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세 번째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정규 1집 < Sour >의 제작기를 따라가며 담아낸 다큐멘터리 < 올리비아 로드리고 : 네가 있는 집으로 >다.
< 올리비아 로드리고 : 네가 있는 집으로 >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 < Sour >의 탄생을 추적한다. 디즈니 < 하이 스쿨 뮤지컬 > 시즌 1로 혜성처럼 등장한 틴 에이지 스타는 18세의 나이로 직접 성공을 쟁취하며 기회의 땅을 연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쓴맛과 단맛이 혼재된 청소년기, 이를 '시큼하다'라고 표현한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생동감 넘치는 음반 녹음 과정과 색다른 편곡을 다큐멘터리로 공개해 여운을 이어간다.
새하얀 지프차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정식 데뷔 싱글이자 빌보드 핫 100 1위에 빛나는 'Drivers license'의 선율을 타고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른다. 이제 막 연애라는 꽃잎을 피우기 시작한 어린 싱어송라이터는 드넓은 대륙을 횡단하여 '네가 있는 집으로' 향하기 위한 날개인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만개를 꿈꾸던 꽃은 금세 꺾이고 말았고 낙화는 담담한 노랫말과 엄숙한 피아노 반주로 승화되었다.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춘 전 연인 조슈아 바셋과의 이별은 쓰라린 선물이 되어 가수로서의 찬란한 길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이 없이 홀로 거리를 운전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늘 속삭였던 미래처럼, 지난주에 난 운전면허증을 땄어'라는 속삭임엔 효용이 사라진 면허에 대한 애증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헤어짐의 씁쓸함을 맛본 소녀는 어른이 되기보다 청소년만의 풋풋함에 집중한다. 미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실제로 경험했을 일화와 심정을 진솔하게 정리하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가감 없이 읊어낸다. < Sour >의 프로듀서 다니엘 나이그로도 'Happier'를 듣고 꾸밈없고 어리숙한 그의 매력에 빠지자 조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상대방이 나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직설적으로 써 내렸다. 사랑으로 인해 심연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장기에 숱하게 겪었을 법한 질투와 미련을 숨기지 않은 문구다. 'Jealousy, jealousy'와 'Enough for you'도 이별 후 상대를 향한 후회와 원망을 그대로 내보인다.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속에 담긴 것들을 재가공한 올리비아에게 부끄럼은 찾아볼 수 없다.
가슴 아팠던 기억은 < Sour >의 기묘한 맛으로 재탄생한다. 본인의 짧은 인생을 음악에 우려내기 위해 전체적인 기획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의견이 적극 반영된 프레임 속엔 그의 열정이 생생히 비친다. 물론 그 뒤에는 글감에 어울릴 만한 음을 창조하는 재능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월등하게 발휘하는 표현력이 전제되어 있다.
유년을 벗어나 노래하는 사춘기의 주제어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앳된 모습과는 다르게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독특하고 유려하게 체제를 전환한다. 'Good 4 u'는 악마와 같은 음성으로 전 연인을 사이코패스라 칭하며 분노를 드러내나 영화에서는 원곡의 장장한 팝 펑크 스타일이 아닌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목소리에 치중했다. 아이라인 짙은 에이브릴 라빈이 재림한 듯 'Brutal'에서는 가슴속 응어리를 토로하는 화신(火神)으로 분하기도 한다.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붓고 난 후 남은 그리움과 미련은 컨트리로 옮겨온다. 가장 진실하고 구체적인 장르라 평가한 그는 때론 조용한 음악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줄도 안다. 더욱 조용한 반주로 꾸린 '1 Step forward, 3 steps back' 역시 부모님 차를 타고 집에 가는 조용한 도로 위, 과거 어려웠던 로맨스를 생각하며 고요히 지어냈다. 스크린을 메우며 광활한 호수에 잔잔히 퍼져나가는 연애담은 기타 한 대만으로 지어낸, 열여덟 살이 부르는 성숙한 고독의 찬가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하며 자기 이야기를 온 세계에 공개하는 Z세대의 소통법, 풋내 나는 연애 후일담은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비상하는 팝 스타의 정당성을 재확인한 < 네가 있는 집으로 >는 뼈저리게 공감되는 < Sour >의 에필로그이자, 제2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숨을 고르는 당찬 프롤로그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Drivers license
2. Happier
3. Crying in the parking lot (unreleased)
4. Jealousy, jealousy
5. 1 Step forward, 3 steps back
6. Déjà vu
7. Favorite crime
8. Good 4 u
9. Enough for you
10. Traitor
10. Brutal
11. Hope ur ok
12. Baby is you (unrelea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