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번째는 전설적인 밴드 퀸의 일대기이자 선풍적인 인기를 끈 흥행작, < 보헤미안 랩소디 >다.
< 보헤미안 랩소디 >는 경계인의 삶을 그린 영화다. 출신, 성적 지향, 음악까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길 거부했던 괴짜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보헤미안'의 일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누군가와 얌전히 섞이기엔 너무나 자유로웠던 그는 어딜 가나 혼란과 갈등을 몰고 다니지만 음악에 관한 한 천재적이다. 다소 전형적일 수 있는 이러한 설정의 캐릭터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의 삶을 진실하게 담은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
Bohemian rhapsody
독실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의 아들인 그는 일터에서도, 집 안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차별당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유일한 수단은 밤마다 록 클럽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 그는 후에 퀸이 되는 밴드 스마일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 앞에서 무반주 한 소절을 뽑아내며 전설을 시작한다. 참고로 영화 중 흐르는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은 그와 매우 닮은 목소리의 가수 마크 마텔과 주연 배우 라미 멜렉, 그리고 퀸의 보컬 파일을 합친 결과다.
메이저 음반사 EMI에게 가능성을 인정 받은 그들은 제작사와의 미팅에서 < A Night At The Opera >의 콘셉트를 선보인다. 이후 한적한 스튜디오에서 합숙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뮤즈인 메리 오스틴을 위한 곡 'Love of my life'와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Bohemian rhapsody'를 만든다. 기간을 정해놓고 음악에 몰입하며 작업하는 모습이 현대 팝 음악 협업 방식의 표준인 '송 캠프'와 상당 부분 겹친다. 로저 테일러가 녹음한 '갈릴레오' 파트, 브라이언 메이의 잘 알려진 기타 솔로 등 'Bohemian rhapsody'가 대중음악 역사에 강하게 남긴 인상을 재현한 모습이 근사하다.
제작사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퀸은 'Bohemian rhapsody'를 고집한다. 당시 유행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흐름에 탑승한 이 곡은 "누가 나에게 돌을 던졌느냐'고 외치는 가사처럼 크게 히트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노래지만 영화의 초점을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는 걸 고려하면 적어도 영화 안에서만큼은 이 곡을 프레디 머큐리의 자기 인식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노래로 퀸은 그들의 말대로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가 되는 것에 성공한다.
|
Another one bites the dust
승승장구하던 퀸의 일대기에도 위기가 생긴다. 미국에서의 히트 이후 매니저 폴 프렌터의 음침한 영향력에 사로잡힌 프레디 머큐리는 일생의 사랑 메리 오스틴과의 동거를 끝낸다. 외로움을 파티와 향락으로 채우며 스스로 무너진 그는 타인과 시시각각 부딪힌다. 그의 특이한 성적 지향이 곧 타락과 연결되는 것으로 비치는 듯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을 함께한 연인 짐 허튼의 따뜻함이 동성애 그 자체에 관한 부정적 색채를 옅게 만든다.
명곡은 시련과 상관없이 등장한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 디스코 트랙 '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멋들어진 베이스 리프가 게이 클럽 장면과 합쳐지며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곡은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매한 곡이다. 존 디콘이 베이스를 연주하기 전까지 멤버들이 이 스타일을 탐탁지 않아 하는 장면에서 당시 록 뮤지션과 디스코 신의 감정적인 거리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영화에서 그의 솔로 활동은 그의 안하무인 격 태도와 강하게 결부되며 일종의 흑역사로 그려진다. 때문에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I was born to love you'도 지나가는 음악 정도로 넘어간다. 솔로 활동 중 자신이 망가져 가는 것을 자각한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어두운 부분을 이용했던 매니저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그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걸어갈 때 나오는 음악은 'Under pressure'. 자신을 스스로 옥죄고 있었음을 깨달은 이에게 어울리는 곡이다.
|
The show must go on
이제 퀸은 '라이브 에이드'로 향한다. 싱어송라이터 밥 겔도프와 밋지 유르의 자선 앨범에서 시작된 이 공연은 밥 딜런, 폴 매카트니, U2 등 대중음악계 빅 네임들의 참여로 15억 명 이상이 시청하며 음악 산업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은 콘서트다. 공연 준비 중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 검사 결과를 멤버들에게 알린다. 실제론 그와 멤버들이 정확히 언제 병세를 알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영화적인 감동을 위해 라이브 에이드 직전에 밝힌 것처럼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의 상징이 아니라 보헤미안의 상징으로 남길 원했다. 초반부 흘렀던 'Somebody to love'가 다시 배경에 깔리고, 꿈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돌아온다.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했던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화해한다. 영화는 후반부 20여 분을 온전히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쓴다. 공연 마지막 곡 'We are the champions'의 감동도 대단하지만 더욱 돋보이는 건 현장감 넘치는 동선과 몸동작, 심지어 음 이탈까지 재현한 제작진의 디테일이다.
지구 반대편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문제를 우리 모두의 일로 여겼던 뮤지션들은 그들의 순수함을 라이브 에이드라는 거대한 사건으로 구체화했다. 보헤미안의 삶을 그린 영화가 이 콘서트로 마침표를 찍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그만큼 순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아의 외로움은 경계를 넘어선 의지로 치유된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선 지금도 이 의지가 계속된다는 것을 웅변하듯 'Don't stop me now'와 'The show must go on'이 흐른다.
|
극 중 프레디 머큐리는 메리 오스틴에게 무대에서 노래하는 기분을 설명한다. 그는 이 기분을 “틀리려고 해도 틀릴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한다. 밴드 합류 초반에 그가 가사를 틀려 즉흥으로 메우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묘한 대사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틀림'이라는 개념이 객관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다음 대사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그 이유를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있거든”이라고 밝힌다. 타인보단 자신의 기준이 중요한 괴짜들은 이상한 사람으로만 남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그 중 몇몇은 세상을 바꾼다. 자유인, 방랑자, 혹은 천재로 불리는 이 괴짜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너그러움이란 오래된 덕목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게 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20th century fox fanfare
2. Somebody to love
3. Doing all right
4. Keep yourself alive
5. Killer queen
6. Fat bottomed girls
7. Bohemian rhapsody
8. Now I'm here
9.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10. Love of my life
11. We will rock you
12. Another one bites the dust
13. I want to break free
14. Under pressure
15. Who wants to live forever
16. Bohemian rhapsody
17. Radio ga ga
18. Ay-oh
19. Hammer to fall
20. We are the champions
21. Don't stop me now
22. The show must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