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가 한국 가요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공신력 최고의 미국 차트 전문지 '빌보드'에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차트에 이름을 내민 것이다. 김범수는 12월15일 '빌보드 100 세일즈' 부문 차트에 'Hello goodbye hello'란 곡으로 81위에 올랐다. 다음 주 12월22일 자에는 51위로 급상승했다.

'빌보드 100 세일즈'는 '빌보드 100 에어플레이'와 함께 그 주 싱글들의 인기 흐름을 순위로 나타내는 '빌보드 핫 100'의 기초가 되는 하위(下位) 차트다. 즉 단일 싱글이 얼마나 팔렸는가를 가리키는 판매량 순위 차트이며 에어플레이는 방송 횟수와 빈도 순위가 된다. 이 두 부문의 순위가 결합되어 최종 종합 순위인 '빌보드 핫 100'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다. 김범수의 'Hello goodbye hello'가 세일즈 차트에 올랐다는 것은 미국 시장에서 일단 판매가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일즈와 에어플레이 차트는 주간지에 75위까지 기록되어 12월22일 차트에 비로소 그의 이름과 곡이 등재되었다. 'Hello goodbye hello'는 바로 김범수의 지난해 히트곡 '하루'를 영어 버전으로 새롭게 부른 곡. '하루'의 멜로디를 그대로 살린 가운데 리듬파트를 미국인들의 귀에 맞게 힙합-R&B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얼핏 어느 미국 흑인가수가 부른 듯, 느낌이 전혀 다른 노래로 들린다. 그러한 곡의 재탄생은 미국 R&B 음악계의 실력자로 여러 차례 R&B 차트를 정복한 바 있는 프로듀서 케그 존슨(Keg Johnson)이 빚어낸 결과다. 그는 우연히 김범수의 '하루'를 듣고 가창의 느낌에 반해 미국진출 가능성을 독려하고, 지난 9월 직접 한국을 방문해 김범수의 영어 버전 녹음작업을 지휘했다.

'Hello goodbye hello'가 순위에 오른 것은 곡의 매력도 작용했지만 미국 현지 음반사인 '국도레코드'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도레코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이너 레이블로, 김범수의 '한국인 최초 빌보드차트 진입'을 위해 지난 10월부터 살신성인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에 나섰다고 한다.

김범수는 미국진출에 있어서 약간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을 감행, 자신의 얼굴 대신 캐릭터 인형을 재킷에 내걸었고 이름도 영어 이니셜인 BSK로 취했다. 사실 그는 국내에서 '얼굴 없는 가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데뷔 곡 '약속' 때나 작년 송혜교 송승헌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던 '하루' 때나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주얼보다는 가수의 기본인 가창력으로 도전하려는 의지를 홍보전략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얼마 전 2.5집 성격의 스페셜 앨범에서 신곡 '일생동안'을 발표할 때도 얼굴 감추기를 계속했다.

진정한 빌보드 가수로 승격되려면 빌보드 여러 차트에서 가장 중요한 '핫 100'에 명함을 내밀어야 한다. 즉 김범수의 순위 진입은 아직 '미완의 빌보드 입성'인 셈이다. 하지만 가요근대사에서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미국시장 가요진출에 숨통을 텄다는 점에서 커다란 전기(轉機)를 마련한 것이다. 꿈처럼 여겨졌던 미국 팝 시장진출과 그 바로미터인 빌보드 등장을 계기로 한국음악의 수준은 물론 프로모션과 마케팅에 자신감을 얻는 것도 중대한 성과가 될 것이다. 승승장구하여 김범수 이름이 대망의 핫 100 차트에 오르는 한국 근대 가요사의 쾌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