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거대한 몸집에 가면을 쓰고서 너같은 아이들을 향해 '락 스피릿!'
내가 처음 너를 봤을 때 너가 하는 일이라곤 남의 흉내내는 것
너가 원하는 모든 것은 모두 너안에 있어
남들이 말하는 그런 정신 없음 아무렴 어때
-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수록곡 '로랜드 고릴라'
언니네 이발관은 언더 그라운드 인디 그룹으로 출발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 언더 그라운드 밴드라는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던 그룹이다. 그들에게서는 특정화된 비판정신이라든가 언더 나름의 훌륭한 연주력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발견하기는 너무 힘들고, 조악하기까지 한 연주에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데뷔 초부터 그들은 나름대로 중요한 인디 그룹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팬 층도 꽤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그들의 약점에 반하는 무언가가 평자들과 팬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니네 이발관이 거짓으로 날조된 밴드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리더이자 보컬인 이석원은 통신상의 음악동호회에서 자신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애청되었던 라디오 심야프로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도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가상 그룹의 리더로 소개했다. 당시 그는 기타조차 전혀 치지 못했다. 더구나 팀 이름은 그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일본 포르노 무비(언니네 이발관에서 처제랑 형부랑 언니랑 어쩌구저쩌구 한다는...)의 제목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언니네 이발관은 멤버들을 갖추고 합주공간을 전전하며 곡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한 셈이지만 그 거짓말이 오히려 그들의 목표를 제공해준 셈이었다. 밴드를 한다는 소박한 꿈을 실천하게 해준 계기가 됐던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모든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태생부터 뛰어난 연주력이나 참을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울분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그룹이었다. 반면 그들이 시작부터 일관되게 견지해온 자세 역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뛰어난 카피곡을 보여줄 수 없는 대신 좋은 자작곡을 들려준다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을 말이다. 그것이 언니네 이발관의 매력이자 성공 비결이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쉽다. 코드 진행은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며 편곡수준도 대단한 것은 못된다. 가사도 어떻게 들으면 의미심장하기도 하지만 우울함이 깃든 개인적인 서정성을 넘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은 멜로디에 신경을 써 좋은 노래 만들기에 치중한다. 듣기 좋은 자신들의 노래만들기가 그들의 지향점이다.
“가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멜로디와 어울리는 단어나 문장의 선택차원에서입니다. 그래서 가사의 스토리텔링보다는 그 선율에 어울리는 소리에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가사를 쓰는 이석원의 말이다. 수준에 맞지 않는 어거지 사회성의 도입으로 소화불량을 초래하는 다른 언더 밴드들과의 차별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들은 데뷔 무렵 합주실을 전전하며 많은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감히 팀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실력으로 인해 합주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다른 밴드들에게 비웃음을 사야했다. 심지어 합주실 주인 아줌마가 갑자기 도중에 들어와 보컬의 볼륨을 줄였던 사건도 있었다니 가히 알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남의 곡을 틀리지 않고 잘하기보다는 시원찮아도 자신의 곡을 하고 싶었던 그들의 자세는 결국 옳았다. 현재 이발사들의 음악은 그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특별히 내세우는 Rock 정신이라는 것이 없어도, 딱히 자랑할 만한 테크닉이 없더라도 그들은 당당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인디 밴드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Rock 정신(만약 존재한다면..)에 부합되는 인디 음악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대 포장한 찬사가 될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걸레가 되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한다고 자기가 인디 정신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멍청한 것도 없죠. 아래에서 활동한다고 무조건 인디 음악인줄 알고 있다면 오산입니다.”
국내의 인디 씬에 대한 이석원의 견해는 겉멋만 들린 국내 아마추어 밴드들에게는 따끔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96년 11월에 첫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을 냈다. 햇수로 6년째인 꽤 오래된 그룹인 셈이다. 1집에서는 신선한 멜로디와 디스토션의 굉음을 배제한 맑은 기타 사운드로 자신들과 같은 음악도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 소리가 당시 모든 국내 언더 밴드들이 경도되어 있던 얼터너티브 사운드와 차별화 되었음은 물론이다. 2집 〈후일담〉에서는 나름대로 세련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향상된 연주력을 들려줬다. 그들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밝은 노래 역시 잊지 않았다. 그 후 4년의 공백 기간을 거쳐 이제서야 3집 〈꿈의 팝송〉을 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와 이미 주류에 편입된 델리 스파이스와 비교해 볼 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간의 게으름 덕분일까? 아직 그들은 인디 밴드의 딱지를 그대로 붙이고 언더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10월 18일 발매된 3집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1주일만에 2만장에 가까운 획기적인 판매량을 기록해 인디밴드 역사상 신기록으로 불리고 있다. 발매 첫날 서울지역에서만 무려 6000장의 재주문 요청이 들어왔을 정도다. 3집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펼친 지난 17일엔 대형 음반매장인 서울 교보문고의 핫트랙에서 당일 판매량 최고기록(300장)을 세웠다. 이젠 그들도 떴다. 이래도 괜찮을까? 문득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도 지난 17일의 쇼케이스 현장에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멤버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CD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사정상 팬 사인회도 취소됐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사태였다. 하지만 그 성공이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언니네 이발관은 자신들이 왜 팬들에게 환영받는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한 인디 밴드의 진지한 모습을 교보문고 구석의 한 음반 코너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된다. 성공 그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걸 누릴 자격이 있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앞서갔던 몇몇 다른 밴드들의 안 좋은 전철을 밟을 것 같진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Rock의 평등성에 충실했던 실천적인 밴드라는 점, 의도된 Rock 정신이 아닌 순수한 내 인생 내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그들의 음악은 아직도 건전하며 상쾌하다. 거기에 처음의 배고픈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더욱 반갑다. 성공의 단맛을 보고 하나둘씩 지상으로 올라가 버리는 국내 언더 음악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보자. 아직 소박하고 진실한 음악을 하는 밴드의 존재는 거의 축복의 수준이다. 거기에 귀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진지한 분위기까지 갖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2002년 늦가을, 이유 없이 언니네 이발관에 손님이 붐비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