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스(Ramones)는 뉴욕과 CBGB 클럽을 주무대로 뜨거운 호흡을 내뿜은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그들은 50년대 오토바이 족들의 찢어진 청바지와 검은 재킷을 착용해 외형부터 상서롭지 못했고, 공개적으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이글스(Eagles)같은 주류의 슈퍼스타들을 염오(厭惡)했다. 비틀스(Beatles) 이전의 로큰롤이 가졌던 순수함과 원시성에 대한 오마쥬는 곧 분노의 리바이벌로 이어졌고, 1976년 발표된 데뷔작
한마디로 음악은 종(種)이 달랐다. 우선 지글거리는 기타부터 그것은 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벅벅 긁어대고 있다는 말이 어울렸다. 모든 곡들은 한 두개의 코드만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기만 했고, 그것은 연주가 아닌 차라리 악기의 '왕복운동'에 가까웠다. 간간이 등장하는 기타 솔로는 그저 한 음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에 불과할 뿐, 솔로나 기교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단순(무식)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수록곡의 대부분은 2분30초 정도로 끝났다. 심지어 'Judy is a punk' 는 90초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뭔가 되가는 듯 싶으면 어느새 종을 친, 성생활로 말하면 급격한 사정(射精), 또는 조루였다. 영화로는 예고편 컴필레이션, 스포츠로는 병살타요 에어볼이었다. 쓰리 에스(Sex Screen Sports)의 어느 것으로 비유해도 커트라인에 미달했다. 때문에 기존 문화에 수용감각을 굳힌 일반인들이 이 앨범으로 만족을 포획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앨범은 기타 솔로나 전반부를 장식하는 리프를 도태시킨 채, 발라드라는 이름의 선율음악을 분서갱유한 채, 당시까지의 어떤 음악보다 거칠고 스피드하게 몰아 부치고 있다. (2002년 아닌 1976년을 기준하라!) 조이 라몬(Joey Ramone)은 그룹의 기타리스트 자니 라몬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다.
“자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타주자가 되고자 했다. 모든 게 점점 빨라져갔다. 나마저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다.” 곡이 빠르면서 길 수는 없다. 수록곡은 무려 14곡이나 됐지만 시간은 겨우 29분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니 돈을 쓸래도 쓸데가 없었을 것이다. 제작기간 7일에 총비용 6천4백 달러(지금 우리 돈으로도 약 830만원). 그들은 그렇게 음악과 음악제작의 사회적 관습을 유린했고 예의를 팽개쳤다.
가사 역시 그들의 무모함을 거들고있다. 어떠한 부연 설명이나 은유적인 비유는 없으며, 짧은 구호 몇 마디와 계속되는 되풀이뿐이었다. 더구나 담고 있는 내용은 충격적이어서 마치 뒷골목 폭력배들의 노래나 다름없었다.
'양아치를 때리자!/ 양아치를 때리자!/ 야구방망이로 때리자/ 오 예~ 오 예~' -'Beat on the brat'
'넌 너무 시끄러운 녀석이군/ 입 닥치지 않으면 패줄 거야' -'Loudmouth'
그러나 라몬스의 충격은 록 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댐드(Damned)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를 비롯한 1970년대 말 영국의 상당수 펑크 밴드들은 그들로부터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로큰롤이란 단지 세 개의 기본 코드(Ⅰ,Ⅳ,Ⅴ도)와 짧은 슬로건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라몬스에게서 터득했다.
다수 대중들은 네 라몬들을 이성이 마비된 존재로 비하하거나 음악 또한 그들만의 리그로 외면했지만 적어도 펑크에 쏠린 청년들은 그들로부터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발견했다. 그들은 라몬스의 짧은 런닝 타임도 '경제적인 음악'이라고 훈수할 줄 알았고, 도리어 당시 쓰리 에스에 젖은 1970년대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들을 측은히 여겼다.
그것은 타락한 쓰리 에스를 질타하는 '쓰리 코드' 펑크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펑크가 엘리트 록을 야유하기 위한 가장 살기 등등한 공격 무기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Now I wanna sniff some glue' 'Judy is a punk'와 더불어 특히 'Blitzkreig Bop'은 곧바로 펑크의 기념비적인 송가로 추앙 받았고 “Hey, Ho~ Let's Go~" 의 함성은 영미 각지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울려 퍼졌다.
복잡한 화성과 세련된 연주를 거부한 반(反) 예술적 미니멀리즘의 개막, 그 위대한 펑크 무브먼트의 발화점이 된 기념비작이다. 무제한 속력으로 질주하는 로큰롤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 여기 있다.