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은 그를 편안한 발라드를 불러주는 어린 왕자로서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를 자신들의 광기를 발산시켜 줄 라이브의 황제로서 추종하고 따른다. 무대에서 광신도들의 에너지를 수혈 받아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뮤지션 이승환은 지난 4집 이후부터 시도한 장르 가르기를 꽤 성공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전작인 7집에서 발라드 트랙을 담은 'Sunny side-up'과 록 성향의 곡을 담은 'Over easy'라는 더블 시디 형식으로 장르 이분법의 절정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도 역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음의 입자들을 <Karma>라는 이름아래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발매 전부터 지난해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했던 '꽃'을 연출한 차은택 감독과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타이틀 '심장병'은 현악 편곡이 주를 이루는 대곡 지향의 발라드이다. 테이의 '사랑은...향기를 남기고'의 작사가 조은희가 쓴 '손을 따봐. 내 맘에 꼭 얹힌 니가 내려갈까봐. / 내 사랑도 죽은 피처럼 빠져나갈까봐. / 가슴이 아파. 너무 아파. 어떡해 어떡해…' 라는 애절한 가사가 이승환의 연기를 하듯 노래하는 보이스와 만나 드라마틱한 전개를 일궈낸다. 대중적 포용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간판급 곡이기에 첫 싱글로서 간택을 받았다.

이러한 대중우선주의는 계속된다. 어깨가 절로 움직여지는 신나는 리듬과 하모니카 소리가 주는 효과가 인상적인 'Happy wedding song'을 시작으로 외국인의 아카펠라 사운드 위에서 이승환의 도도한 목소리가 어울려진 'I envy you'를 거쳐 재치 있는 가사의 '연애박사'까지, 듣기에 별 거부감 없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의 트랙들부터는 그간의 업(業)을 완수하려는 듯, 영역분할의 욕심을 드러낸다.

몽환적인 테크노 사운드로 시작을 연 'Karma'는 순탄하게 흐르는 듯 하더니, 고조되는 현악기와 함께 반전을 이루며 거친 소리를 토해낸다. 앨범 내에서 가장 강력한 호흡을 보여주는 'Notorious'는 일렉트릭 기타와 화려한 디제잉이 빚어내는 하드코어 넘버로 통제불능의 에너지를 마음껏 방사한다.

순탄과 폭발의 이러한 극적 대립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자칫 잘못하면 슈퍼마켓식 진열이 되어버릴 법한 구성을 잘 버무려 보기 좋게 전시했다. 다만 욕심을 너무 과하게 부린 탓인지 양 갈래로 나뉘어진 앨범의 어느쪽에도 끼기 힘든 독특한 아우라 곡 '변종'이 음양의 조화를 방해한다. 어찌 보면 미운 오리새끼 같을 수도 있을 이 곡은 그 동안 이승환이 보여준 스타일과는 매우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냥 뭉개서 흘려보내는 듯한 한글 가사와 높낮이 조절이 독특한 영어가사의 어울림은 마치 롤러 코스터의 곡에 이승환이 피쳐링한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니 작곡자가 롤러 코스터의 프런트 맨 지누다.

두 세계를 소통하는 경계인으로서 보여준 지금까지의 모습은 이승환표 사랑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과 폭발하는 로커의 모습을 원하는 팬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8집 역시 다소간의 옥의 티에도 불구, 갈등의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웰 메이드 음반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수록곡들을 천천히 복습한 뒤, '이승환의 난'에 같이 참여하는 일뿐이다.

-수록곡-
1. 심장병 (작사 : 조은희 / 작곡 : 이승환, 황성제)
2. 물어 본다 (이승환 / 정지찬)
3. 나무꾼의 노래 (이규호 / 이규호)
4. Happy wedding song (이승환 / 이승환)
5. 마지막 인사 (이승환 / 이재명)
6. I envy you (이승환 / 이승환, 윤경로)
7. 연애박사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8. Karma (이승환 / 이승환)
9. Quiz show (이승환 / 이승환, 윤경로)
10. 하찮은 사랑 (이승환 / 이재명)
11. 변종 (이승환 / 이승환, 지누)
12. Notorious (이승환 / 이승환, 윤경로)
13. 시련은 끝난다.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프로듀서 : 이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