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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의 노래를 감상하려 극장 갈 결심을 했다.
마침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 헤어질 결심 >. 관람 내내 영화의 주제곡인 '안개'가 어땠는지 궁금해서였다. 그 감상을 전하는 이 글에는 상당한 스포일러와 음악적 편애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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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안개'는 1967년 최초 발표되었다. 당시 17살이었던 '정훈희'의 데뷔곡인데 인생 풍파 다 겪은 여인의 깊은 목소리를 사춘기 나이에 표현했다. 그녀를 발굴한 것은 명불허전 이봉조, 그가 작곡했고 가사는 박현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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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탄생한 '안개'의 2022년 버전은 1967년의 원곡자 정훈희, 1972년 리메이크했던 송창식이 함께한 듀엣곡이다. 라디오로 공개된 이야기에 따르면 그 과정에 나름 곡절이 있다. 두 거장을 한자리에 모시려 박 감독이 직접 나섰으나 고사가 이어졌다. 패기의 박 감독, 송창식을 만나려 미사리까지 직접 찾았으니 때마침 이를 보다 못한 정훈희가 '어린(?) 감독이 해보겠다는데... 도와줍시다'해서 성사되었단다. (2022. 06. 25 / MBC FM < 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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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삼고초려는 상당히 계획적이라 추정된다. 듀엣의 참여에는 함춘호까지 합류할 것임을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기타, 함춘호!'라며 송창식이 소개하는 그 함춘호 말이다. 그의 기타 소리가 만들어낸 안갯속에서 두 거장의 목소리가 호흡하고 공명할 때, < 헤어질 결심 >의 주제곡 '안개'가 짙고도 깊어짐을 박 감독은 이미 확신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곡은 최적의 단순함으로 구성된 고도의 조합이다. 메시지와 소리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난다. 함춘호의 명징한 기타에 각각 78세, 72세 도합 150년 된 성대들의 울림이 직조한다. 자연스럽고도 깊으며, 담백하면서 고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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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보다 음식이 우선하듯, 음악 역시 메시지가 먼저다. 어떤 음식을 담을지 먼저 생각한 이후에 그릇을 만드는 것과, 생각 없이 만들어진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음악인들이 '사람의 향기'가 담긴 메시지를 먼저 생각한 뒤, 이를 담아낼 그릇을 빚으면 좋겠다.”
1967년의 명곡에서 2022년 명곡으로 재탄생되었지만 변함없는 것이 바로 가사다. 세어보니 40여 개의 낱말에 140여 개의 글자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도 서사가 있다. 메시지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담을 그릇은 시대에 따라 적절히 리메이크한다는 것, 이 어려운 일을 쉽게 해냈으니 이들이 바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대가들이다.
영화 < 헤어질 결심 >의 '안개'와 관련해 아쉬운 점은 딱 하나다. 올해 칸영화제 사운드트랙 부문의 영광이 < EO >라는 영화에 참여한 '파베우 미키틴'에게 돌아간 것이다. 3년 전 < 기생충 >의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정재일도 수상을 응원했는데... 칸 사운드트랙 부문은 2012년 신설된 부분으로 나름의 벽이 있는 듯하다. 원컨대 대한민국에서 열릴 여러 영화상 시상식에서만큼은 어린(?) 박 감독을 도와준, 세 거장의 2022년판 '안개'가 무대로 성사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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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V 전주방송 프로듀서 송의성. TV로는 < 개그를 다큐로 받느냐? >의 그 다큐를, 라디오로는 < 테마뮤직 오디세이 >라는 1인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록스타를 꿈꾸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요즘은 크로매틱과 방구석 잼으로 여생(?)을 즐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