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심에서, 아니 중심을 '아주 약간' 벗어난 외곽 지대에서 위저(Weezer)라는 밴드가 일궈낸 성취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결코 메이저리그의 공룡으로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주변인에만 머무르며 한가로이 세월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아니, 실상은 그들을 선호했던 팬들에 의해 형성된 팬덤이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위저는 1990년대 초중반 당시 뉴 펑크 세례를 마음껏 누렸던 사람들에게 종종 그린 데이(Green Day)라는 거물과 동급으로 통한다.
그린 데이의 < Dookie >와 같은 해인 1994년 발표한 본 데뷔작 < Weezer >가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음반은 앞서도 말했듯 < Dookie >처럼 시대의 물살을 가르는 역사적 지표종의 지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당시 평단이나 팬들이 정해놓은 거대작품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괜찮은 음반', '몇몇 좋은 곡들이 들어있는 레코드' 정도의 인식만을 획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종종 해외 잡지들이 선정하는 명반 리스트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나면 작품의 평가도 변할 수 있음을 이 앨범만큼 잘 설명해주는 예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 올뮤직가이드 >는 별점 수정을 자주 한다.)
이것은 아마도 '각개약진'과 '국지전'의 성격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현재 록 신의 양상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위저는 당시 얼터너티브와 뉴 펑크라는 담론의 언저리에서 회자되던 그룹이다. 그래서 메인스트림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조그마한 클럽의 흐릿한 조명이 그들에게는 어울려보였다. 자연스레 유사한 캐릭터의 군소 밴드들이 조금씩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지금의 록 신에 위저는 더할 나위 없는 역할 모델로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금 위저를 호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도 위저의 노래들은 그린데이나 오프스프링과는 엄연히 궤를 달리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쓴 듯한 거친 질감의 사운드와 신나게 내달리는 것보다는 무겁게 가라앉은 리프들을 즐겨 사용하며 자신들이 '아레나형'이 아닌 '클럽형' 공동체임을 말해줬다. 'Undone-the sweater song', 'Buddy holly', 'Say it ain't so' 같은 히트 싱글들만 감상해 봐도 이를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당시 뉴 펑크 계열의 빅 그룹들과 음악관에 있어서 완전히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펑크 선배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향하여 피를 토하듯 열정을 투사하며 발화점을 높게 잡았다면, 위저를 포함한 1990년대의 후배들은 그것과 정면충돌하기보다는 그것을 비꼬고 풍자하고 심지어는 우습게 보는 태도를 취했다. 기성세대가 조직해놓은 세계의 외관은 그 내면부터 썩어빠져 있으니, 난 그것과는 무관하게 내 자신의 삶을 내 방식대로 즐기겠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넌 메리 타일러 무어(Mary Tyler Moore, 유명한 배우이자 쇼 진행자)야.
난 사람들이 우리 둘에 관해 뭐라 말하건 신경 쓰지 않아.
난 신경 쓰지 않아.
-Buddy Holly 가사 중(中)-
곡 초반부에 버디 홀리를 아예 '호모 같은 남자'로 규정짓는 이 곡의 가사만 봐도 위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음악을 하는 밴드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여인에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사랑의 언어를 날리지도 못하는 소심남의 심정을 노래한 'Say it isn't so' 역시도 비슷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곡이었다.
자연스레 자신들만의 언어로 조그마한 이너 서클에서 만족감을 얻으려 하는 일반인들에게 위저는 행복한 탈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위저의 사운드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그 안에는 메탈 그룹들에게 사사한 파워 코드와 디스토션('My name is Jonas')이 있었으며,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의 팝 하모니('Only in dreams')도 그들의 장기였다. 여기에 픽시즈(Pixies)로부터 기원하는 얼터너티브 정서('In the garage')까지 흡수하며 뉴 펑크 밴드로서 독자적인 개별성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일궈낸 당시 20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에는 뮤직비디오 역시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Undone-the sweater song'과 'Buddy Holly'의 깜찍한 뮤비는 그들의 위트를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준 한 편의 리얼 시트콤이었다. 개들의 행진과 즐거운 패러디들을 통해 그들은 일상의 소소한 유머와 재미를 강조했고, 그래서 더욱 친근한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
이후 일군의 밴드들이 스타디움으로 무대를 옮기는 와중에도, 위저는 결코 자신들의 음악적 본향인 클럽 사운드를 버리지 않았다. 차기작들도 그 특색은 각각 달랐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저라는 모태에서 세포분열된 클론들이었고, 그래서 충성스러운 팬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대라는 화려한 록 버라이어티 시절에 만날 수 있었던 소규모의 리얼 시트콤과도 같은 앨범. 그들이 범상했지만 특출했다는 평가는 이렇듯 시대적인 맥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실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위저의 음악과 가사는 숙명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 덕분에 그 누구보다도 단단한 지반을 확립해냈다. 그리고 이 재기 넘치는 스토리텔링은 몇 년을 주기로 끊임없이 방영 중이다.
-수록곡-
01. My name is Jonas
02. No one else
03. World has turned and left me here, the
04. Buddy Holly
05. Undone-the sweater song
06. Surf wax America
07. Say it ain't so
08. In the garage
09. Holiday
10. Only in 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