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철학과 개성 강한 사운드로 사랑받는 PC 뮤직(PC Music)의 프로듀서 대니 엘 할과 협력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정교하고 변덕스럽다. 로킹한 비트와 처절한 비명이 울리다가('Welcome to my island') 새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Bunny is a rider'), 충돌과 긴장의 전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합창이 메아리친다('Billions'). 갑작스럽게 플라멩코의 후끈함을 가져오는 'Sunset', 부유하는 전자음에서 소극장의 어쿠스틱 밴드 차림으로 얄궂게 변조되어 장엄한 백파이프 솔로로 종결되는 'Blood and butter'까지 모든 전개가 예측을 벗어나 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 총천연색 구성은 감상을 넘어 차라리 체험에 가깝다.
그가 뷰욕과 케이트 부시 같은 선배 거장 옆에 거론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려한 멜로디, 공들인 편곡으로 귀를 즐겁게 하면서도 무엇보다 장르를 겁 없이 훨훨 넘나든다. 신스팝 혁명가 그라임스의 맹랑함을 빌려와 말끔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를 버무린 'Fly to you'와 UK 개러지 트랙 'I believe'가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증명하고, 명상적인 발라드 'Crude drawing of an angel'에서는 남다른 멜로디 주조 능력을 뽐낸다. 캐치한 'Smoke'를 비롯해 대부분의 곡이 감도 높은 선율로 저마다의 위치에서 확실한 퍼즐 조각으로 기능한다. 롤러코스터, 퍼레이드가 연상되는 저돌적인 전개에도 선명히 살아 숨 쉬는 송라이팅의 정교함이 경이와 감탄을 부른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트 부시보다 세련되고 뷰욕보다 부드러운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그의 목소리는 선배의 영향을 자신만의 색깔로 승화하기 위한 가수 노력의 결실이다. 압도적인 보컬 레인지로 급작스레 상승해 귀를 찌르는 칼날 같은 소프라노, 'Pretty in possible'에서 선보인 기묘한 발음법 등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요소가 가득하다.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나른한 오르간 사운드로 데이비드 보위의 잔상을 피워내는 파워 발라드 'Butterfly net'의 보컬 연기는 특히 열정적. 전자음이 뿅뿅거리고, 각종 자연의 소리가 윙윙대는 광경 속에서도 중앙에 선연히 빛나는 건 명창의 백옥같은 목소리다.
캐롤라인 폴라첵을 새 시대 팝의 선두주자로 규정할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이다. < Pang >이 일궈낸 애호가들의 호응과 평단의 찬사에도 여유롭게 자신의 한계를 한 걸음 더 뛰어넘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격파했다. 거대한 야망을 담은 담대한 음악적 모험. 캐롤라인 폴라첵은 팝 음악계에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이다.
- 수록곡 -
1. Welcome to my island

2. Pretty in possible
3. Bunny is a rider
4. Sunset

5. Crude drawing of an angel
6. I believe
7. Fly to you

8. Blood and butter

9. Hopedrunk everasking
10. Butterfly net
11. Smoke
12. Billi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