿌리치며 스스로를 더 고립 상태로 내몰았다.
고난은 계속됐다. 경이로운 작곡 솜씨나 기행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차지하고도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으로 연일 매스컴의 집중 공세를 받았던 그는 이러한 언론의 화살 세례를 피하고자 1984년 독일 출신의 레코딩 엔지니어 레나테 블라우엘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다. 물론 사랑이 부재한 거짓 결혼 생활은 심연 속에 가라앉은 자신을 물 밖으로 꺼내주지 못한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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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till Standing
코카인은 어린 시절부터 잃어버린 자신감과 자존감을 지켜줬지만 가슴 통증을 비롯한 신체적 문제를 초래했다. 심각한 중독 증세로 본인의 생사까지 우려해야 했던 엘튼 존은 1990년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제 발로 병원에 들어간다.
자아 성찰을 겸한 장기 입원 치료는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봉합했다.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외로움과 사랑의 공백을 약물이 대체할 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한 그는 절친 버니 토핀의 도움으로 'I'm still standing'을 외치며 재기의 발판을 성공적으로 마련한다. 잠시 주춤했던 우정을 확고히 다지고 20년간 씨름해온 코카인을 뿌리치겠다는 굳은 결의는 전 세계를 돌며 마지막 은퇴 투어를 펼치고 있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의 개막과 함께 등장한 엘튼 존은 보석 같은 노래들로 전 세계에 예술적 활기를 불어 넣었다. 반세기 넘게 쏘아 올린 로켓맨의 파편은 25개의 플래티넘 앨범과 2억 5천만 장의 레코드를 판매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클래식 넘버를 배출했다. < 로켓맨 >은 이 위대한 록스타의 어두운 기억을 쫓는다. 작품은 눈부신 성공담에 가려져 있던 굴곡진 과거를 반추하며 'The bitch is back', 'Tiny dancer', 'Honky cat',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Goodbye yellow brick road' 등의 찬란한 유산을 재조명했고, 스크린을 매개로 소환된 세기의 명곡들은 동시대의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 관객들에게까지 소구력을 발휘했다.
장르 특성상 타임라인과 사실 고증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지점도 몇몇 존재하나, 주요 구간마다 극적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플롯의 음악 연출은 이 간극에서 발생한 괴리를 압도하고도 남는 위력을 갖추고 있다. 연대순이 아닌 극의 흐름을 고려해 사운드트랙을 배치한 < 로켓맨 >은 천부적인 작곡 재능으로 세대를 초월한 고전을 쏟아낸 엘튼 존의 내면을 깊숙하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바라본 진정한 의미의 뮤지컬 영화로 음악 팬들 곁에 남아 있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The bitch is back
2. I want love
3.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4. Thank you for all your loving
5. Border song
6. Rock & Roll Madonna
7. Your song
8. Amoreena
9. Crocodile rock
10. Tiny dancer
11. Take me to the pilot
12. Hercules
13. Don't go breaking my heart
14. Honky cat
15. Pinball wizard
16. Rocket man
17. Bennie and the jets
18.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20. Goodbye yellow brick road
21. I'm still standing
22. (I'm Gonna) Love m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