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역사의 그래미상이 전통적으로 기피하는 대상이 둘 있다. 외국인과 록음악가수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는 록가수라서 푸대접을 받았고 엘튼 존, 에어서플라이 등은 미국인이 아니어서 '물먹은' 주인공들이었다.

올해 그래미상에서 영국출신 록가수 에릭 클랩튼은 이 같은 관례를 일거에 깨버렸다. 그는 그래미의 꽃이라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등 3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래미 35년 역사에서 非미국인으로 이 3개 대상을 석권한 아티스트는 그 이전에 없다. 비틀스도 이룩하지 못한 쾌거였다.

그러나 진정한 에릭의 영광은 나이의 핸디캡과 파란만장한 역경을 딛고 보란듯이 다시 일어섰다는 점이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48세. 전성기도 이미 지나버렸다. 70년대 말까지는 '원더풀 투나잇' '약속'과 같은 히트송을 발표,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80년대에는 '이름만 남은 종이호랑이'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시절의 사생활도 불행의 연속이었다. 아내 패티 보이드와의 이혼, 벗들의 죽음이 뒤따랐다. 알코올 및 마약중독에 휘청거려 한때 알콜갱생회 신세를 져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1년에는 사랑하는 4살짜리 아들이 아파트에서 실족해 죽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을 거부하고 '천국의 눈물'이란 노래로 아들 잃은 아픔을 승화시켰다. 알콜과의 싸움에서도 이겼다. 그의 극기(克己)의지에 나이도, 환경도 악조건도 장애요소가 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